1. 충노순랑비
이조 선조 16년 봄날에 흥해군수의 친구인 계림(鷄林) 일사(逸士)가 흥해에 유람와서 명승지를 찾아 여러 날 묵게 되었는데, 북미질부성 아래 곡강 어구에 기암절벽이 둘러싸인 풍광을 보며 유람하니 아름다운 한 낭자가 빨래를 하고 있었다. 그의 자태가 아름다워 희롱할 생각으로 시 한수를 크게 소리내어 읊었다. "爾非三尺劍, 能斷幾人(너는 삼척 검이 아닐진대 몇 장부의 간장을 끊었느냐)"라고 하자, 낭자가 시답하기를 "我本荊南和是壁, 秦城十五猶不易, 偶然流浪曲江頭, 況擧鷄林一腐儒"(나는 본시 중국 형남의 화시벽같은 보배로서 진나라 성15개로도 바꿀 수 없느니라. 우연히 곡강두(曲江頭)에 유랑하지만 어찌 계림의 썩은 선비와 같이 하리...)무안을 당한 계림선비는 흥해군수에게 무례한 낭자를 벌할 것을 권하여 낭자를 체포토록 하였다. 명을 받은 군노사령들이 낭자가 사는 흥안리에 가서는 양반의 거만한 태도가 미워서 동임에게 사실을 말하고 낭자가 피신하게 하니 낭자가 이 소식을 전해 듣고 화가 가문에 미칠 것을 고민하다가 자결하기로 결심하고 유서를 쓴 후에 몸종인 순랑과 하직하고 북미질부성 아래에 있는 곡강참포관소(曲江塹浦 沼)에 몸을 날려 죽고 말았다. 이에 몸종 순랑 또한 李랑자의 시신을 안은 채 순절하니, 듣고 순랑의 충절을 기려 곡강 어구 층암(層岩)바위에 충비순량(忠婢順良)의 비를 암각 하였다.
2. 불상
천마산 탑다리골(절골)에 머리가 깨진 큰 불상이 하나 있다. 현재 남아 있는 부분을 실측한 결과 불상 높이184㎝ 가슴둘레 약300㎝ 복련 지경210㎝이다. 발 아래는 연화대가 앙련, 복련으로 있고 그 아래는 땅속에 묻혀 있어 알 수 없다. 불상은 입상인데 머리는 없어졌고, 가슴, 팔, 앙련 등이 심하게 깨어져 수인도, 장식도, 지물도, 아무것도 알기 어렵다. 산세는 산태극, 수태극으로 좁은 골짝에서도 기국을 형성하였고, 불상은 남면하고 있다. 인근 동네 사람들은 이 불상을 "미륵"이라 부르고 있으며 자식 없는 사람들의 기자신앙의 대상으로 최근까지도 가능했다. 이 일대 골짝이 절골이라 불리며 불탑에서 유래된 "탑다리골"이란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골짝에 신라시대 이후로 절과 탑이 있었다고 전해져 오고 있으나 흔적은 없고 지금 천마 저수지위로 옮겨간 용화사가 불상과 같이 있었다. 복련의 조각은 뚜렷이 보이고, 괴체감으로 보아 고려초의 작품이 아닐까 추측해 볼 수 있다.
3. 서운사
문정대사 부도, 설송대사 부도 각1개
포항시 북구 죽장면 일광리 628번지
서운사는 신라 선덕여왕 18년 10월 2일(서기 662년) 창건되었다 하나 창건지는 미상이다.
그 후 서기 713경 정원혜, 강영우, 이명순 등의 주지가 창건을 추진하여 이봉상 스님 재직시 재창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고찰로 문화재로써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특히 이 지역은 속칭 개일이라는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어 조용하고 주변 경관이 빼어나 예부터 개양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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