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외지역/경상도

[스크랩] 내친김에 비슬산을 오르다

참땅 2009. 9. 7. 13:02

 

등산에 큰 매력을 가지지 못했던지라 누가 산에 가자고 하면

‘산은 밸로...’ 하면서 어줍쟎은 표현을 했던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지금도 산을 좋아하는 건 아니다.

다만 싫지 않다는 내색을 표할 뿐이다.

요 근래 설악산 봉정암이라는 험하고 긴 산행을

마치고 갑자기 산에 덤벼들 용기가 생겼다.

물론 산꾼 들과 같이 호흡을 맞추기는

아직도 무리라는 걸 내 자신이 잘 알고 있다.

그렇다고 유명산을 찾아 오르내릴 만큼

산을 좋아하고 환장하는 건 절대 아니다.

그 산에 부처님이 계시고

수백 년을 아랑곳없이 자리를 지키는 석탑이 있거나

이름 없이 허물어진 석조물, 민중의 손길이 배어든 바위문화를

찾아나서는 산행이라면 언제든지 환영할 만큼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다.

허기사 지금도 멀리 지리산 법계사터

월출산 구정봉 마애여래상을 선뜻 찾아 나서지 못하는 것은

지리적으로도 먼 길인데다 등산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다.

그래서 산을 좋아하는 꾼들이 먼 곳으로 등산을 가는 걸 보면

야, 참 대단하다고 느낄 때가 많은 게 사실이다.


그래서 계획도 세워 보았다.

비슬산 대견사터, 지리산 법계사터, 월출산 구정봉- 올해 내로 올라가보자고.

해서 지난 10월 19일에는 설악 봉정암을 동행한 의기투합 일행 한분과

동네 뒷산을 앞장서서 주름잡으며 나댕기는 우리 집사람과 비슬산을 올랐다.

명목은 등산이지만 내 관심은 오로지- 즉 동상이몽이라고 해야 할 듯

소재사- 염불암 석탑- 금수암 석탑- 대견사터- 용봉동 석불입상

이렇게 톺아보는 시간은 대략 5시간을 예상하고 올랐는데

주차장까지 내려오니 약 6시간 정도 소요되었다.

아매도 대견사터에서 점심을 먹으며 지체한 시간 때문인가 싶다.

 

                       소재사 대웅전 삼존불, 영산회상도 후불 탱화(부채모양이 탱화복장이다)

 

 비슬산 휴양림 못미처 무료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소재사 까지는 넓고 평탄한 길이 금방이다.

들어가는 입구 쪽에서 차량 통제를 하며

예약 숙박하는 손님들만 통과를 시켜주고 있다.

소재사(消災寺)- 사찰 이름이 재미있다.

재앙을 깨끗이 없앤다는 의미?


비슬산을 배산 하여 서향으로 앉은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를 주불로

오른손에 약합을 든 약사여래불이 좌측에

왼손에 연봉오리을 든 연등불이 우측에

가벼운 고개를 숙이며 좌정해 계신다.

선명한 물결무늬의 광배가 뚜렷한 후불탱화에는

가슴에 卍 자를 넣었고 영산회상도 상부에 부채모양 같은 게 걸려 있는데

석탑, 석불 내부에 봉안 된 복장유물과 같이

 탱화조성 내력인 기장으로서 탱화복장이란다.

좌우벽면에 육환장을 든 지장보살상, 백의관음보살상

몰래 사진을 찍느라 지레 겁을 먹어 제대로 보지 못해 안타깝다.

몰래 찍은 사진도 흐릿하여 쓸 수도 없다- 아까운거...

 

                         명부전의 지장보살좌상 

 

 명부전에는 금색 칠을 한 지장보살상이

조그만 건물에 답답하게 앉아계신다.

고고한 기품으로 단정하게 머리를 약간 숙이고

중생을 굽어 살피는 지장보살상은 균형 잡힌 위엄과

자비를 갖춘 자세로 하품중생인의 수인을 취하고 계신다.

좌우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을 협시로

염라대왕을 비롯한 명부시왕을 거느리고

사이사이 시중을 드는 동자상을

그리고 판관, 사자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매끄러운 아름다움으로 손금까지 사실적으로 표현된

목조금칠지장보살좌상을 한참이나 알현하고 명부전을 나온다.

