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뚜벅 뚜벅이 구룡포 한바쿠- 두번째
병포리 방파제에서 바라본 구룡포 항만의 모습입니다.
바로 보이는 빨간 등대 있는 방파제가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방파제입니다.
원래 이 터는 바다를 메워 조성된 부지인데 지금은 오징어나 과메기를 건조하는
덕장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왼쪽으로 동네 고샅길을 가다보면 뱃공장이 나타납니다.
4. 병포리조선소
병포리 맞구룡포에서 몇 년전에 새로 조성한 방파제 등대까지 걸어갔다.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니 한결 상쾌한 기분이다. 올 여름 내내 짜증스런 더위로
바람찬 바람이 그리웠는데, 이런 기분을 느껴보기란 참으로 오랜만이다.
너른 오징어·과메기 덕장을 지나니 바로 ‘배 공장’, 조선소 자리다.
앞쪽으로는 짙푸른 바다를 안고 돌아가는 구룡포항 자태가 일목요연하고,
한두 해 전에 마지막 목선을 만든 뒤로는 배 수리 장소로 쓰이는 조선소자리이다.
배 공장 한쪽에는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이 식사도 하고 참 때 막걸리도 한잔씩 걸치는
옛 주막이 있다. 주모도 손님도 없는 주막의 시멘트벽에는 빛바랜 탁주, 국수, 소주
글씨가 적혀 있다.
새로운 배가 태어나던 조선소 옆에는 낡은 배가 생애를 마치는 폐선장이 있다.
지금은 목선·철선 가릴 것 없이 이 배수리가 한창이다.
폐선장에서는 79t짜리 철선 한 척 해체하는 데 나흘이면 충분하단다.
폐선장 옆 산 밑엔 배의 안전을 기원하며 용왕신에게 제를 올리는 ‘용왕신당산’이라는
자그마한 사당이 있다.
막걸리통 몇 개 나뒹구는 낡은 사당 분위기가 폐선장을 닮았다.
큰 배와 작은 배 사이, 쌓이고 흩어진 목재 속으로. 드르르르 전기톱 소리가 아닌 쓱싹
쓱싹 톱질 소리 들린다. 속에는 나무고 겉은 플라스틱, 그리고 자주 부딪히고 상하기
쉬운 곳은 철판을 댄 이 배들을 목선으로 불러도 되나.
일하는 사람들은 분주히 배 하부를 갈고 닦고 방수제를 바르며 구경하고 선 우리를
힐끗힐끗 쳐다보기에 우리도 멀쑥하여 돌아서 나와 버렸다.
뱃공장에서 이제 구룡포시장으로 길을 잡습니다.
통통구리배(저인망어선)가 마침 작업을 나가기 위헤 배에다 얼음을 채우고 있습니다.
얼음 큰 덩어리 하나를 분쇄기로 갈아 잘게 으깨어 얼음 창고에 채우고 바다로 힘차게
나아가는 모습에 내일 새벽녁에는 배 한가득 고기를 잡아 돌아오길 기원해 봅니다.
5. 제일국수공장
제일국수공장 간판은 마흔살이다. 1960년대 국수공장이 개업할 당시
구룡포 우체국장이 직접 나무에 글씨를 써서 걸어주었다고 한다.
꽤 오래전일이지만 예전에는 하루 40포대의 밀가루를 사용하였지만 지금은
주말에만 30포대의 밀가루로 국수를 만든다고 한다. 일손이 없는 이유도 분명
있지만 국수 소비량이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감포가 고향인 할머니는 24살에 구평리 당수나무 부근으로 시집을 왔단다.
시어머니와 시누이, 동서 내외가 함께 살다 몇 년 후 옹기장수가 세를 얻어
장사를 하고 있던 구룡포 장터에 있는 작고 허름한 일본식 목조 가옥을 샀단다.
바람이 큰 날에는 파도가 밀려 바닷물이 집까지 들이치기도 했었단다.
어쩌다보니 시어머니께서 옹기장사가 팔다가 남은 옹기를 그대로 받아 놓는 바람에
어쩔 수없이 하게 된 옹기장사도 했었단다.
옹기장사를 할 때 곁에 대보국수공장, 오천국수공장이 있었는데, 당시 구룡포에는
영남국수공장, 털보국수공장 등 모두 합치면 여덟 개나 되었지만 어디든 국수는
잘 팔렸단다.
할아버지는 술을 좋아하고 친구를 좋아해 옹기장사는 뒷전이고 날마다 놀러 댕기는
통에 국수공장을 하면 일이 많으니 아무래도 술도 덜 마시고 덜 나가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옹기장사를 접고 국수공장을 열었단다.
기계를 사들이고 기술자를 고용해 2년 동안 부지런히 보고 배웠는데, 일은 고되지
만 벌이는 옹기보다 나았단다.
할머니 나이 서른한 살에 시작한 일이니 꼬박 41년 동안 가내 수공업으로 국수를
만들어 온 것이다.
국수는 굵기에 따라 20반, 22반, 24반, 26반, 27반등 여러 가지인데 숫자가 클수록
면이 가늘다. 지금은 크게 우동, 중면, 소면으로 나뉘지만 예전엔 우동면 보다 훨씬
더 굵은 면도 만들었다.
국수를 널면서 할머니는 바람을 살피는데, 반죽 보다 바람에 더 민감한 것이 국수다.
바람이 많이 불면 촘촘하게 널고 바람이 잔잔하면 간격을 조금 넓혀 넌다.
반죽 실패는 드물지만 바람에 의한 실패는 지금도 간혹 생긴다.
갈바람이 불면 국수는 이내 바삭바삭해져 버린다. 너무 빨리 말라버리기 때문이다.
