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기타

[스크랩] 꿈결같이 다녀온 신문왕의 수렛길 톺아보기

참땅 2009. 9. 7. 13:14

우아한 세상을 폼 나게 살고 싶은데 현실은 그렇질 못하니 답답할 노릇

외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살아야하는 현실은 또 서럽고

이노무 인생에 걸리적 거리는 장애는 또 와그리 많노

 

          (산뽕나무 두 그루가 과도한 애정 행각을 벌이고 있다)

 

내리 치닫고 있는 가을의 막바지 11월 초하룻날 바람은

그렇게도 세차지 않건만 뚝 떨어진 기온 탓으로 자연스레 옷깃을 여미게 한다.

소풍가는 초등학교 4학년 8반 아이마냥 설레는 마음으로

가볍게 집을 나선 시각은 아침 9시경

요 근래 집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이 예전보다는 많아 졌지만

아직도 새뜨는 동행이라는 걸 숨길 수는 없는가 보다.

뭔지 모를 압박감과 어눌한 행동이 여지없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벌거숭이 감나무에 노오란 감만 주렁주렁) 

 

 박물관 앞에서 일행들을 만나 수인사 후 추령재로 이동을 했다.

추령재에서 기림사로 이어지는 ‘신문왕의 수렛길’  

추령재 터널 좌편으로 이어진 시멘트 마을길로 접어드니

색색이 물든 산이 가까운데서 잡히고

주홍빛으로 햇살 가득 머금은 감은 온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이파리가 다 떨어져 벌거숭이인 채로 온통 감만 달려 있다.

 

                              (마치'향수'에 나오는 내 어릴적 우리 옛집 같다) 

 

마을 민가 첫 집의 다솜 다솜한 풍경은 아직도 눈앞에 삼삼한데

포근한 햇살을 감싸 안은 조그만 마당, 어지간히 닳은 문 앞에 놓인 댓돌,

옅은 색깔의 나무 문살, 그 위에 한지로 붙인 방문과 옆에 정지문,

흙으로 올린 벽체 그리고 나무로 군불을 지피는 아궁이

외따로 지은 곳간조차 흙벽이고 곳간 벽을 에돌아 허술한 칸막이로

앞가림만 겨우 숨긴 나지막한 정낭

플라스틱, 슬레트 지붕만 아니었더라면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 이었으리라.

 

                          (따사로운 가을 햇볕 아래 추원사는 그렇게 거기에 있었다)  

 

한적한 마을을 벗어나 다리를 건너고 계곡을 따라 추원사 길이 나온다.

심상치 않은 암반을 돌아서니 절집 마당이다.

불사를 일군지 얼마지 않은 듯 곳곳이 파헤쳐져 있고

굵직굵직한 돌로 화단을 꾸며 꽃들을 가득 심어 놓았다.

계곡 아래로 이어진 전각도 있어

물이 많은 여름철 휴양지로는 그저 그만인 듯싶다.

계속 길은 이어지는데 시멘트 길이다.

다행히 밋밋한 평지 길이라 걷기에는 무리가 없다.

게다가 만물이 영글어가는 가을 길 이잖은가.

시멘트 바닥 위를 온통 뒹구는 지렁이 시체가 발에 밟힌다.

어제 날씨가 꾸물꾸물 하더니만 비오는 줄 알고 

지렁이가 물 찾으러 나왔다가 햇볕에 말라 죽은 것 같다는

일행의 익살스런 말에 무료함도 달래보며

우리는 그렇게 신문왕의 옛 길을 더듬어 가고 있다.

 

                             (후~하 물까재미 회, 쇠주 한잔- 더 이상의 수식어는 가라...) 

 

황룡 약수터를 지나니 황룡사라는 개인 사찰이 있다.

사찰 앞에서 윤 회장님 일행과 다시 합류하였다.

물가자미 회를 막 비비고 있는 회원들과 인사를 나눈 후

쇠주에 물가자미 회 한 젓갈 그것도 조그만 절집 앞에서

먹는 그 맛은 가히 일품이다.

 

                                 (계곡 산길로 접어드는 옛길의 시작이다) 

 

사찰 옆 작은 계곡을 따라 시작되는 옛길은 이제 시작이며

지금부터는 산길로 접어든다.

그리 험하지도 않고 오르막이 급하지도 않아

걷기에는 아주 적당하여 땀조차 제대로 흐르질 않아 딱 좋다.