띄엄띄엄 들어앉은 전각으로

소재사 너른 마당은 휑하니 비어있다.

담장조차 제대로 없어 겨울에는 더욱 을씨년스러우리라.

인연이 닿으면 대웅전과 명부전을 다시한번 더 찬찬히 훑어보고 잡다.

 

                             염불암터 삼층석탑 

 

소재사를 지나 대견사터 방향으로 휴양림 안으로 오르는

오르막길 시멘트 길은 제법 숨이 가빠오기 시작한다.

벌써 이라모 우야노

염불암- 연못 휴게소 옆길 제법 가파른 오르막으로 400m

잠시 평상에 앉으니 집사람은 쉬고 있겠단다.

의기투합 일행과 가파른 급경사 길을 20분 정도 오르니

낮은 키의 산죽무리가 나타나며 바위 너머

씻은 듯 깨끗한 몸매의 삼층석탑이 자태를 드러낸다.

석탑이 자리한 터에는 암자가 들어설만한 공간이 부족해 보인다.

 

                        삼층 탑신(면석에 희미란 글자체가 보인다)                          

 

 탑 옥개석의 지붕전각에는 살을 덧댄 듯 도톰하게 살을 붙여

우동을 뾰족하니 높이 세워 귀마루까지 이어져 있다.

비례, 체감을 따지는 전형적인 탑보다

정을 거머쥔 석공의 땀이 깊이 배인 듯하여 오히려 정감이 간다.

이리저리 살펴보다 문득 삼층 탑신을 살펴보니

보수된 흔적이 확실한데 북동방향의 면석에 희미한 글자체가 보인다.

2줄 또는 3줄의 글자, 숫자가 혼용 되어 새겨져 있다.

윗줄 끝 무렵에는 숫자 같은데 ...994 같기도 하고

아무튼 기계로 절단한 흔적이 뚜렷하게

두 개의 돌로 삼층 탑신을 올렸는데 그리 오래지 않은 년대에 보수된 듯하다.

휘여휘여 급한 길을 내려오니 휴게소에서 염불암 석탑까지는

대략 왕복 40~50분 정도 소요 되었다.

 

 

                                    금수암터 석탑 

 

다시 가던 길 따라 오르다가 우측에 너덜지대(암괴)가 보이고

등산길과 임도가 갈라지는 지점에서

집사람과 헤어져 좌측 편 임도로 길을 잡는다.

계속 오르막 산길이지만 시멘트 길이 끝나고 자갈 흙길이어서

걷는 데는 별반 무리가 없다.

그렇게 400~500m, 약한 오르막이 끝나고

평탄한 길이 시작되는 구름다리 바로 못미처

좌측 언덕 위에 금수암터 석탑이 숨어 있었다.

길 위에서는 석탑이 안 보이고 언덕 위에 올라서야만 볼 수 있다.

비율로 보아 삼층석탑 같은데

지금은 기단부와 1층 탑신, 1층 옥개석만 남아 있다.

금수암터는 휴양림 임도에서도 동쪽 자락

제법 먼 곳인데 어쩌다 이곳까지 흘러 왔는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낯선 곳에서 숨어 지내는 것일까?

변색되고 이끼가 낀 세월의 무게는

전혀 없이 매끈한 몸매의 석탑은

막 목욕을 끝낸 옆집 새색시처럼

수줍어 부끄러운 듯 숨어 있다.

주등산로가 아니어서인지 간간이 말소리만 들릴 뿐

찾는 사람은 우리 밖에 없는 것 같다.

 

 

                               등산로 오르는 길에서 본 대견사터 석탑 

 

 구름다리를 거쳐 주등산로와 만나는 지점에서

헤어진 집사람을 기다렸으나 10여분이 지나도 오질 않는다.

날은 덥고 다리도 아픈데- 짜증이 슬슬 날라칸다.

아까 헤어진 지점까지 뛰다시피 내려가니 없다.

대견사터로 바로 내쳐 올라 간 것 같다.

입에 단내가 나도록 되쳐 올라오니 죽을똥 살똥이다.

여기서 한 시간

간식거리, 생수도 내가 맨 배낭에 있는데

자는 우얄라꼬 바로 올라 가뺐노.

허겁지겁 마음은 대견사터에 이미 올라 서 있다.

 

                                                         석굴 옆 대좌  

 

 바위너덜이 끝날 무렵 아득하니 대견사 탑이 보인다.