갈바람과 하늬바람이 섞여 오면 눈으로는 차이가 없어 보여도 삶았을 때 동강이 많이
난다. 햇볕에 말리는 국수는 뭐니 뭐니 해도 샛바람이 최고다. 할머니는 대보에서
구룡포쪽으로 불어오는 샛바람, 바다에서 불어오는 갈바람, 산에서 내려오는 하늬바람
을 몸과 마음으로 감지한다.
슈퍼에 가면 갖가지 국수가 다 있는데도 아직 국수 삶아 파는 집에서는
제일국수공장 국수를 찾는다.
구룡포초등학교 앞 찐빵과 단팥죽으로 유명한 철규분식도 황외과 앞 할매국수집도
수십 년 단골이다. 장사하는 이들에겐 이윤을 남기라고 일반 국수보다 양을 조금 더
담는다. 요즘은 장기면에서 산딸기축제를 할 때 특산품 홍보를 위해 산딸기 즙을 가져
와서 국수를 빼달라고도 하고, 또 콩이 몸에 좋으니 콩가루를 섞어서 콩국수를 해달라
고 주문하는 식당도 있다.
6. 구룡포떡공장의 밀비기떡
지역마다 시장이 서는 날자가 장터 마다 다르나 지역 소규모 시장은 대다수가 5일 장
이다. 구룡포 장 서는 주기는 5일인데, 3일과 8일에 장이 선다.
즉 초3일·8일·13일·18일·23일·28일이다. 날자가 맞지 않아 구룡포장은 보질 못하였으나
시장 안으로 들어서니 기존의 가게는 손님들로 제법 시장 냄새가 묻어 나온다.
마침 떡집이 있어 힐끗힐끗 구경하려니 할머니 한분이 가게 앞 평상에 앉아 계시길래
수작을 부려보니 떡 해가는 길이란다.
밀비기떡 한 상자를 옆에 놓고 며느리를 기다리고 계시는 중이란다.
한때는 구룡포에서 큰 일 치룰 때 꼭 필요한 밀비기떡이 지금은 사라진 줄 알았는데
아직도 촌에서는 이걸 해먹고 있단다.
밀비기떡-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정겨운 떡 이름이다.
할머니는 주섬주섬 상자를 헤집고는 떡 하나씩 일행들에게 돌리며 먹어보라 하시면서
여기 떡집에서는 판매를 안 하지만 ‘조 밑에 가면’ 파는 데가 있을 거라 하신다.
고령에서 멀리 구룡포까지 아들과 함께 나들이 오신 대가야님은 ‘맛있다’며
하나 사먹자고 기어이 사러 가잔다.
밀비기떡 한 접시를 사고서는 하나씩 입에 넣어 먹으며 철규분식으로 향한다.
7. 50년 전통 철규분식
구룡포초등학교 정문 앞에 위치한 철규분식은 구룡포에서 제법 유명세를 타는
분식집이다. 50년 전통과 새벽녘에 반죽한 찐빵을 다 팔고나면 더 이상 찐빵을
만들지 않아 더 유명해진 분식집이다.
메뉴는 찐빵과 단팥죽 그리고 제일국수공장에서 만든 국수로 만들어 주는
냄비국수이다. 전에는 찐빵 따로 단팥죽 따로 팔다보니 단팥죽은 많이 남고 찐빵만
소비되어 지금은 셋트로 단팥죽 한그릇+찐빵 9개 하여 \5,000에 판매하고 있다.
할머니께 양해를 구하고 도마 위에 빚어 놓은 찐빵을 촬영하며 물어보니 찐빵
사 가는 사람도 옛날보다 못하단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만큼 인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렇질 않단다. 하기사 외지에서 얘기 듣고 오는
사람들이 철규분식에 와 보니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더란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도 짜증나는데 막상 차례가 되면 다 팔리고 없다며 다음에
오란다. 실컷 줄 서서 기다렸는데, 찐빵이 다 팔리고 없다니 기다렸던 사람들은 욕만
하다 돌아서서 옆집으로 갔다는 얘기이다 보니 좋지 않은 기억만 남게 된단다.
거기다 당시에는 찐빵 따로 단팥죽 따로 팔려니 단팥죽이 팔리지 않자 단팥죽을 끼워
팔기 식으로 하면서 주인아저씨가 손님들에게 무뚝뚝하게 대하자 기존의 철규분식
매니아들이 많이 떨어져 나가 버려 지금은 예전만 못하단다.
철규분식은 맛있는 찐빵집으로 소문이 자자한데, 특히 갓 쪄 내온 빵을 뜨거운 단팥죽
에 찍어 먹는 맛이 그만이다.
안주인 박상연(67)씨가 친정어머니에게서 빵 만드는 솜씨를 물려받았단다.
거의 안주인 할머니가 일을 맡아하고 남편인 할아버지 천수생(69)씨는 손님들을
맞고 있다. 초등학교 앞이지만 어린 학생들은 안 보이고 어른들만 자리를 잡고
있다. 옛날 학생들 단골 빵집이기에 주로 30~50대들이 옛 맛을 못 잊어 찾아오기도
하지만 가끔은 이곳의 출신들이 동창회·계모임을 자주 연다고 한다.
여기 팥소찐빵은 유독 노오란 빛깔을 내는데 이는 술로 빚어서 그렇단다.
그게 이 집의 노하우인 것이다.
도로에서 가끔 볼 수 있는 술떡을 만드는 그 재료를 말하는가 싶다.
암튼 예전만 못하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철규분식은 아직도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점심으로 모리국수를 먹기 위해 까꾸네 식당으로 가니 자리가 없어 밖에서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기에 우선 배나 채우자며 백설사로 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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