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 호암리 호랑이 석상
길가에서 느닷없이 나타난 호랑이
전주 국립무형유산원에서 1박 2일 간의 워크샵을 마치고 곧바로
임실문화원의 최성미원장님과 임실로 향하였습니다.
임실과 주위 면에서 면장님을 역임하시다가 몇 년 전에 은퇴 후
지금은 임실문화원 원장님으로 계시다는 최성미원장님은 실로
박학다식하시며 임실을 위해 많은 일을 하셨고 지금도 하고 계시는
그야말로 임실에서는 보물 중의 보불이신 분 이었습니다.
섬진강 상류 오원천변 도로를 따라 가다 호암리에서 냇가를 거슬러 오르면
작은 그랑(실개천)이 나오는데 이 그랑으로 약 100M 정도 가니
방형의 울타리가 처진 구역 안에 소나무 세 그루와 수풀에 잔뜩 몸을 숨긴
호랑이 한 마리가 낄낄거리며 웃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웃음소리에 깜짝 놀라 발걸음을 멈추게 되더라도 절대 두려워하지 마세요.
단단한 화강암 재질로 만들어진 호랑이 석상은 자연석 바위 위에 올라앉아
맞은 편 들판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원래의 방향과는 조금 틀어져 있답니다.
호랑이 석상이 굳건하게 딛고 있는 다리의 발부분과 자연석 바위의 홈자국이
약간 틀어져 있어 초기의 방향과 지금의 방향이 다름을 엿볼 수 있는데,
아마 원래의 방향은 맞은 편 산을 바라보고 있었지 않았나하고 조심스레
얘기를 풀어주시는 최원장님의 설명에 충분히 수긍을 할 수 있었습니다.
소나무와 수풀 속에 잔뜩 웅크린 호랑이- 무섭기보다 익살시럽다.
신장은 90cm 정도, 몸길이는 약 130cm, 머리 크기는 지름 약50cm 정도이며,
동그란 얼굴은 흡사 맷돌처럼 굴곡 없이 편평하며 특히 머리 위로 도톰한 귀가
한듯만듯 살짝 돋았으며 얼룩진 뺨에 코의 콧구멍도 오목하게 뚫어 놓았습니다.
하여 언뜻 보면 호랑이 석상이라기보다 사람 얼굴에 가까워 보이는 인상입니다.
지금은 건너 들판을 바라보고 있으나 원래의 방향은 아닌듯
이빨을 훤히 드러내 놓고 낄낄 웃고 있는 해학적인 이 호랑이는 동네 개구쟁이의
익살스러운 표정에 버금가듯 거짓이 없는 아주 친숙한 인상으로 보입니다.
‘겁나게 오래된 것’이라고 말할 뿐, 정확한 제작 시기는 아무도 모르고 있지만
그게 그리 머 대순가, 지금 임실 호암리에는 호랑이의 기운과 웃음소리가 섬진강
물줄기를 따라 흐르고 있음에랴.
원래의 방향은 건너 나지막한 산을 향한 듯하다.
믿고 싶지 않은 호랑이의 정체
때는 조선 후기, 아니 호랑이가 담배 피던 시절의 얘기라고 해두자.
산자락에 호랑이바위가 수호신처럼 버티고 있었을 때만해도 마을은 평화로웠다.
그러나 사람들은 아직 이 바위가 마을을 지켜주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바위에는 신령스러움이 깃들어 있었다.
범상치 않은 바위라는 걸 눈으로 직접 목격한 사람도 있었다.
주민 한 사람이 바위 가까운 곳에서 나무를 하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바위 주변에서 두런거리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오는 것이었다.
이상한 낌새를 느낀 주민은 바위 가까이 접근해갔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주민은 도무지 믿기 힘든 광경을 보게 되었다.
씨~익 쪼개는 모습이 너무 인간적이자 않은가
바위가 있던 자리에 실제 호랑이 한 마리가 엎드려 앉아 산 아래를 굽어보고 있는 게
아닌가. 더욱 놀라운 것은 그 옆에 산신령이 허연 수염을 휘날리며 앉아 있는 광경이었
다. 산신령은 호랑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무슨 말인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호랑이는
신령의 말을 알아듣는 듯 가끔 고개를 끄덕거렸고, 사람 목소리로 대답을 하기도 했다.
