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외지역/강원도

[스크랩] 설악 봉정암- 반 죽다 살아 왔니더

참땅 2009. 9. 7. 12:57

거대한 자연 앞에 이토록 초라한 인간일 줄이야

맨날천날 말로만 들으모 머하노

한번 직접 보는기 그만인기라


막상 설레는 흥분으로 집을 나선 시간은

느지막한 밤 하고도 깊은 10시경

의기투합한 일행들과 만나 포항을 나서니

시계는 자시를 막 넘기려 하고 있었다.

설악이라는 산을 처음 대한건 맞선 본지 두 달 만에

서른 잔치를 치루고 신혼 여행길이었으니

20년이 다 되어가는 근 반반세기 만이다.

비틀비틀 꼬부라진 해안선을 따라

길고도 지루한 7번 국도는

온통 까만 밤을 칠해 놓아

콩인지 된장인지 구분도 없다

그러나

까맣게 무미건조한 이 까만 밤에

듬성듬성 머언 먼 바다 수평선위를 찬연이 빛나는

이까배(오징어잡이 선박)의 집어등 불빛은

환상의 나래를 연출하고 있었으니

내 어릴 적 동네 앞바다를 밝히던

그 불빛과는 또 다른 맛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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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 오색 단지에 도착하니 새벽 3시 중간을 넘었다.

둘레둘레 끼니 때울 밥집을 찾아 한참을 쏘다닌 끝에

이제 막 전등을 켜고 주방으로 나서는

밥집 아지매를 고요한 상가에 철문이 흔들리도록 불렀다.

밥 되능교?

새벽 5시에 예약 손님이 있어 일찍 일어났단다.

고마운 밥집 아지매

멀건 황태 국밥 육천원

조막디만한 김치 쪼가리 몇 개 보탠 주먹밥 사천원


전투에 임하는 전사마냥 조그만 휴대 불밝이

등산화 끈 조여매고

모자 달린 겉 점퍼의 지퍼를 올리고

잡동사니 그득한 배낭을 들추어 메고 드디어 출발

설악 오색의 새벽은 고요한 가운데

깊은 울림과 새 세상을 맞이하는 분주함으로 그득하다.

나도 그 분주함 속에 흥분을 애써 감추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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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배까리 돌로 만든 돌길, 돌계단의 연속 

20여분 쯤 올라가니 숨이 가빠지며 헛구역질이 나온다.

멀건 황태국밥을 훌 마시듯 집어넣고

채 숨을 고르기도 전에 거대한 설악을 오르려니  

설악에 대한 예의 부족 탓

니가 나를 와 만만하게 보노...

 

머리에 불 밝힌 남정네

손에 손에 손전등을 꽉 움켜쥔 아지매, 아지매들

지팡이 위에 손전등을 끼워 조심스런 늙은 아저씨들

점점 한구석으로 밀리더니 난간 줄에 매달리기 시작이다.

내를 추월하는 인간들이 좀 된다 싶었는데

의기투합 일행은 불러도 대답 없이

가뜩이나 검으틱틱 신 새벽의 공허함만 채울 뿐

앞선 사람들의 검은 등짝만 눈앞에 아른아른 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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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한참 위로 반짝반짝 전등 불빛이 아련하다 싶더니만

문득 고개 들어 하늘을 올려다본다.

우-와!!!

점점이 수많은 별들이 바짝 코앞에 보인다.

까망 도화지 위에 아로 새기 듯

커다랗게 밝디 밝은 별들이 무수히 박혀 있다.

내 생전 이렇게 커다랗고 환한 별을 본적이 있었던가?


설악에 가시거든

혹여나 한밤중에 가시거든

꼭 고개 들어 하늘을 보세요.

잡은 손에 전등일랑 꺼둔 채로 


흐릿흐릿하던 하늘에 박힌 별들이 그 색깔을 달리 하는가 하더니만

점점 주위가 밝아 옴을 몸으로 느낀다.

그랬는데 어느 새 환해진 새벽 설악 너머로

앞으로 앞으로 내달리는 산들의 행진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간간이 하얀 운무를 띠처럼 두른 채

말달리듯 굽이치는 산들의 행렬은

속 깊은 곳에서 우렁찬 탄성을 내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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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해오름이 시작 되었건만 내 발걸음은 아직이다.

후~ 후~ 역겨움을 토해내듯 깊은 숨을 몰아쉬고

내 생애 마지막 설악이라 생각하고 가자, 또 가자

말로만- 채 스무 걸음도 못 내딛고 난간 줄을 부여잡고 매달린다.

점점 앞서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주저앉은 사람, 난간대를 부여잡고 씨름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어, 저 사람 어디서 봤더라...

아, 아까 난간대 붙잡고 통곡하던 사람이네.


어기적어기적 땅만 쳐다보며 또 오른다.

스무여남은 걸음 걷고 돌바우 위에 앉아

‘내 생애 마지막 설악이다’

또 여남은 걸음, 또 주저앉고 

얼마나 올랐는가가 아니고 얼매나 흘렀는가 했는데

앞이 확 트이더니 대청봉 분지가 나타난다.

으~하하하 대청봉이다.

우리 의기투합 일행은 한 시간이나 지달렸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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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봉 표지석 바위 암반 위에는 사람 사람들로 넘쳐나고

쾌청한 날씨임에도 불어대는 바람은 아립도록 차가웁다.

줄줄 흐르는 땀방울을 훔치고 옷깃을 여미고는

돌바우에 걸터앉아 막걸리를 내 놓았다.

사과 한 개씩 손에 들고 막걸리를 마신다.

‘봉정암 까지는?’

‘중청, 소청 거쳐 앞으로 두 시간’

오색에서 새벽 4시경에 출발하여 대청까지 4시간 걸렸고

봉정암 까지는 두 시간 정도 가야 한단다.

다행히 오르막이 아니라 내리막이라는 것에 위안을 삼는다.

좀 있으려니 한기가 밀려와 서둘러 대청 대피소로 내려왔다.

한 10여분 정도 쉬다가 또 출발이다.

방뎅이 골반이 쓰리고 무릎 관절이 아리고

발목 관절은 무거운 아픔으로 발바닥은 후끈거리는데

이노무 발걸음은 내 딛기가 왜 그리도 무겁고 힘이 드는지

엉거주춤 걸음걸이가 흡사 볼일 제대로 못 봐

뒷간이 마려운 할배 같다.


이제 시작이고 아직 쓸 얘기는 무궁무진 엄청난데

뒷간 해결이 급해가 고마 담에...

 

그라고 예고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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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보일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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