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임실의 광명등
구름도 르르고,
석등도 흐르고
나도 흐르고...
진구사터 석등
신평 가덕리 마을을 빠져 나와 용암리로 향하는데 최원장님의 안내로만 가다보니
도무지 방향 감각을 잃어버려 지시대로만 차를 진행 할 수밖에 없었다.
죄회전, 우회전, 직진 어~어 천처이...
우회전 하는데 너른 공터에 커다란 석등 하나가 확 눈에 들어온다.
우와 크다 하는 느낌이 먼저 와 닿는가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조각조각의 새김이 예사롭지 않음을 충분히 감지하는 순간 이리 큰 석등을
이리도 훌륭하게 조성 하였나 감탄을 내뱉으며 자리 앉음새 또한 주위 경관과의
조화도 멋지게 소화 시켰음에 감사함을, 이 자리에서 내가 볼 수 있음에 고마움을
몇 번이고 되 뇌이고 되 뇌이었다.
새파란 잔디 위에 엎어진 팔각의 지대석과
2매의 석재로 이루어진 하대하석을 올렸는데, 아래 위로 턱 굽을 돌리고
하부 굽 위로는 얕은 돌림대를, 상부 굽 아래로는 낙수홈 같은 장식을
그리고 그 아래에 얕은 돌림대를 장식하였다.
팔각 하대석 각 각의 측면에는 가늘고 길쭉한 안상을 음각으로 새겨 넣었다.
에뻤을 귀꽃은 하나도 남질 않고 깨져 버려...
하대하석 위로는 각진 팔각의 괴임석을 마련하고
그 위에 올려진 연화하대석에는 중복엽의 연화 복련을 여덟 판씩 새겼으며
그 꽃닢 끝에는 큼직한 귀꽃을 달아 장식하였으나 지금 귀솟음 봉오리가
멀쩡한게 하나도 없을 정도로 모두 깨어져 있어 참으로 안타깝다.
연화하대석 상부에도 팔각의 괴임대를 마련하고 고복형 간주석을 올렸는데,
간주석 하부에는 올망조망한 구름무늬를 빼곡하게 새겼으며
그 위에 배가 부른 중앙부 상, 하단의 주위에는 복엽8판의 양련과 복련을
원주형 북 모양의 아래위로 같은 모양의 양각대를 대칭이 되도록 하였으며
양각대에는 깊게 홈을 판 돌림대를 또한 조각하였다.
간주석과 상대석의 위치가 뒤틀려져 있어 혹시 도굴의 흔적?
앙련 내부의 보상화가 더 없이 예쁘기만 하다
단엽8판의 앙련이 새겨진 상대석 하부에는 구름무늬 괴임대를 조각하고
꽃닢 내부에다 보상화문을 각 각 새기고 휘어져 밖으로 살짝 공굴린 꽃닢 끝자락은
절제를 보여주려는 듯하여 더 없이 돋보인다.
도대체 이 사각의 홈은 무엔 용도인지... 혹 사다리 걸쳤던 흔적?
낮고 얕은 원형 괴임을 조출하고 다시 상부에다 높은 2단의 팔각의 괴임 돌림대를
올린 상대석은 화사석을 안정되고 굳건하게 받치고 있다
불을 밝히는 화사석은 길쭉한 장방형의 화창을 팔면에 모두 내어 시원한 감을
받았으나 특별한 장식이 보이지 않아 전라도 일부 지방의 양식인 것 같다.
옥개석은 하면에 1단의 낮은 괴임을 조각하였고
추녀의 낙수홈도 2단으로 각을 낮게 하여 조각하였다.
전각 끝에는 삼선형의 큼직한 귀꽃을 세워 놓았는데,
웅장하면서도 경쾌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실로 활발한 느낌을 받았다.
낙수면의 각 합각은 뚜렷하며 상부에 복련을 놓아 상륜부를 받도록 하였다.
옥개석 정상에는 현재 팔각의 이슬 받는 노반과 앙련을 조각한 앙화석 만이
남아 있는데, 원래는 보개와 보주 등 여러 가지 상륜부재가 있었을 것이다.
진구사지 석등은 그 크기에 비해 조각된 문양이 섬세하고 다양하며
전체적인 비례나 모양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눈을 즐겁게 하였다.
석등 뒤로는 법당을 오르는 석계단 일부가 남아 있으며 소맷돌 흔적 또한 확인
할 수 있었는데 계단 소맷돌 중간 지점에 쇄기 자국이 드러났다.
아마 누군가 이 돌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깨려고 했던 것 같다.
계단 난간석 중간 지점의 쇄기자국이 뚜렷하다.
여기에도 바위구멍이 ㅎㅎㅎ
오해하지 마세이- 구망 찾아 댕기는 사람이라꼬...
오래된 돌과 새로 조성한 돌의 세월 묵은 티가 역력히 드러나 보여 누구나
쉽게 옛돌을 만날 수 있는 법당터 계단을 오르니 석탑 부재가 눈에 밟혔다.
옥개석 3매와 면석 일부 그리고 기단의 일부 부재를 만났는데
옥개석 층급 받침의 수와 처마의 날렵한 새김 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말기의
석탑으로 추정하여 본다.
노반 상부에는 제법 큰 구멍이 보이는데 아마 찰주공이나 상륜부재의 홈인 듯하다.
찰주공, 상륜부 홈?
“진구”라는 명문기와가 출토되어 이곳이 진구사터임이 밝혀졌는데
그로인해 용암리사지 석등이라는 가명도 벗었으며, 진구사가 번성했을 당시에는
수도승이 천 여 명을 헤아렸다고 전하여지고 석등의 규모로 미루어 보아도
이곳에 거대한 절이 있었음을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다.
석등 향 좌측에 보이는 건물을 지금 중기사 석불 보관 절집에서 매입하여 곧 사찰을 건축 할 예정이랍니다. 그동안 문화재보호법에 묶여 못했다나요...
맑은 하늘에 흰구름이 두둥실 떠가는 그 공간 속에
하이얀 석등 또한 구름과 함께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내리 쏟아 붓는 따가운 햇살을 잠시 잊고 하늘을 올려 다 봅니다.
어느 듯 석등도 나도 구름과 함께 하늘을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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