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기 먼고 하모 말이시더...
장기면의 유명한 모포줄다리기가 있는, 영암리에서 모포리로 넘어가는 망재에서
모포리 쪽으로 보면 모포줄다리기의 보관 장소인 현몽각이 보이고,
현몽각 뒷산인 뇌성산 중턱쯤에 움푹 패인 산허리가 바로 국내에서는 유일하게
건물에 칠하는 기본 안료인 뇌록이 생산되던 곳입니다.
뇌록을 이곳 주민들은 ‘매새’로 부르기도 하는데 그 정확한 뜻은 알기 어려우나
매세는 돌과 돌 사이에 흙(매: 매흙의 준말)이 끼인 것 같은 광물(새: 광석 속에 금분이
끼어 있는 잔 알갱이)이라는 의미에서 즉 ‘매새’로 추정해 봅니다.
뇌록의 빛깔은 어린 쑥이 올라 올 때의 빛깔보다 조금 진한, 즉 청색과 황색을
섞은 색으로 보여 집니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우거진 나무와 돌무더기 위에 솟은 잡초수풀 사이로 채굴 현장이 드러납니다)
이 뇌록터에 전해오는 이야기는 채굴 시 파인 굴의 깊이가 수직갱으로 매우 깊어서
명주실꾸러미(북 속에 넣은 실 꾸러미) 서너 개를 풀어 넣어도 닿지 않았다고 하니
그 깊이가 매우 깊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여기 고인 물을 상수원으로 사용했다니 끔직 할 노릇입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뇌록터에 고인 물을 학계리 7가구의 상수원으로
이용되고 있었으나, 수질이 음용수로서는 적합하지 못하다는 판정으로 중단한 상태입니다.
이 뇌록은 구리성분이 녹아 흙에 스며들어 돌과 돌 사이에서 굳어진 것이라 하며,
즉 구리가 녹아 생성된 화학작용의 부산물이기에 인체에 엄청 해로운 물질이라
상수원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겁니다.
(바위 면에 뇌록의 흔적이 스며있습니다. 마치 칠을 한 것처럼 보입니다)
현재 뇌록터에는 두 군데의 채굴 터가 남아 있습니다.
우측 편 넓고 깊게 패여, 물이 고인 조그만 소가 형성 된 터와 그 좌편 돌무더기를
넘어 또 하나의 터가 있는데 여기는 나중에 채굴하던 터로 여겨지며 채굴하던 방법도
산 쪽을 향한 방향이 아니라 반대편 쪽 산 밑으로 거의 수직에 가까울 정도로
엇비스듬한 굴이 보이는데 지금은 온통 잔돌로 채워져 있어 그 굴의 깊이를
가늠할 수는 없습니다.
뇌록을 채굴하던 곳을 ‘매새구다이’ ‘쉰구디이’ 라고 하는데 구다이, 구디이는 구덩이의
사투리이며 쉰구디이의 유래는 이곳에서 채굴하던 인부들이 많이 매몰되어 죽었는데
소문을 듣고 주민들이 가보았더니 그 채굴하던 곳에 ‘초배기’(대나무로 만든 도시락)가
50여개 발견되었다고 하여, 쉰 명이 죽은 구덩이라 부르기도 한답니다.
(이렇게 바위와 바위 사이에 구리성분이 흙에 녹아 굳어진 상태로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 곳 주민들이 채굴에 종사하였다는 이야기는 전해지는 것이 없어, 추측하건데
뇌록 채굴 작업이 거의 수직에 가까운 갱도로 파내려가는 작업이다 보니 워낙 험하고
고된 일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인명사고의 위험율이 높아 일반 백성들을 쓰기에는
무리가 있어 나라의 죄를 지은 죄수들을 동원하지 않았나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해방 이후 이 뇌록지에 소 먹이러 가서 뇌록을 주워 물에 녹여 주먹만 하게
만들어 놓으면 상인들이 구입해 갔다고 하는 걸로 보아 불과 몇 십 년 전만 하더라도
이 뇌록을 사용하여 단청 가칠을 했다고 여겨집니다.