주민은 헛것이 보이는 게 아닌가 싶어 손등으로 눈을 부비며 계속 지켜보았다.
헛것이 아니었다. 분명 살아 있는 호랑이였고, 산신령이 분명했다.
순간 주민은 뭔가 엄청난 잘못을 저지른 듯한 기분을 느꼈다.
봐선 안 될 것을 보고 있는 듯한 심정이 들었던 것이다.
주민은 나뭇짐조차 팽개쳐둔 채 황급히 산 아래로 달려 내려왔다.
그는 집에 도착해서야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숨을 깊이 내쉬었다.
이 소식은 곧 동네 전체로 퍼져나갔다.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이었다.
“분명 헛것을 본 거겠지.”
“그 양반도 참……. 아무래도 너무 배가 고파 더위라도 잡수신 모양일세.”
저마다 한 마디씩 수군거리며 이웃의 말을 묵살했다.
사람들은 믿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마을 산에 진짜 호랑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겁을 집어먹은 탓이었다.
그들은 호랑이가 목격되었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꼈다.
가마이 보고만 있어도 절로 웃음 나온다.
ㅋㅎㅎㅎ 떡 하나주모 안 자바 묵~지...
금기를 깬 마을 사람들
그 일이 일어난 뒤부터 사람들은 호랑이바위를 피해 다녔다.
호랑이에 대한 두려움이 호랑이바위에 대한 두려움으로 옮겨간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람들은 아예 호랑이바위를 없애버리기로 뜻을 모았다.
호랑이를 본 주민만 빼고 모든 주민들이 꺼림칙한 바위를 없애는 데 찬성했다.
주민 혼자서 극구 반대했지만 한데 뭉친 사람들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바위는 그렇게 마을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바위를 살려둬야 한다고 주장했던 주민은 불안한 나날을 보내야 했다.
마을에 무슨 일이 터질 것만 같아서였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불안감은 곧 현실이 되고 말았다.
바위를 없애는 일에 적극 나섰던 주민의 집에 화재가 발생해 집이 홀랑 타고 말았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마을에 우환이 덮쳤다.
연이어 터지는 우환을 겪고 나서야 주민들은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사라진 바위가 마을의 수호신이었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 것이다.
주민들은 다시 산신령과 호랑이의 분노를 달랠 방법을 모색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바위를 지키고자 했던 사람을 찾아와 방법을 물었다.
“이 사람들아, 그러게 내가 뭐라고 했나? 이미 없애버린 바위를 어떻게 되돌려 놓을 수
있단 말인가?”
주민은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탓하며 난감해했다.
사람들이 답답하다는 듯 재우쳐 물었다.
“이제 와서 그걸 탓해 무엇 하겠나? 자네라면 뭔가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어디 말해보게.”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주민이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해보면 어떻겠나?”
“그래. 말해보게. 어찌 하면 되겠나?” 사람들이 어서 말하라고 재촉했다.
“바위 대신 호랑이석상을 마을에 모시는 것일세. 정식으로 호랑이를 우리 마을의 수호
신으로 모시는 것이지.”
주민의 말에 사람들이 크게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게 좋겠네. 그 방법이 있었군.”
와, 니도 우십나... 내도 윗긴다...
벌벌 떨며 호랑이 웃기기
다음날 사람들은 인근 마을에 사는 한 석공을 찾아가 호랑이석상을 조각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주민들은 석공에게서 놀라운 얘기를 듣게 되었다.
석공도 바위가 호랑이로 변신하는 걸 직접 목격했다는 것이었다.
“그게 무슨 소린가? 정말 자네도 봤단 말인가?” 사람들이 물었다.
“이제 와서 고백합니다만, 사실 전에 그 산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조각할 재료를
구하기 위해서였어요. 호암리 바위가 석상 재료로 썩 훌륭하더라는 얘기를 들었거든
요. 그래서 갔던 겁니다. 어리석은 짓이었지요.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그래서 어떻게 됐나? 그때 호랑이를 본 거로군.” 한 주민이 물었다.
