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가와 송덕비 시멘트 칠 걷어내자- 반론제기
최근 구룡포 적산가옥의 등록문화재 지정이 전면 보류되었다.
포항시와 시의회가 구룡포 일본인 거리 가옥 복원을 계기로 일본인 관광객을 1만명 유치한다는 야심(?)찬 계획이 찬물을 뒤집어쓰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등록문화재 지정 입법예고제는 아주 특별한 사항이 없는 한 지정 예고일에 거의 모두가 지정되는 게 통상의 사례이다.
왜, 구룡포 적산가옥 5동이 입법예고까지 했으면서 전면보류 되었는지는 포항시와 구룡포읍민들이 다시금 되새겨 봐야 할 것 같다.
올해 박승호 포항시장이 일본인 관광객 1만명 유치를 위해 안팎으로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은 모두가 잘 알고 있으며 이에 구룡포읍민들 또한 고마워해야 할 일이다.
구룡포에 방치 되다시피한 적산가옥을 복원하여 일본인 관광객들을 끌어들여 관광자원화 하자는 논지는 충분히 이해가 가며 낙후된 구룡포 지역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한 사업이라고 본다.
그렇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일본인 관광객을 유치하는 것보다 구룡포가 갖고 있는 역사적 의미를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이다.
얼마 전 끝난 울진의 친환경엑스포 입장객 그 대상이 일본인이었을까?
바로 이웃한 영덕만 해도 그렇다.
영덕대게 축제, 참가자미 축제 그리고 여름바다와 접목한 달빛걷기 축제 등 이모두가 일본인들을 겨냥한 축제였는지 묻고 싶다.
왜 굳이 일본 관광객인가?
지금의 구룡포 공원 자리에는 일제시대 일본신사가 있었던 곳이며 지금도 일제시대에 구룡포읍민의 피고름을 쥐어짜 막강한 부를 축적하여 그 자본을 밑천삼아 일본관계에까지 진출한 ‘도가와 야사브로’ 의 송덕비가 구룡포항을 내려다보고 있다.
해방 이듬해 구룡포 주민들에 의해 비석에 새겨진 비문 부분을 시멘트로 칠한 도가와 야사브로의 송덕비- 최근 이 송덕비의 시멘트 칠을 벗겨 내고 복원하자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있어 큰 혼란에 휩싸인 적이 있다.
구룡포에는 일제시대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 투사도, 일제에 반대한 미미한 역사의 흔적조차도 같지 못한 그래서 일본인들만의 지역이었으리라.
그리하여 말 못하고 입 다물고 보고도 못 본체한 일제의 억압에서 해방이 되자 소수 지역민들이 그나마 할 수 있었던, 도가와 야사브로의 송덕비에 시멘트 칠로 그 울분을 표했으리라.
그 양심의 행동마저 지금의 이 시대는 인정하려 들지 않고 있다.
혹여 도가와 송덕비 시멘트 칠을 벗겨낸다면 그 시대의 역사는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도가와 야사브로의 송덕비 시멘트 칠을 걷어내고, 적산가옥을 새로이 복원하여 일본인 관광객을 끌어 들여, 그들이 구룡포공원에서 지난 과거에 누렸을 그들만의 화려한 영화에 취해 있을 때 포항시민은 자존심을 내팽개쳐 버리고 그들이 던져주는 엔화에 목매여 또 허리를 굽혀야만 하는가.
아니면 자라나는 우리 후손들에게 우리는 이렇게라도 반일의 흔적을 남겨 놓고 싶었다고 솔직히 토로 할 것인가.
그리고 일본인 관광객들이 구룡포공원을 들러 그 공덕비를 마주 했을 적에 시멘트 칠을 한 비석과 시멘트 칠을 벗겨내고 새로이 복원한 비석 중 어느 것이 더 일본인 관광객들에게 과거와 현실의 이미지가 명확히 와 닿을 것인가.
얼마 전 모신문사 기자가 쓴 ‘일본인 가옥 복원과 바람직한 역사관’, ‘구룡포에서 날아온 2가지 낭보‘ 라는 기사를 읽고 큰 충격에 빠졌었다.
이러한 역사관을 가진 사람이 신문사 기자라는 사실은 포항시민으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특히 그 기자가 쓴 내용 중 독일의 예를 들면서 즉 독일이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경악의 장소’ 라는 문구가 있다면서 유태인을 학살했던 그 장소를 지금도 온전하게 보존하고 있는 실례를 포항시가 본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기자는 문제의 본질에서 엄청나게 벗어난 논지를 펴고 있는게 분명하다.
독일은 가해자이지 결코 피해자가 아니다.
가해자가 스스로 반성하는 계기로 삼자고 악의 현장을 보존하는 것과 피해자인 우리가 관광객 유치를 위해 보존하자는 것이 어떻게 비교가 될 수 있는가.
부끄러운 식민지 치욕의 역사를 가진 피해자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인가.
일본인 적산가옥의 복원과 시멘트 칠을 벗겨내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고 말하고 싶다.
건축적인 측면에서 사라져가는 옛 가옥(일본 적산가옥)을 보존하는 것과 일본인의 정신이 배여 있는 비석을 복원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고 본다.
당시 구룡포읍민들이 해방 후 적극적인 반일의 행동을 표명하였다면 그 송덕비는 산산조각 났어야 마땅할 것이다.
아니 어쩌면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할 수도 있다.
산산조각 깨뜨려, 깨진 채로 지금 그 자리에 보관하는 것도 우리 포항시 나아가서는 구룡포읍민들의 잃어버린 반일의 자존심을 되살려주는 계기가 될 것이며 곧 그것은 우리 포항시의 한 역사의 한 장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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