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지역 인면암각화를 찾아서
1. 포항 대련리암각화
포항 대련리암각화는 주변에 산재해 있는 5세기 삼국시대 고분의 무덤 내부에
축조되어 있던 개석에서 1996년에 발견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존의 고령 지산리, 부산 복천동 고분의 암각화는 다른 곳의 돌을 떼와
무덤 축조에 사용되어진 것이지만 이 곳 대련리의 것은 무덤 축조 당시
암각화를 새기고 사용되어 진 것으로 보여 집니다.
빨강모자를 쓰신 분은 경주의 남산지도를 만드신 송재중 선생님
두 손을 가지런히 맞잡고 열심히 설명하고 계시는 이하우 선생님
똑딱이로 사진 찍고 있는 경주신라사람님도 보입니다.
암각화의 제작의도 역시 인면의 날카로운 표정으로 봐서는
무덤과 무덤의 주인을 보호하기 위한 벽사의 의미로 새겨진 것이
아닐까 하지만, 또 다른 설로서 러시아나 해외의 예로
죽은 사람을 표현할 때 팔이 없거나 신체를 역삼각형으로
그린다는 것에 무덤 주인의 영혼을 그린 것이 아닐까 여겨지기도 합니다.
얼굴과 팔 없는 몸체 그리고 두 다리 사이에 굵다란 거...
2. 포항 장기 신계리고인돌
포항에서 장기로 가는 도로 한 켠에 ‘신계리’가 있는데
한 때 신계리 마을 이정표 역할을 했던 고인돌이 있습니다.
오래된 민묘와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 이 고인돌은 무수히 많은
바위구멍이 있어 충분한 유적의 구실이 되지만 지금까지도
시멘트 자국이 덕지덕지 붙은 채로 그냥 길가에 방치되고 있습니다.
오래된 민묘에도 가첨석을 갖춘 비석이 있고 그 앞에 상석 비슷한
거의 묻히다시피한 돌이 있는데 거기에도 바위구멍이 있습니다.
무덤에는 향로대도 있는 걸로 보아 제법 뼈대 있는 가문의
무덤으로 보여 지는데 아마 ‘통정대부 창령 이운기’ 님이
신계리에서 꽤나 이름이 있어 그 분의 묘지인가 싶습니다.
3. 포항 장기 용암
할배바위, 첩바위, 할매바위 그리고 훈도공이눌 성판권안유적, 용암은
얼마 전에 소개해 드린 것 같아 오늘은 생략하겠습니다.
용 아가리에 있던 여의주를 깨뜨려 버리게 된 문제의 묘지에도
가첨석을 갖춘 비가 있고 그 옆에 향로대가 있는데
음각으로 된 무늬가 있고 망주석도 가장자리에 뒹굴고 있습니다.
비스듬히 쓰러질 듯한 비석과 바닥에 뒹굴고 있는 망주석이
집안이 망하였다는 전설을 뒷받침 해주는 듯 무상함을 느끼게 합니다.
할매바위와 우편 산 끝자락에 용의 아가리가 있고, 그 중간즈음에 각자가 새겨져 있다.
4. 포한 장기 국구암
포항시 남구 장기면 임중리 산 15번지 임중못 안쪽 골짜기에
국구암, 꾸굴암, 국굴암, 꿀꿀암 등으로 불리우는
두어 평 남짓 크기의 석굴이 하나 있어 찾아 나섭니다.
“안 가본 지가 오래 돼서 찾을 수 있을라나?” 하면서
이하우 선생님이, 온통 대밭으로 변해 버린 주변 때문에
석굴을 찾지 못해 한참이나 헤매고 있습니다.
주변 암석이 온통 응회암인 이 석굴은 가슴을 땅바닥에 대고
겨우 기어 들어갈 수 정도로 입구가 좁은데 굴 안은 가운데가 높고
가장자리가 약간 낮은 마치 발우를 엎어놓은 형이랍니다.
국구암 인근에서 발견한 포탄 아마 박격포탄인 것 같다.
특이한 것은 천연동굴이되 인공의 흔적이 묻어 있다는 것이랍니다.