“맞습니다. 바위에 정을 갖다 대고 막 망치질을 하려던 때였어요.
갑자기 지진이라도 난 듯 땅이 흔들리고, 엄청난 소리가 울려대기 시작했습니다.
순간 바위가 꿈틀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졌어요. 나는 그만 망치와 정을 내던지고 바닥
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그건 바위가 아니었어요. 호랑이였단 말입니다. 게다가
사람 말까지 할 줄 아는 호랑이였어요. 호랑이가 나를 잡아먹을 듯 입을 쫙 벌리며 어
흥, 울더니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놈! 어디 내 몸에 함부로 손을 대려고 하느냐?’
나는 그저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처분만 바라는 처지였습니다.
꼼짝없이 죽을 줄만 알았어요.”
사람들이 꼴깍 침을 삼키며 석공의 말을 경청하고 있었다.
당시를 회상하는 듯 잠시 말을 멈춘 석공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그 호랑이는 우리가 알고 있는 무섭고 사나운 그런 호랑이가 아니었
어요. 사시나무처럼 떨고 있는데, 호랑이가 갑자기 껄껄 웃어젖히지 뭡니까? ‘내가 그
리도 무서우냐?’ 호랑이가 물었습니다. 나는 그저 두 손을 싹싹 빌며 용서해달라고 빌
고 또 빌었습니다. 다시 호랑이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좋다. 단 조건이 있다.’ 용기를
낸 나는 간신히 고개를 들고 호랑이를 쳐다보았습니다. 웃고 있더군요. 나를 해치려고
하는 게 아니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호랑이가 앞발로 수염을 한 번 쓱 훔치더
니 다시 입을 열었습니다. ‘나를 웃겨봐라. 나를 낄낄 웃게 만들면 널 고이 보내주지.’ 그러면서 다시 껄껄 웃음을 터뜨리더란 말입니다.”
“정녕 그게 사실이란 말인가?” 사람들이 믿기 어렵다는 듯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럼 자네가 호랑이를 웃겼단 말인가. 그 덕분에 호랑이 먹이가 되는 걸 면했단 말인
가?”
“물론입니다. 제정신이 아니었어요. 도대체 뭘 보여줘야 호랑이를 웃길 수 있을지 막막
하기 그지없었습니다만, 무조건 웃겨야 산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정신없이 몸을 흔
들며 막춤을 췄습니다. 그러자 호랑이가 피식 웃었습니다. 나는 다시 여러 가지 동물
흉내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고양이가 되어 쥐를 쫓다가, 소가 되어 여물을 씹었어요.
원숭이처럼 네 발로 기어 보였다가 뱀처럼 땅을 기어 다니기도 했습니다. 호랑이는 앞
발로 툭툭 박수를 쳐주기도 하면서 내 공연을 즐기고 있었어요. 그러다 뻥 터졌지요.
성공이었습니다. 호랑이에게 쫓겨 도망치는 사자를 흉내 내는 장면에서 호랑이가 참지
못하고 낄낄 웃음을 터뜨렸거든요.”
“오! 자네도 정말 대단하이.” 사람들은 석공의 대담함을 추켜세웠다.
그라마 갈라나, 또 보제이...
“거기서 끝이 아닙니다. 한바탕 웃고 나더니 호랑이가 자기 등에 타라고 말했어요.
겁이 났지만 그 말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호랑이는 훌쩍 산을 타고 넘더니
몇 발짝 만에 내가 사는 마을 뒷산으로 나를 태워다 줬습니다.”
“이런! 그런 영험한 호랑이를, 그런 신령스러운 바위가 어쩌자고 없애버렸단 말인가?”
사람들은 가슴을 치며 후회했다. 그들을 바라보던 석공이 이렇게 제안했다.
“무섭게 생긴 호랑이 말고, 웃는 호랑이를 만들어 세우면 어떻겠습니까? 내가 낄낄거
리며 웃던 그 호랑이 얼굴을 조각해보겠습니다.”
주민들은 석공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렇게 해서 낄낄 웃는 호랑이석상이 마을의
수호신으로 세워지게 되었다. (현준이내 가족 카페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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