 

 

                              (수렛재-  나아가는 오르막이 오어사로 가는 길, 우측이 옛길이다)     

 

 

                                               (수렛재에서 바라본 풍경) 

 

 모차골 안쪽을 한참 들어가니 세 갈래로 갈라지는 수렛재가 나온다.

우측으로는 백년찻집, 좌측으로 오르면 오어사 방면 이란다.

잠시 숨을 고르며 휴식을 취하고

옛 님들의 숨결을 느끼고자 전회장님의 얘기에 귀를 기울인다.

마차골, 모차골, 수렛재, 거령, 차령

다시 내리막 자드락길을 접어드니

채 단풍 들기도 전에 이미 시들어 버려

제 생명을 다한 낙엽더미가 하냥 푹신푹신하다.

 

                                    (이 계곡물로 지금도 한지를 만들고 있단다) 

 

솔수펑이 듬부렁들쑥한 길 위로 온통 낙엽이다.

길쑥 길쑥한 나무 사이로 송곳 같은 햇살이

좁은 오솔길에 내리 꽂힐 무렵 세수방재가 나온다.

문무왕 장례길에 신문왕이, 삼국유사의 일연스님이,

시대를 넘어 넘어 매월당 김시습이

계곡물이 흐르는 여기쯤에서 목을 축이고 땀을 씻었으리라.

그리하여 손을 씻었다는 세수방재

세수방재에서 조금 더내려오니 암반 위 홈을 따라

솟아나온 맑디 맑은 물이 흐르고 있어

기림사 아랫동네에서는 요즘도 이 물로 한지를 만들고 있단다.

 

                                   (불령봉표)    

 

흐르다만 땀을 막 훔치고 깔딱 고개를 오르니 불령

섟한 흥분을 애써 누르며 안내 설명을 들어 본다.

延慶墓香 炭山因 啓下 佛嶺封標

“연경의 묘에 쓸 향탄 즉 목탄을 생산하기 위한 산이므로

일반백성들이 나무를 베지 못하도록 임금의 명을 받아 불령에 봉표를 세운다”

라는 뜻의 명문이 비스듬히 누운 바위에 새겨져 있다.

연경은 사람 이름이 아니라 묘호이며

조선 제23대 순조와 순원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외아들로서

순조 12년에 왕세자에 책봉, 연동녕부사 조만영의 딸과 결혼

부왕 순조의 명으로 대리청정을 시작, 4년 만인 22세에 돌아 가셨단다.    


정조의 죽음- 정순왕후의 수렴청정- 순조즉위와 벽파집권- 김조순 등 안동김씨 득세

- 효명세자 대리청정시작과 안동김씨 퇴진- 효명세자 급사와 신정왕후와 풍양조씨의 득세

- 조선후기의 혼탁한 정치적 상황 전개 등등

조선왕조의 마지막 희망으로 불리던 효명세자가 죽은 후

묘에 제물비용을 마련하려고 머나 먼 천리 길

기림사 일대의 산이 정해진 자세한 사연은 알 수가 없으나

엇비슴히 누워 있는 바윗돌 하나에 새겨진 글자 몇 개에

서려있는 깊고 깊은 조선후기 파란만장한 역사의 풍랑은

수렛재 옛 길 답사의 매력을 한층 더 높여준다.

 

 

                                     (푸짐한 점심에 떡라면까지)

 

 추원사 앞에서 먹었던 물까재미 회가 채 삭기도 전에

각자 싸온 음식을 펼치고 점심을 먹는다.

달랑 김밥만 준비해온 터라 머뭇거리며 미안 해 하고 있는데

고마우신 일행의 재촉에 젓가락을 들고 덤빈다.

집에서 만들었다는 나물 반찬 등 푸짐한 찬과

즉석에서 끓인 떡라면으로 또 한번 배를 채우고 나니

그 옛날 신문왕조차 부럽잖게 하무뭇하다.

 

 

                                       (이렇게 수렛길은 계속 이어지고...)             

 

꿈결 같이 다녀온 신라 옛길- 신문왕의 수렛길을 따라

일연스님이, 매월당 김시습이 그리고 숱하게 많은 이 땅의 민중들이

다녔을 그 길의 답사 뒷얘기는 다음에 마무리 하겠습니다. 

 (자료는 신라옛길답사회에서 참조)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보일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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