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지역 문화유산 금석문에 이어 두 번째
김공지묘
연화재 현 제일교회 길 건너 아래 주차장 옆 언덕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비 앞면 老職嘉義大夫月城金公 之墓
配분城金氏 附前
뒷면의 崇禎紀元周甲後甲寅十二月日 으로 보아 1794년 음력 12월에
건립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비석과 상석 그리고 봉로석이 있으며, 좌우로 문인석을 갖추었습니다.
문인석은 그리 크지 않고 적은 편이며 조각 솜씨 또한 치졸한 수법이지만
묘지 석물이 많지 않은 포항지역이고 보면 그래도 나마 귀한 대접을 받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두 손으로 홀을 맞잡고 경건하게 서 있는 문인석은
주인을 보호하기 위해 표정은 사뭇 진지한 편입니다.
보통 부인의 묘가 뒤에 조성되는 것과 달리 뒤의 묘가 김공, 앞의 묘가
김씨 부인임을 비의 ‘附前’이라는 글씨가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함과는 확연히 차이나는 햇빛 좋은 낮 날씨는 더웁기까지
합니다. 덧입은 조끼를 벗으니 그나마 숨통이 트입니다.
다시 이공지묘를 찾으러 제일교회 위 주차장 부근 산록을 2시간 가량
헤매고 다녔으나 허탕을 치고 아쉬운 마음으로 이동으로 향합니다.
이동 건강랜드 부근 裵泰鳳旌忠閣와 노곡재를 찾았으나 또 허탕.
노동재사
다행히 노동재사는 우암비석 부근이라는 사전 정보로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蘆洞齋舍는 대잠동 논실마을 북쪽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약 200년 전 쯤 1823년에 건립된 麗江 李氏 무첨당파중회 소유 齋室로 정면5칸
측면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남향을 하고 있으며, 중앙 육간대청에 ‘蘆洞齋舍’
현판이 있고 그리 오래지 않은 건축자재로 보아 최근 보수된 것으로 보여집니다.
재사 옆으로 오르막길로 접어 잠시 걸어가니 큰비와 함께 제법 큰 묘소가
있습니다. 비의 주인을 보니 무첨당 이의윤, 즉 양동마을의 여강이씨 무첨당파중회
인 무첨당의 묘소인 것입니다. 여강이씨 회재 이언적선생의 맏손자인
이의윤의 묘소는 종가의 상징처럼 되어있는 무첨당의 위치를 고려할 때 이 묘소도
역시 역사적 가치가 상당하다고 판단됩니다.
우암비
노동재사 입구 들목 좌측에 위치한 文正公尤庵宋先生神位埋安之壇 비는 최근에
조성한 큰 비석 옆에 다솜하니 서 있습니다.
烏川縣德林書院卽 文正公尤庵宋先生妥靈之所也停撤以後 朝今有曰宋先生神位
埋設鄕校 大成殿宮墻內故祇奉 朝今埋安於 로殿西墻內矣其後幾年鄕校移建于
江北柳等里 先正埋板之址便作平地其在景仰之道恐有堙沒之患故종竪一石面以記
實蹟結之以銘之曰
기歟 先生鍾出我東서洛正脉鄒魯遺風亨干德林俊髦蒿모院掇位存校庭埋安 聖殿
旣徒孰知斯址矮壇片碣期傳萬祀
崇禎紀元後五甲辰九月 日德林士林謹竪
논곡마을의 250년 묵은 왕버들
한석재
寒石齋는 平山 申氏 齋室로 논실마을 안쪽에 위치하며, 정면4칸 측면1칸의
팔작지붕 함석건물로 남동향을 하고 있습니다.
건물의 보존 상태는 비교적 양호하며 대청 중앙에 ‘寒石齋’ 현판이 있고,
마루 앞면을 일반 유리창호로 막아 놓아 답답한 감이 있습니다.
모구당
慕九堂은 자명1리 자명마을 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정면3칸 측면2칸의
팔작지붕 홑처마이며, 좌우 양측은 방, 중앙은 대청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건축 부재가 오래지 않은 걸로 보아 최근에 중수된 것으로 보여집니다.
역시나 [慕九堂 중건기념記] 오석비가 앉아 있습니다.