오메 저긴가벼

좀 더 힘을 내고 치달아 본다.

막바지 오르막이 끝나니 걷기 좋은 평지 길이 나오는가 싶더니

한두 번 휘어진 길을 제치니 바로 대견사터가 나타난다.

후~하 오늘도 한건

산위에 흔치않은 평지가 절집을 들어서게 했는가 싶다.

절벽위에 우뚝하니 솟은 대견사탑은 정말로 장쾌하고 장중하다.

이토록 아득한 산꼭대기에 장중한 탑을 솟아오르게 만든

고귀하신 옛님들의 혜안에 새삼 탄복을 느낀다.

 

 

                                 석탑 옆에 놓인 석부재(무슨 용도인지?) 

 

허기진 식욕을 김밥으로 느긋하게 점심을 때우고

대견사 석탑 가까이로 가니 자전거 동호회원들이

좀체 자리를 양보해 주지 않는다.

석굴 앞 마애선각, 연화대좌, 계단자리 등을 둘러보고

탑 앞에 사람들이 물러났기에 찬찬이 보기위해

걸음을 떼는데 웬 하루살이가 그렇게도 많은지

눈, 코, 귓구멍으로 쉴 새 없이 달려든다.

어찌어찌 겨우 몇 장 찍고 나와 보니 온 옷이고

머리에, 귓구멍에도 점 같은 하루살이가 까맣게 붙어있다.

 이거 혹시 음식물쓰레기 때문에 벌레가 이는 거 아닌가도 싶다.

우리 옛님은 절대 산에 가거들랑 음식물쓰레기 함부로

버리지 말고 꼭 되 가져 오이세이.

 

 

                           석굴 입구 마애선각 

 

 내려오는 길은 등산로가 아닌 임도를 택했다.

관기봉 가는 임도를 따라 내려오는데

이짝 꼭대기에 공사현장이 보인다.

흡사 탑 모양의 둥그스럼한 건축물을 짓고 있는 중이다.

저기 무신 일이고

비슬산 꼭대기에 웬 시멘트 건축물

참 밸난 세상일세

자연보호, 자연보호...

맨날천날 입으로만 떠들어 재끼모 머하노

우리보고는 산에 성냥만 들고 가도 벌금 내라 하면서

저거는 비슬산 꼭대기에다 집짓나...

그것도 일이층이 아이고 수십 층이나 짓나

 

                            대견사터 석탑과 한창 공사 중인 산꼭대기 건축물

 

                                         부처바위와 대견사터 삼층석탑         

 

그렇게 그렇게 열불 내면서 내려오다 보니

용봉 석불입상 팻말이 보인다.

임도를 벗어난 급한 내리막길이다.

작은 판잣집 두어 채가 보이며 채진 밭도 있고

우편 너른 터를 독차지한 용봉동 마애약사여래입상을 만났다.

광배와 불상을 한 돌에 조각하였으며

오른손에 약합을 들어 약사불임을 알켜 준다.

소발 머리에 육계는 두툼하게 솟았고

광배에는 다섯 구의 화불을 배치하였으며

제법 오래된 맛이 있어 통일신라 후기쯤의 작품인 듯하다.

보살님은 식구들과 둘러 앉아 늦은 점심을 들고 계셔

퍼뜩 샘물만 한 모금 들이키고는 얼른 자리를 떴다.

산길은 금방 끝나고 신작로(자갈길) 임도가 

또 다리를 피곤하게 한다.

이런 길은 정말 싫은데...

 

 

                      용봉동 마애석조여래입상  

 

후끈거리는 발바닥을 위해 등산화를 벗어

숨통을 틔워주니 내가 살 것 같다.

현풍 갈림길에서 두부김치에다 동동주 한 사발 제끼니

만사가 형통이고 천지가 내 세상이다.

다음 달에는 월출산 간다꼬 하니까 며칠쯤에 갈 거냐고 되묻는걸 보니

집사람은 벌써부터 내심 기대가 되는 갑다.

ㅋㅋㅋ

한동안 동네 뒷산을 쪼차 댕기디마는 제법 이력이 붙었는 갑다.

 

                    마애여래입상을 뵈고 내려오는 길에서 올려다 본 대견사터

 

우에던지 돈 마이 벌게 해주시고 복도 마이마이 받게 해주사이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보일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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