안쪽 석벽에 여남은 개의 감실이 파져 있고 그 중 조금 큰 것 한 개,
작은 것이 10개 정도 있으며 큰 감실 앞에는 좌대도 있다고 합니다.
마치 토함산 석굴암 본존불상 뒤로 빙 돌아가면서 박혀 있는
감실 불상을 연상케 하는 부처 없는 석굴암인 셈입니다.
어떤 고명(?)한 도승이 석굴암 모형을 만들다 그만 두었을까?
이 동굴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마미라는 한 승려가 임진왜란을 피하여 이 석굴에 들어와 수도를 했다.
처음에는 먹을 것 때문에 걱정스러웠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석굴 천장에서
흰쌀이 한 알씩 떨어져 하루 동안 모으면 한 사람의 양식이 되니
끼니 걱정 없이 수도에 전념할 수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절친한 친구 스님이 찾아왔다.
양식이 걱정된 스님은 쌀 구멍을 크게 하면 많이 쏟아질 것으로
생각하고는 지팡이로 그 구멍을 크게 파버렸다.
그러자 쏟아지리라고 믿었던 쌀은 나오지 않고 물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런 이야기를 우리는 흔히 ‘쌀바위 전설’ 또는 ‘미암(米巖) 전설’이라고 하는데
쌀바위 전설은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고 있기도 합니다.
전설이 민담이나 신화에 비해 뚜렷한 증거물을 가진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보면 국구암 이야기는 전국의 쌀바위 전설 중에서도
가장 확실한 증거물을 가진 전설인 것 같습니다.
오늘은 비록 찾지 못하고 되돌아 왔지만 조만간 좋은 날 잡아
다시한번 더 찾아 나서 보렵니다.
산서리 새터 구석기 유적지 인근의 불가사리- 빻아서 사료로 쓰인답니다.
5. 포항 호동인면암각화
2000년 3월 포항시 재활용품 처리시설과 쓰레기 매립장 확장공사로 인해
지표조사 중 위덕대박물관에 의해 발견하게 된 유적입니다.
얼굴바위는 약 20여m 폭의 좁은 골짜기 안 세 곳 기도터 중의 하나인데
인근의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사람들에 의해 오랜 기간 동안 기도터로
이용되었던 비밀스럽고도 신성한 장소인 것 같습니다.
인몀암각화가 있는 바위는 할매돌로 부르고 있으며
바위 한 쪽 치우친 중간 즈음에 아래로 갈라진 것처럼
틈새가 벌어져 있는데, 불과 얼마 전까지도 그 틈새에 정화수를 받혀둔
그릇이 있어 이 바위를 신체의 일부인 것으로 여겼던 모양입니다.
신앙의 대상은 그래서 여성 신 일 수 있겟다 싶습니다.
여근처럼 생긴 틈새가 보이고 우편에 인면암각화가 이끼를 가득 안고 있다.
인면암각화는 마치 얼굴을 밀가루 반죽에다 ‘콕’찍은 것처럼
윤곽 없이 눈과 코, 입으로 구성되었는데,
얼굴을 남기기 위해 특별히 구도를 보거나 구상은 없었던 듯
바위도 사람을 닮았거나 하는 형상은 보이질 않습니다.
넓고 든든한 바위에서 느껴지는 영성을 감지한 어느 할배 할매가
은연중에 무의식의 작용으로 이루어낸 바위얼굴인지도 모릅니다.
보이시나요...
이제는 어떤가요?
발견 당시보다 자꾸 그 흔적이 희미해져 간답니다.
맞은편에도 할배바위가 있는데 시멘트로 제단을 만들어
최근까지도 기도 했던 흔적을 느껴 보기란 쉽습니다.
영일지구 삼국시대 고현성이 위치한 인덕산 언저리 골짝에,
포은 정몽주선생님의 위패가 모셔진 오천서원 바로 뒤편에는
그러나 지금은 쓰레기매립장으로 변해버린 그 산 한 켠에는
우리 할배 할매들이 정한수 한 그릇 떠 놓고 우리 아~들
우에던지 잘되게 해달라고 기도 했던 기도터에
우리의 얼굴이 바위 속에 숨은 듯이 우릴 지켜보고 있습니다.
♣ 이하우 선생님과 박창원 선생님의 글 참고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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