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비지정문화재

포항 주변- 신광, 동해

참땅 2011. 3. 14. 11:56

포항의 법광사터에서 청하방면으로 가다보면 안덕2리 표지석이 나오는데

좌회전하여 마을길을 계속 직진하여 못산마을 입구에 이르면

큰나무가 바위에 기대어 있는 곳이 학수당 바위입니다.

 

못산마을은 홍수로 인하여 제방이 유실되고 마치 산처럼 변한

못터에 마을이 생겼다하여 못산마을이라 불리게 되었답니다.

 

동구밖 마을길 여불딱에 학수당바위가 있고, 할머니가 집으로 가고 있네요. 

 

바위와 함께 붙어사는 팽나무는 수령이 200년이나 되고 다른 나무와

함게 끈끈한 정으로 맺어버린 연리목도 볼 수 있습니다.

 

흡사 어머니가 아기를 보담듯 큰나무와 작은나무가 서로 엉켜 붙어 있습니다.

 

바위의 이름은 신광 비학산의 학이 쉬던 곳이라 하여 학수당바위라고 하는데

한편 여기에는 슬픈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한답니다.

약 200여 년 전에 41세의 한 아낙이 이 바위에서 아기에게 젖을 물리다

아기와 함께 바위 밑으로 떨어져 죽은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도 마을에서는 동제를 지낼 때 아낙과 아기가 떨어져 죽은

바위 아래에 만들어진 자그마한 무덤에다 같이 제사를 지낸다고 합니다.

 

여기저기 바위구멍이 숱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이 학수당바위의 상면부에 약 80개 정도의 바위구멍이 새겨져 있으며

바위의 높이는 3m, 넓이는 4m가 넘으며,

새겨진 바위구멍의 지름은 대략 3~10cm 정도입니다.

 

바위구멍과 구멍 사이를 서로 연결해주는 선각도 새겨져 있습니다. 

 

 

여기에서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다 뒤편 구릉 아래에 민묘 2기가 있는데

민묘 바로 아래에 땅위로 소롯이 솟아난 바위에도 바위구멍이 있습니다.

바위크기는 1m 정도인데, 상면부에 21개의 바위구멍이 있습니다.

옛날 바위 옆쪽에 우물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흔적조차 없습니다.

 

여기에도 바위구멍이 새겨져 있네요.

 

신광면 만석리 선돌 

 

때는 신라시대 도성을 축조할 때 왕명에 의하여 한 마을 당 큰 돌을 하나씩

공출하도록 하였는데 이 동리의 힘센 역사 한사람이 이 돌을 지게에 지고 가다가

지게 끈이 떨어져 그만 이 장소에 세워 놓고 갔다고 합니다.

 

선돌은 씨족/부족 국가시대의 경계표석 또는 마을 간 이정표 역할을

하였던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정월 대보름에 제사를 지낸듯 합니다.

 

 

이제 신광면을 벗어나 영일만 바다로 향하겟습니다.

먼저 동해면 입암리로 가보겠습니다.

입암은 풀이 그대로 즉 선바우입니다.

오랜 세월 세찬 바다의 찬바람을 겪으면서 풍화된 바위는

지난한 세월의 무게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곳이리라 여겨집니다.


입암리의 지명유래가 이 선바우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선바우에서 대보방면으로 굽이를 막 돌아설 무렵 문득 빙혈이

눈앞에 나타나는데, 여기는 여름 찬바람, 겨울 따신 바람이 나오는

말 그대로 빙혈입니다.

바위틈 갈라진 곳에서 사시사철 약 13℃의 찬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도로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어 퍼뜩 지나치기 쉬운 곳입니다.

 

멋진 바위가 바다와 오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상하게 되는 곳.

 

 

여기에서 가던 방향으로 굽이굽이 두 굽이를 돌 무렵 하선대 표지판을 보고

바닷가 길로 내려서면 영일만 맞은편으로 바다에 둥실 떠 있는 자그만 돌섬

하나가 보이는데, 잠기기 직전의 돌섬이 바로 하선대입니다.

동네사람들에게 하선대를 물어보면 모르지만 ‘하잇돌’ 하면 다 아는 곳입니다.

 

 

입암리와 마산리의 경계지점 황옥포, 속칭 한끼미 바다 바위에 선녀가

자주 내려와서 놀고 갔다고 하여 ‘하선대’라고 합니다.

한 날 동해의 용왕이 매년 칠월칠석날에 하늘의 선녀들을 이곳에 초청하여

춤과 노래를 즐기곤 하였는데 용왕은 그 선녀들 중에서 얼굴이 빼어나고 마음씨 착한

한 선녀에게 마음이 끌리어 왕비로 삼고 싶었으나 옥황상제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물에 잠길 듯 하잇돌 즉 하선대가 보이고, 하얀부분은 갈매기 배설물이랍니다.

그리고 저 멀리로 화물선이 보이고 그 너머로 죽천쪽인데, 여기가 바로 영일만입니다. 

 

그러나 용왕은 옥황상제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바다를 고요하게 하여

태풍을 없애어 사람들이 고기잡이를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인간들이 편안하게 위하는 일을 하자 옥황상제가 감복하여 선녀와의 혼인을

허락하게 되었으며 동해 용왕과 선녀는 자주 이곳으로 내려와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고 하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