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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 수정봉 거북바위

참땅 2012. 11. 26. 12:26

법주사 수정봉 거북바위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에 자리한 높이가 565m에 지나지 않는 수정봉은

낮은 산임에도 불구하고 속리산 8봉 가운데 하나에 속해 있습니다.

수정봉은 법주사의 북서쪽에 솟은 암봉으로 바로 법주사를 내려다보고 있으며

속리산관광호텔이 있는 상가쪽으로 줄기가 뻗쳐 있습니다.

수정봉에서 주위 산세를 둘러보면 묘봉에서 천황봉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호를 이루며 법주사와 수정봉을 들러 싸고 있는 형상입니다.

 

즉 주릉은 부채의 갓 둘레라 할 수 있으며 수정봉은 부채의 중심인

손잡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수정봉은 속리산의 핵이며 보옥이라 할 수 있습니다.

 

 

청동대불 뒤편의 봉우리를 수정봉이라 부르는 이유는 법주사를 중심으로

남쪽에는 남산이 있으며 남쪽은 화기가 있는 방향이고

법주사는 모든 건물이 목조로 되어 있어 남산의 화기 때문에

화재가 자주 일어나 이를 우려하여 법주사 뒷산을 물()의 성질을 가진

수정(水晶)으로 산 이름을 지어 남산의 화기를 눌러 법주사에 화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수정봉이라 하였답니다.

 

 

수정봉 정상 바로 옆에는 매우 큼직한 거북바위가 있습니다.

머리를 서쪽방향으로 쳐들고 있는 거북바위는 넓은 등과 물갈퀴 모양의

발까지 갖추고 있어 영락없는 거북이의 형상입니다

 

이 거북바위에는 다소 과장되어진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는데,

여기에는 중국과 관련된 두 가지 전설이 있습니다.

아마도 이 거북 머리가 중국을 향하고 있어서 만들어진 듯합니다.

옛날 중국 당나라 태종이 세수를 하려는 데 세숫물에 큰 거북 그림자가

비쳤답니다. 이상히 여긴 태종이 유명한 도사를 불러 물으니 도사가 대답하되

동국명산에 큰 거북이의 물형이 당나라를 향하고 있어 당나라의 많은

재보와 인재가 동국으로 들어가게 되었으니 사람을 보내어 동국 방방곡곡을

탐색해서 큰 거북 모습의 물형을 없애라 하였답니다.

이에 당태종은 사람을 파견하여 동국명산을 샅샅이 탐색하여 속리산 수정봉의

돌거북을 발견하게 되고 그 목을 자르게 합니다.

그리고 그 위에 10층 석탑을 쌓아 거북의 정기를 눌렀답니다.

 

그리하여 목이 끊어지고 탑에 짓눌린 형상의 돌거북이 되었다는 얘기와

또 다른 이야기는 임진왜란 때에 명나라 장군 이여송이 거북바위의

목을 베어 버렸다고 하는 얘기가 전해오고 있답니다.

 

 

두 이야기 모두 꾸며 낸 허황된 이야기지만 거북이 목을 잘라 골짜기에 버렸고

거북이 등에 10층 석탑을 세운 것만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1653년 효종 때 이 사실을 알게 된 목천군수 이두양은 각성이라는 스님을

시켜 거북의 머리를 찾아 붙이도록 하고 목 부위에다 받침석으로 머리를

받치게 하여 이에 거북의 머리가 제자리를 찾긴 했으나

목을 이은 흔적은 지울 수가 없어 그대로 남아 있답니다.

또 그 뒤 이 사실을 안 1655년 병마절도사 민진익이 충청관찰사 임의백과

상의하여 거북 등에 놓여 있던 석탑마저 허물어 버렸답니다.

지금도 수정봉의 거북바위 아래에는 당시 허물어 버린 석탑의 부재가 남아 있어

그때의 흔적을 쉽게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우암 송시열이 지은 속리산사실기비에 찾을 수 있으며

속리산사실기비는 현재 법주사 수정교 못 미쳐 비각에 있습니다.

 

 

 

아래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수정봉 넓은 반석위에 올라서니 주위 관망이 한마디로

끝내 줍니다. 너른 반석위에는 전각을 지은 듯 방형의 홈이 여기저기 조성되어 있는데

아슬아슬하게 절벽위에 걸친 전각에서 스님들은 불법을 머물게 하였고,

조선시대 양반님네들은 술이야 떡이야 풍류(?)를 즐겼을 여기 수정봉은 

과연 주위 경관 하나는 천하절경인 듯 싶습니다.   

 

 

 

방형의 석탑재에는 우주와 탱주도 모각되어 있고 

중앙에는 원형의 큰 홈을 조성하였는데 이는 다른 석탑재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양식인것 같습니다.

원형의 사리함을 조성한 것일까요? 

 

 

 

깨어진 석탑 부재가 언뜻 눈에 들어오는 것만 4기 정도 보입니다.

 

 

그리고 거북의 등 중앙쯤에는 석탑의 자리(?)인 듯 원형의 홈이 파여 있고

주위로 단 같은 형태를 조각한 흔적도 보입니다.

 

 

거북의 등 가장자리에는 귀갑문을 새긴 형태도 볼 수 있습니다.

약간의 공간을 마련한 등에다 귀갑문을 새겼고

공간이 부족한 가장자리에는 쇄기형식으로 귀갑을 표현 해놓았습니다. 

 

 

거북머리 옆쪽에서 거북 전체를 보면 물갈퀴가 달린 왼쪽 앞다리를 확연히 추정할 수

있는데 그 형상은 영락없는 거북이가 머리를 쳐들고 나아가는 모습입니다.

 

수정봉 봉우리 위에서 꽁무니를 법주사로 향한 거북이가

한발 한발 나아가는 모습을 상상해보니 정말이지 벅찬 감동으로 다가옵니다.

거북이 알을 낳으니 꽁무니 방향이 곧 재물이 들어는 방향이지 싶습니다.

 

 

왼쪽 다리 앞에서 위쪽으로 거북머리를 보면 남근 형상이 나타납니다.

거북머리와 남근은 거의 동시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중요한 사실 한 가지

거북머리를 자세히 관찰해보면 아주 흥미로운 바위문화를 접하게 되는데

거북머리 얼굴 우편으로 사람의 얼굴을 새겨 놓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머리 우편에서 상부쪽으로 엇비스듬히 두 개의 눈과 콧구멍 두 개

그리고 입까지 분명한 인위적인 인공으로 조성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재물과 장수를 상징하는 거북,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 남근

거기에 인면을 조성하여 더 한층 존격을 부여함으로

신앙의 한 축을 갖게 된 수정봉 거북바위는 2017년까지 출입통제 구역입니다.

 

 

법주사 뜰 가에 위치한 산호대(미륵대불 뒤 암벽 돈대)

입석대, 문장대, 경업대 등과 함께 속리산 8대의 하나이며

산호대란 이름은 신라 진평왕이 법주사에 분향할 때 스님들이

'산호만세(山呼萬歲-산처럼 오래 살라는 뜻)' 라고 외친데서 유래한답니다.

이후 바위가 바다의 산호처럼 울긋불긋 한데다 법주사의 화재를 예방하다는

뜻에서 물과 관련된 산호(珊瑚)대라 고쳐 부르게 되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