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의 지명의 유래
포항의 지명이 1739년 이전부터 통용되었다는 것은 기록으로 확인되나
현재 남아 있는 사료와 포항시가 형성이 북쪽에서부터 남쪽으로 옮겨지고
있다는 사실로 미루어 포항의 마을 명칭이 통양포(두호동지역)나 여천의
마을 명칭보다 늦게 이루어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렇다면 포항의 명칭이 어떤 유래를 지니고 있을까?
이 고장 출신과 주민이라면 한번쯤 관심을 가져 볼 수 있는 흥미로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포항은 그동안 경북 제일의 도시로 성장하였으며
1995년 통합 포항시의 출범 이후 시가 차지하는 지역의 범위가 크게 확
장됨으로써 시세가 엄청나게 신장되었다. 그러나 조선중기까지만 해도
포항은 하나의 동세로서 영일현 북면에 속했던 작은 마을에 지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포항지역은 예로부터 인류가 터를 잡기에 부적합한 곳으로
옛 기록에 다음과 같이 묘사되고 있다.
[형산성 아래 근오지현의 북쪽에 거친 돌무더기가 점점이 박혀 있고
활과 같은 긴 모래밭이, 푸른 바다에 다다라 사초가 만연하고 도처에
습기가 차서 사람이 살기에 좋은 고을이 못된다. 포항은 옛적에 영일만
일각의 사람이 적게 사는 시골 벽지어촌이다. 통양포는 두모포라고도 이르고
지금은 포항면 두호동으로 옛날에 만호영이 설치된 곳이며 영일만 수산의
중요 나루터이다. 영일현은 경주에 소속된 현으로 동쪽 가에 있고
그 지역이 또한 통양포에까지 다다랐으니 실로 왜구가 내왕하기 좋은 요충지다.]
앞의 기록을 요약하면 포항 지역은 원래 영일현 북편의 바닷가로서 사초가
만연하고 습기가 차서 사람이 살기에 부적합한 곳이나 왜구가 침입하는
요충지이기 때문에 통양포에 만호영을 설치하면서부터 벽지에 조그마한
고을을 형성하여 군사요충지로서 영일만 수산의 중요 나루터로서 성장해
왔다는 것이다. 이러한 형성 과정을 밟은 이 고장이 조선시대에 여천원과
포항창진(1731년, 영조7년)을 설치하면서부터 통양포라는 단순한 갯벌의
명칭 이외에 포항과 여천이라는 동명이 새로 형성되기에 이르렀다.
조선 중기에 불리어졌을 포항 향호가 어떻게 해서 명명되었는지 확실한
자료를 찾지 못해 현재로서 정확히 밝힐 수는 없는 것이나 현존하는
여러 사료를 분석 종합하면 그 윤곽을 잡을 수 있다.비록 불확실하지만
이에 관한 고찰의 선구적 역할을 하는 《일월향지》의 추정이 있다.
저자는 포항 즉 고지통양첨사진, 포항지고호통양포 등의 미확인 비갈기록을
근거로 고려시대에 통양포라고 하다가 조선초엽에 이르러 향호를 포항이라고
바꾸어 부르게 된 것은 확실한 것 같으나 그 이유는 알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포항 향호는 이 고장 고로의 전하는 말에 의하여 첫째 통양포의
포자와 형산항의 항자를 따서 포항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설과
둘째 포곡장정우수집항이란 글에서 포자와 항자를 따라 포항이라 호칭하였다는
설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두 주장의 밑받침 자료
포곡장전우수집항이란 개울의 활처럼 굽은 백사장의 해변에 오른손으로
목덜미를 잡는다는 뜻의 시구인데 이에 부합되는 곳이 어룡사(동해면에서
송도에 이르는 30여리의 백사장)와 형산강과 영일만의 자연적 지형을 구비하고
있는 포항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포항시 발전이 통양포에서 비롯되었다는
말은 수긍이 가나 고려시대의 명칭 통양포가 조선시대에 와서 포항으로 바뀌었다는
주장이나 통양포의 포자와 형산항의 항자를 따라서 명명했다는 설이나
포곡장정우수집항의 시구의 포자를 취해 불렀다는 말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오늘날 포항의 발전은 북쪽지역 즉 통양포에서부터 학산, 항구동 지역을
거쳐 점차 남쪽으로 발전했다고 보기 때문에 고려말에는 통양포 주위에만 고을이
형성되었고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그 남쪽에 여천과 포항마을이 형성되었다고 본다.
따라서 통양포지역과 포항지역이 다르다는 것이다.(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도 다르
게 표시되어 있음), 둘째 통양포진이 칠포로 옮겨진 후부터 군항으로서의 두호동에
설치한 그 의미를 상실했으나 통양포가 설치되어 있을 동안 위성마을로서 자라난
형산강 하류 즉 북하구의 외곽지역인 포항리가 조운과 물화교역의 중심지역으로
주목 받아 그 부근에 포항창진까지 설치하게 되면서 포항이 독립명칭으로 발전하게
되었다고 본다. 셋째 포항의 항을 형산강의 항자에서 따왔다고 하면 당시 조그마한
마을에 지나지 않는 포항 마을이 너무나 큰 영역이 되고 만다. 형산항은 엄연히
양산목, 양산미기 쪽을 두고 하는 말이다.