이 곳 모구당은 옛 自芳고을 書堂이며 이조 순조16년(서기 1816년) 3월에 입주
상량된 건축물로 성조도감에는 최흥조(崔興祖) 목수는 최륜(崔淪)으로 당시
축조한 건물 상량보에서 기록이 있었다. 모구당의 의미는 文憲公 휘 충(沖)
해동공자의 역사상 처음으로 사립종합 교육기관을 설립한 구재학당(九齋學堂)을
마음깊이 생각하면서 학문하라는 뜻이다. 서기 2007년 중건에는 해주 최씨 좌랑공
파 묵수공 휘 한지(漢之) 이 고을 입향조 후손인 포항 종회에서 주관하여 새로이
준공을 하였다. 벼슬이 가선대부 동지 중추부사겸 대호군 돈령도정 항재공 휘
응칠(應七) 등 여러 선비 문장을 배출하여 문풍을 일으킨 유서깊은 향리의 서당이
며 6.25 한국 전란직후에는 달전 초등학교 자명분교로 이용을 했다. 그러나 건물이
노후하여 서기 2001년 항재공의 현손인 원구(元求)가 사재를 출연하여 기존 일부
목재를 보존하면서 중수를 하였으나 앞으로 더 오래 보존 할 수 가 없어 종중(宗中)
에서 후원하고 문화재 전문건설회사 대표이사 최원구의 헌신적으로 현찬하여
이 고장의 유일한 문화유산인 모구당을 중건 준공하여 보존하고 있다.
서기 2007년 4월 8일
해 주 최 씨 포 항 종 회
- 현 모구당 입구에 이러한 비가 있습니다. 평가는 각자의 몫이겠지요...
원모정
遠慕亭은 海州 崔氏의 亭子로 자명마을 모구당에 옆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면 4칸 측면2칸의 서향 건물로 팔작지붕의 겹처마 건물입니다. 기단은 견치석
쌓기로 올렸고 원형초석을 사용하였습니다.
원모정
소원당
필경헌
원모정낙성운 편액
중앙대청을 중심으로 양쪽 방 앞에는 必敬軒(필경헌), 溯源堂(소원당) 현판이,
정면에는 遠慕亭(원모정) 현판이 걸려있으며, 후손이 쓴 원모정낙성운 편액
몇 기와 풍산류씨의 상량문도 보입니다.
정면 4칸이다 보니 원모정 현판이 우측으로 치우쳐 걸려 있습니다.
화주산 약천사
범종각+천왕문
창건주이신것 같네요...
자명리 동제 주신을 찾다 우연히 알게 된 약천사는 제법 규모를 갖춘 절집이었습니
다. 범종각겸 천왕문이 대문역할을 하고 있어 천왕문 앞에 서니 우측 산록 쪽으로는
인물석상과 부도 그리고 귀부를 갖춘 비석이 보이고, 좌측 계곡 건너편으로는 기도
터가 보입니다. 비석에는 당호가 南天, 법명은 竹山인 스님의 행장을 기록하고 있어
스님의 편년을 간략하게나마 알 수 있습니다.
약사전 좌벽의 반야용선도
이제 절집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범종각에는 별다른 것이 보이질 않습니다. 대웅전 대신 약사전이 중심법당인 것
같습니다. 내부에는 화려하게 3층으로 꾸며진 닫집 아래 약사여래를 본존으로
일광․ 월광보살이 협시하고, 신중단에는 신중도를 영단에는 지장보살도를 조성
하였습니다. 후불벽 뒷벽에도 벽화가 있는데 곽암의 심우도 중 牧牛 장면을
그려 넣었고, 좌측 벽면에는 반야용선도도 있습니다
미륵대불
약사전을 나오니 거대한 암벽 아래 미륵불이 당당합니다. 언뜻 석가모니로 여겼는
데, 머리에 갓을 쓴 것이 이상해 시주기념비의 기록을 보니 미륵불이라고 쓰여 있어
미륵불인줄 알겠습니다. 좌측으로 삼성각 팻말이 보입니다.
암벽 동굴로 이루어진 삼성각
헐떡거리며 철제난간을 부여잡고 계단을 오르니 암벽 아래 동굴형 삼석각이 나타
납니다. 따스한 봄날씨에 급격한 경사 계단을 오르느라 땀이 날 무렵이었었는데
동굴 속으로 들어가니 서늘함이 엄습하여 더운 기가 말끔히 사라져버렸습니다.
땀을 식힌 후 주위를 둘러봅니다.
삼성각 내부에는 중앙의 칠성여래와 일광월광보살이 좌우협시하고 좌측에는 호랑
이를 타고 앉은 산신이, 우측에는 단군도상이, 그 옆으로는 독성존자가 좌우로 동자
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암벽 표면과 칠성여래삼존불에 비닐 옷을 왜 입혔나 했더니
만 아마 습기차단용이리라 판단됩니다.
큰 암벽을 신체로 자명리동제 주신
용 두 마리를 다고 선 용왕각을 지나 자명리 동제 신체를 만나러 갑니다.
자명2리 동제는 3년마다 음력 정월대보름에 대한불교재단법인 화주산약천사(불기
2535년 3월 10일)에서 지낸다고 합니다. 神體는 약천사 계곡 옆 큰 암벽위이라고
합니다. 원래는 매년 음력 정월 대보름에 마을 당나무를 대상으로 동제를 지내다가
약 15여 년 전 마을 당나무가 고사한 후 약천사(당시 약사사원)에서 동제를 지내게
되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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