장기지방에서 생산되는 뇌록이 얼마만큼의 양이 생산 되었고, 왜 비밀리에 채굴되었는지
여러 가지 의문점은 아직 남아 있지만...
(나중에 형성된 채굴 현장- 엇비스듬하게 파내려간 굴이 보입니다)
참고 문헌 고찰
1. 동국여지승람 23권(1486)
장기현 토산조에 뇌록출, 광어, 해삼, 사어(모래무치), 대구어, 방어, 청어, 송어, 홍합, 곽(미역)
해의(김), 해달, 송담(송이버섯), 마황, 정분(분색의 안료), 방풍(약초)
2. 인정전영건도감의궤(창덕궁 인정전을 다시 짓는 공사 기록. 순조5년. 1805년)
갑자 2월 경상감영에 보내는 공문에 뇌록 20두를 장기현에서 조달할 것을 명령함.
3. 서궐영건도감의궤(경희궁에 내전을 다시 짓는 공사 기록. 순조 30년. 1830년)
경인 3월 경상감영에 뇌록 500두를 장기현에서 조달할 것을 명령함.
4. 창경궁건도감의궤(창경궁 내전을 다시 짓는 공사 기록. 순조34년. 1834년)
신묘 7월 경상감영에 뇌록 700두를 보낼 것을 명령함.
(채굴 현장에서 채취한 뇌록입니다)
다음은 경기대 건축공학과 교수이시며 당시 문화재위원이신 ooo 님이 직접 현장답사와
시료를 채취 후 연구한 결과를 전해온 내용입니다.
[장기면 뇌성산의 단청안료 유적지 조사의견서]
경상북도 포항시 소재 뇌성산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전통 단청재료의 하나인 뇌록이 생산되는
곳으로 이미 조선시대 여러 문헌에 기재되어 있습니다. 우리나라 고건축의 단청은 중국의 단청과도
다른 고유한 색조를 띈 것으로 잘 알려져 있으며, 이 단청 칠을 할 때 가장 처음 소위 가칠을
하는 녹색 바탕칠의 재료가 뇌록입니다. 뇌록은 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하여 조선후기에 작성된
모든 건축공사 관련 문헌에서 유일하게 경상도 뇌성산에서만 생산된다고 기록되고 있습니다.
이에 1996년 1월 24, 25일 양일간 현지를 방문하여 뇌성산의 과거 뇌록 채취장소로 전하는
지역을 답사한 결과 뇌록을 채취하고 유적이 확실하게 남아 있음을 확인 하였으며, 아울러
현지에서 100g의 뇌록 조각을 수습할 수 있었습니다. 수습된 뇌록 조각을 가루로 만들어
전통 장인들이 하던 방식을 본받아 아교를 가미하여 칠을 해본 결과 현재 고건축에 사용하는
우리 조상들이 칠했던 가칠과 거의 흡사한 색채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에 뇌성산의 관련 문헌들과 현지 조사 및 뇌록 시편에 대한 채색 실험을 종합해 볼 때
현재 장기면 소재 뇌성산은 과거 우리나라 단청 칠의 가장 기본이 되는 안료가 생산되던
유일한 장소임을 확인 하였습니다.
현재 뇌성산은 야산으로 방치되어 있고 뇌록을 채취하던 장소도 아무런 보호 시설 없는
상태이며, 군부대에서 훈련을 자주하고 있기 때문에 현장 일대를 문화재로 지정하여
국내 유일한 단청 관련 유적지에 대한 보호를 강구하여야 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1996. 2. 25
경기대학교 건축공학과 교수
문화체육부 문화재위원회
뇌록터 앞에서 뇌성산을 바라 본 모습
깎아지른 듯한 벼랑이 나타나고 그 아래가 채굴현장이며 불쑥 솟아오른 자그만 언덕은
굴을 파내려가며 들어낸 돌무더기 입니다.
지금 이 곳에는 곳곳에 산딸기가 지천으로 익어가고 있습니다.
아마 장기가 복분자 생산지로 유명함은 산딸기로 부터 시작되 않았나 싶습니다.
참고로 장기 산딸기(복분자) 축제가 6/8부터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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