포항이라는 지명을 포항면, 포항읍, 포항시가 되는 근대 개항 이후의 형세로 본다면
통양포에서 형산항까지의 지역 추정과 포곡장정우수집항의 영일만지역 추정이 가능
하고 또한 세계적인 도시로 발전하는 포항의 옛 모습을 아름답고 크게 그려보고
싶은 소박한 애향심의 발로는 이해되나 이러한 고로의 추정과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수긍 할 수 없게 된다. 옛날의 부락 명칭은 단순한 것이다.
바다로 통하니까 통양(경남 사천에도 통양창이 있음)이나 통양포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고 특별한 지형의 바닷가이니까 두모포(한강유역, 경남 기장 등 전국에 많음),
갯미기(갯목)이니까 포항(함경북도의 청진과 온성 등 여러 곳에 '포항'이란 마을명
이 있음)으로 불리어 진 것이다. 이러한 조그마한 부락 명칭을 경주와 상주를
합쳐 경상도가 된다는 식으로 확대 해석하면 자칫 추정의 비약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삼가 할 일이다. '포항'이란 향호는 18세기 초 통야포만호영의 훨씬 남쪽
대흥산(오늘날의 대안 골짜기의 산)을 배경으로 형성된 형산강 북하구 즉 포항강
(칠성강)부근의 갯미기(갯목)의 한자화(개울 포자와 목 항자)에서 유래되었다고
추정한다.
이러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근거로 첫째 통양포지역은 조선시대에 거의 흥해군
동상면에 속하고 포항리는 영일현 북면에 속했다는 사실과 당시 북면 포항리가
영일현 읍지의 지도에 나타난 포항진과 포항창 지역이고 북면에서 가장 북쪽(득량
리 바로 위쪽)에 위치하였다는 고증이다. 둘째는 오늘날 포항지역에 가장 먼저
사람이 살았을 곳은 지대가 높은 서쪽의 산기슭이라는 대세론을 바탕으로 지도상에
서 그 지역을 찾아보면 이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산명으로 등장하는 대흥산의 기슭
과 골짜기가 되는 것이다. 태백산의 지맥인 대흥산은 형산강과 함께 자연이 베푼
양대 선물로서 산명이 나타내는 의미처럼 오늘날 포항의 형성 발전의 모체가 된
산이다. 대흥산은 오늘날의 용흥동 대안골(대안곡)을 중심으로한 죽림산(봉비산)
좌편의 현대아파트와 우방아파트 지역을 포함하는 일대의 산이다.
경상도속찬지리지(1469)에 영일현 북쪽 물곡동(오늘날 유밀곡:우미곡)에 대흥제(대
흥못)가 있어 18결의 논에 물을 대었다는 기록이 이를 방증해 주고 있다.
현재 대왕골, 대안골 하는 명칭도 우물곡의 음이 변해서 유미골 또는 유밀곡이
된 것처럼 대흥골의 음이 변해서 된 것이다. 셋째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최근 발견되었는데 1693년 영일현감이 발행한 북면 대흥리
13통9호 김성중(金聲重)의 호적부가 그것이다. 이 자료와 앞의 여러 자료들을 검토한
결과 대흥리가 1700년대 초 포항창진이 설치되는 전후에 포항리로 개칭된 것이
확실하다. 대흥리와 포항리의 구역범위가 거의 같고 포항리의 동명이 북면에
나타날 때 대흥리의 동명이 보이지 않고 있는 사실이 입증해 준다.
17세기 말엽의 대흥리(후의 포항리)는 적어도 100여호의 마을을 형성하여 18세기
에 크게 번창할 포항리의 모체로서 성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대흥이란 명칭
은 포항 향호의 유래 상 제일의적인 위치를 찾아야 하는 소중한 지명이 된다.
포항이란 향호의 유래를 고찰해 보았는데 여기서 다시 한 번 유의해야할 것은
포항과 통양포의 관계이다. 광의로 본다면 통양포는 포항의 전신이 되나 협의로
본다면 그렇지 못하여 두 마을은 서로 다른 역사, 지리적 배경을 띠고 달리 발전해
온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즉 통양포는 광의로 본다면 오늘날 포항시지역의 영역 상 최초의 명칭이라고 할
수 있게 된다. 일찍이 이 고장에 통양포수군천사진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으나
일제강점 시 일제가 파괴했던 것을 1970년 12월 합병 60년이 지난 뒤 포항시
사적보존회에서 통양포수군첨사진영기지 사적비를 세워 역사적 사실과 의미를
기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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