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외지역/경상도

청송 가는 길 - 한 꼭지

참땅 2014. 12. 8. 11:40

청송 가는 길 - 한 꼭지

 

영천 북안의 이당선생 묘소 간산에 이어 근 한 달 만에 청송 가는 길.

잔뜩 찌푸린 하늘은 비가 올라나, 눈이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이다.

네비로 시간을 확인 해 보니 두 시간 30분이 넘는 거리이다.

쪼맨한 모닝차량에 장정 네 사람이 비좁게 틀어 앉아 자리는 불편할지라도

마음만은 가벼웁게 청송 심씨 시조 심홍부의 묘소를 찾아 나섰다.

 

청송심씨 묘소는 이태 전 보광사를 들렀을 때는 별로 관심 밖이었으나

이제 막 풍수를 배운답시고 스승님을 따라 두세 차례 간산을 다니고 나서야 

(오늘로서 세 번째인가, 네 번째인가 싶기도 하다.)

내눈의 가시거리에 포함되고 말았던 것이었으니...

 

 

31번국도 상에 청송민속박물관의 이촌리석탑이 퍼뜩 생각이 나

급하게 방향을 회전하니 꾸벅꾸벅 졸고 있던 일행이 머리를 쳐든다.

~.

(여기서 쫌이란? 하지마라, 부탁한다, 멈추어다오, 이러지 마라 등등.

전라도에 거시기가 있다면 갱상도에는 이라는 엄청난 내공을

풍기는 수식어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새삼스레 대한 이촌리석탑은 생면부지처럼 낯설게 서 있었다.

왜 나의 기억으로는 엄청난 높이의 거대한 탑으로 기억되어질까

요지음 점점 기억에 대한 자신감이 시나브로 사라지고 있는 것에

술을 줄여야지, 담배도 끊어야지 하면서 의지의 부족 현상으로

질기고도 질긴 연의 끄내끼는 끝 간데를 알 수 없듯 이어지고 있음에랴.

 

이촌리석탑은 원래 9층탑으로 이촌리 서북쪽 고개에 있었던 것을

1942년 이 마을 앞으로 옮길 때 5층으로 조성한 고려시대의 석탑으로

높이는 3.5m이다. - 이 안내 문구 뭔가 어설프다.(5층으로 조성했다니...)

그보다 전에는 보여주지 않던, 아니 내가 부족하여 놓쳤던 것을 볼 수 있어

또 하나의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얘깃거리를 찾았다.

 

 

 

 

석탑 기단부 갑석에 듬성듬성 약20개 정도의 바위구멍이 새겨져 있는 것이다.

정확한 수량을 헤아려 보아야겠지만 대략 16~18개가 눈에 바로 들어왔다.

마을 동네 인근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던 기복신앙의 전형적인 모습을

오늘 무지렁이 우리들에게 그 속살을 온전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1층 지붕마루에도 점점이 박힌 소원풀이글자도 漢字, 한글 혼용이다.

이중에는 장난으로 꺼기적 거린 글자도 있을 것이고, 무궁무진한 부처님께

소원성취 치성용 글자도 있을 것이고, 부화뇌동 슬렁슬렁 글자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러한 것들이 우리네의 진짜 본 모습이 아닐까 생각도 해본다.

전형적인 패턴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단순 반복 기복신앙의 한 모습이리라.

 

 

포항에서 북으로 얼마나 올라왔다고 눈이 녹지 않은 황량한 산 계곡에서

내리 꼳듯 닥치는 세찬 겨울바람은 여밈이 덜한 옷깃 속으로 파고든다.

한 점이라도 막을 요량으로 자꾸만 몸은 움츠러들고 걸음은 또한 굼벵이다.

어기적어기적 채 녹지 않은 오르막을, 요리조리 쌓인 눈밭을 피하며

심씨 시조묘소 앞에 다다르니 가랑가랑 심호흡에 찬 기운을 마실 무렵이라

그나마 몸에서 뿜어 나오는 더운 기세로 약간의 긴장을 풀어본다.

 

 

 

 

부드러운 잔디로 덮힌 무덤 뒤편의 입수처인 은 정말 대단하였다.

주산에서 낙맥하여 위이로 굴곡하며 내려 온 용맥의 힘이 엄청난데다

빵빵한 기세를 어김없이 혈로 보내지는 그 기운이 정말 대단한 것 같다.

우리나라 8대 명당을 소개할 때 자칭타칭 유명 풍수가들은 제각기 각각의

의견으로 합일치를 이루기는 어려운 통에 약 25개소로 나누어진다고 한다.

그중 심씨 시조 묘소는 한 번만 나타나는데 이는 뭔가 단점을 안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추정해 보기도 한다. - (참고: 8대 명당은 풍수를 훼절하다)

유명 가문의 묘소를 두고 이러쿵저러쿵하는 것도 예의에 어긋나는 일,

함부로 남의 가문에 누를 끼치는 짓거리는 삼가야 하리라.

 

- 심씨 시조 심홍부라는 어휘보다 세종대왕비인 소헌왕후가 더 와 닿는

   심홍부 묘소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