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시 금석문 1
1. 양덕동 姜氏 磨崖墓標
물빛공원 뒤 언저리에 앉은 자연바위에 마애비를 조성하였다.
양덕동 물빛공원 옆 공터에 앉아있는 자연바위에 묘표를 새겼다.
6~7년 전인가, 양덕동 경지정리 때 강형구샘과 함께 진즉에 봤지만
그땐 별 관심을 두지 않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누군가 제보를 하여
다시 찾게 된 모표바위이다.
두 강씨의 모표로 부인과 함께 묘소를 조성하고 이를 새겼나 보다.
배 오천정씨지묘, 배 파평윤씨지묘 글씨는 확인할 수 있다.
자세히 조사하면 판독이 충분할 것 같으나 마지막 조성년도를 보니
1955년으로 되어있어 오래지 않은 모표이기에 그만 두었다.
자세히 보면 좌측 세로 글씨로 년대수가 희미하니 보인다.
墓 標
六大祖姜命○
配烏川鄭氏之墓
○○○姜禮容
配坡平尹氏之墓
一九五五年乙未六月
2. 元禹常淸德善政碑
건립연대가 보이지 않는다.
용흥동 舊 도로변의 철도 옆 녹지에 위치하며, 비석들 중 가장 북쪽에
세워져 있다. 영일향교의 대잠동 이설과 지방 학문 증진에 공로가 큰
원우상 현감을 기리는 비석으로, 전면에는 ‘縣監元公禹常淸德善政碑’
글이 새겨져 있다. 비석의 크기는 폭 33.5㎝·높이 79㎝·두께 18㎝이다.
3. 尹慈承永世不忘碑
숭정기원후립
용흥동 舊 도로변의 철도 옆 녹지에 위치하며, 북쪽에서 남쪽으로
2번째 지점에 세워져 있으며 가첨석은 결실되었다. 부조시장과
어장의 융성을 회복하는데 공이 큰 윤자승 관찰사를 기리는 비석으로,
전면에는 ‘觀察使尹公慈承永世不忘碑’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비석의 크기는 폭 40㎝·높이 140㎝·두께 15㎝이다.
4. 文永錫遺墟碑
용흥동 舊 도로변의 철도 옆 녹지에 위치한다. 가첨석을 갖춘 비석으로
1971년 文永錫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비석이다.
전면에는 ‘童蒙敎官松齋文先生遺墟碑銘’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가첨석 앞면에는 도드라진 원구를 마련하고 내부에는 꽃을 넣었으며,
옆면에는 태극문양이 있고 아래로 꽃을 넣었다.
비석의 크기는 폭 40㎝·높이 140㎝·두께 15㎝이다.
오래지 않은 1971년
비머리 가첨석 앞면에 새겨진 꽃무늬-매화점처럼 보인다.
비머리 가첨석 옆면에 새겨진 태극문양과 꽃무늬
5. 李熙稷淸永世不忘碑
용흥동 舊 도로변의 철도 옆 녹지에 위치하며, 咸豊八年(1858년)
戊午正月에 세워진 비석으로, 전면에는 ‘縣監李公熙稷淸德善政碑’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비석의 크기는 폭 35㎝·높이 106㎝·두께 13㎝이다.
6. 趙錫雨永世不忌碑
용흥동 舊 도로변의 철도 옆 녹지에 위치하며, 戊辰(1868년) 四月에
세워진 비석으로 득량동 비석군 중 가장 남쪽에 위치하며,
비석 전면에는 ‘觀察使趙相國錫雨永世不忌碑’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비석의 크기는 폭 51㎝·높이 144㎝·두께 18㎝이다.
7. 田喜孝子碑
조선시대 중기 때 효자인 田喜의 효행을 기리는 비석으로 원래 마을
앞에 세워졌다가 효자초등학교 교정으로 이전하였다.
그 후 효자리 부지정리 작업으로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현재는 공원
한구석에 세워져 있다. 자연석에 약간의 인공을 거친 비석으로 가첨석을
갖추지 않았으며 양 끝부분은 둥글게 모죽임을 하였다.
전면에는 ‘孝子里 田喜學生’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비석의 크기는 폭 40㎝·높이 157㎝·두께 15㎝이다.
8. 李公愛民善政碑
강희45년 병술 사월일-강희 45년은 조선 숙종 32년으로 1706년을 말합니다.
자명리에서 기계방향과 흥해방면 우회도로 교차 지점, 학전리에 위치한다.
가첨석과 비신은 1매의 돌로 만들어졌으며, 비좌는 대리석으로 최근에
만들었다. 전면에는 ‘郡守李公愛民善政碑’라고 새겨져 있으며,
뒷면에는 송덕문이 있다.
가첨석 앞면과 뒷면에는 연꽃 형태의 꽃과 줄기를 새겨 넣었다.
비신의 크기는 폭 56㎝·높이 108㎝·두께 23㎝,
이수의 크기는 폭 60㎝·높이 85㎝·두께 30㎝이다.
9. 達田里 磨崖碑
지금 주상절리 부지에 대대적인 환경개선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전에는 도랑 너머 마애비를 어렴풋이 보기만 했었는데,
고맙게도 수로공사를 해놓아 이제는 아주 가차이서 볼 수 있습니다.
천연기념물 제415호인 달전리 주상절리로 올라가는 소로 동쪽의
자연바위 면을 비석모양으로 파내고 난 후 글씨를 새겼다.
비문의 내용은 많이 마멸되어 읽기 힘들지만 대략 큰 글씨로는
‘贈嘉...右工曺泰...金公....墓山碑文’ 등의 내용과
마지막 행에 昭和 11년이라는 글씨로 볼 때,
일제 강점기 인 1936년, 묘역을 표시한 마애비석으로 추정된다.
비석의 크기는 폭 72㎝·높이 131㎝·깊이 5㎝이다.
자세히 보면 소화 11년 이라는 글씨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상으로 지난 03월 18일에 다녀온 포항지역 금석문 문화재 모니터링
첫번째이며 두 번째는 이번 04월 08일에 용흥동/이동지역으로 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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