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무더위가 지근하게도 여름 끝자락을 부여잡고 통 아쉬운 듯
떠나기를 미적거리 더만 그러나 어쩌랴, 이미 9월은 들어섰고
영글어 익은 밤(栗)이 툭 툭 떨어지는 가을이 되었음에랴.
그 가을 맞으러 조촐하게 떠난 가을 초입의 답사는 석탑과 부도(승탑).
경주 원원사터를 시작으로 망해사터, 청송사터 그리고 운흥사터를 톺아보았다.
원원사터 범어부도
1. 기단부에서 상륜부까지 부도 전체에 화려한 장식이 표현된 부도
이 부도는 2단 지대석에 복련,
3단 지대석에 화문과 범자,
하대석에 복련,
상대석에 앙련,
탑신부 하대에 화문,
견부에는 복련을 조식.
부도 전체에 장식이 화려하게 조식되어 있는 부도이다.
석종형 부도에 있어서 이렇게 화려한 장식이 부도 전체에 표현된 최초의 작례는
경기도 광주 추곡리 백련암 부도에서 볼 수 있다.
이 부도는 지대석부터 상륜부까지 모두 장식으로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다.
장식뿐만 아니라 비례미도 뛰어나 석종형 부도 중 가장 아름답다.
지대석 면석의 장식과 연주문의 표현 그리고 백련암을 창건한 일련선사의
관계로 보아 고려 말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부도이다.
그런데 원원사지 서부도를 백련암 부도와 비슷하다고 해서 고려 말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해서는 안 된다.
그 이유는 원원사지 서부도는 상륜부 보주가 매우 크게 조성된 부도이기 때문이다.
보주가 크게 조성된 부도는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① 상륜부 괴임이 낮게 치석되어 큰 보주를 올리는 경우
② 상륜부 괴임이 노반처럼 높게 조성되어 큰 보주를 올리는 경우
석종형 부도에 있어서
①의 예는 초기 석종형 부도에 나타나며 그 작례는
여수 흥국사 보조국사 부도 등에서 보인다.
②의 예는 17세기 중후반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용천사 부도에서
보이기 시작하여 18세기 초반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원원사지 서부도는 17세기 중후반에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2. 지대석이 3단으로 조성된 부도이다.
부도에 있어서 지대석이 3단으로 조성되기 시작하는 부도는
송광사 청진국사 부도부터 시작한다.
이 부도는 1252년 경에 조성됨으로 13세기 중반부터 시작하여
불갑사 각진국사 부도(1355년)로 이어지며 현등사 함허당득통탑(1433년)으로
이어지며 그 후 주춤하다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반 운흥사지 큰 부도,
원원사지 서부도에서 다시 계단상 3단의 지대석이 보이고,
그 후 18세기 후반부터는 영암 도갑사 영백당 부도에서 보이는 것처럼
간략화가 진행되어 나타나는 흐름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라 판단된다.
지대석에 범어가 조성된 부도이다.
범자가 나타나는 부도는 대략 14기 정도로 파악되고 있는데
1286년에 조성된 보성 대원사 자진원오국사 부도로 시작하지만
대부분 17세기 중후반이후에 나타난다.
4. 지대석에 화려한 화문이 표현된 부도이다.
화문의 표현은 연화문, 보상화문, 당초문 등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화려한 화문의 모본은 인근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통도사 대웅전 기단부에 있으며 임진왜란 이후에 중건되는
범어사 대웅전 기단부, 운흥사 부도, 원원사 서부도에서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3단 지대석 위로 방형 괴임... 귀접이 모를 죽여...
팔각을 형성한 듯... 중대석 없이 하대석 위에 바로 상대석을...
5. 기단부의 구성이 중대석이 없이 하대석과 상대석이 연접해서 조성된 부도이다.
석종형 부도에 있어서 기단부의 변화는 특히 대형으로 조성된 부도는
청도 용천사 부도처럼 중대석이 없이 하대석과 상대석이 연접하는
양식이 먼저 등장하고 용천사 우운당 부도처럼(1694년) 하대석이 상대석보다
작게 조성되는 양식이 그 뒤를 잇고 그 다음은 같은 용천사 청심당 부도처럼
하대석 위에 제법 높인 괴임이 등장하며 그 후 용천사 사송당 부도처럼
상대석 아래에 괴임이 상대석과 붙어서 나타나며
통도사 동운당 부도(1704년)처럼 18세기 극 초반에 비로소 중대석이
표현되기 시작한다. 해서 기단부가 하대석 중대석 상대석 3단으로 조성된
부도가 이 시기 이후에 등장하는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중대석은 아주 낮게 나타나며 특이하게도 10각형으로 조성되어
하대석과 일석으로 치석되어 있다.
또한 그 이후에 나타나는 청도 용연사 회진당 부도처럼 중대석이
상대석에 붙어서 나타나며 18세기 초반부터는 광주 서봉사지 부도처럼
석종형 탑신이 계란형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18세기 중반부터는 영동 영국사 부도처럼 중대석이
높게 치석된 모습으로 나타나며 석종의 탑신은 더욱 세장해진다.
이 모습이 석종형 부도에 있어서 3단 대좌형의 마지막 모습이며
18세기 중반 이후부터는 3단의 대좌형 기단부는 자취를 감추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하대석과 상대석이 연접해서 나타나는 부도는 16세기 후반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여수 흥국사 보조국사 부도부터 시작하지만
17세기 말~18세기 초 대형으로 조성된 석종형 부도에서 많이 나타난다.
견대에는 넓은 보상화문... 꽃잎은 화려하고...
6. 노반처럼 높은 상륜 괴임 위에 보주가 크게 조성된 부도이다.
석종형 부도에 있어서 보주가 큰 부도의 등장은 16세기 후반부터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여수 흥국사 보조국사 부도부터 시작하지만
이때는 낮은 상륜 괴임 위에 큰 보주를 올려놓은 형태이다.
그런데 노반처럼 높은 상륜 괴임 위에 큰 보주가 조성되는 부도는
대부분 17세기 중후반에 등장한다.
7. 석종형 부도 중 대형부도이다.
석종형 부도에 있어서 대형 부도의 등장은 17세기 중반 이후에 조성된
청도 용천사 부도군에서 보이기 시작하며 18세기 초반으로 이어진다.
위의 특징으로 보아 원원사지 서부도는 17세기 중후반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이러한 원원사지 서부도를 염두에 두고 위의 운흥사지 석조물을 바라본다면
누구라도 부도 지대석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망해사터 승탑 앞에서 남정네 둘, 묘령의 여인네 셋... 가을맞이 소풍기분으로...
(달넘새님 자료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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