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사리不可殺伊
이 징그러운 불가사리도 불가살이에서 이름을 따 왔다고 한다.
다리가 끊어져도 다시 다리가 살아나, 죽지 않는 불가살이처럼...
불가살이(不可殺伊)를 비롯해 불가살의(不可殺議), 불가살(不可殺) 불가살(火(화)可殺: 불로 죽일 수 있다)) 등으로도 표기한다.
쇠를 먹고살며 악귀를 쫓는다는 괴수. 생김새는 곰의 몸에 코끼리의 코, 코뿔소의 눈,
호랑이의 발, 쇠톱 같은 이빨, 황소의 꼬리를 가졌으며 온몸에는 바늘 같은 털이 나 있다
고 한다.
악몽을 물리치고 사기(邪氣)를 쫓는 능력이 있다고 하여 굴뚝에 새기기도 했다.
경복궁 아미산의 굴뚝 밑 부분에도 이 불가사리가 새겨져 있는데 이것 역시 굴뚝을 통해
삿된 것이 침입하는 것을 막으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①현영선(玄翎仙)이 1921년 경에 지은 것으로 알려진 고전소설에 등장하는 괴수.
조선 태조 이성계의 건국과 전설적인 동물 불가살이를 관련시킨 이야기로 고려 말 공민
왕의 실정에서부터 신돈의 횡포가 자세히 그려져 있다.
반야의 오라비 기종랑이 반야를 찾아가 수일을 머물다 떠나려 하며, 점심을 먹은 뒤
식탁 밑에 흘린 물건을 주워 손바닥으로 비벼서 한 짐승을 만들어 놓았다.
그런데 이 조그만 짐승이 바늘을 집어먹고 몸이 점점 커져서 강아지만 해지더니 계속하
여 쇠붙이라는 쇠붙이는 모두 주워 먹으면서 점점 더 커졌다.
그 때 이성계는 중원에 들어가 주원장과 의형제를 맺고 돌아왔는데 고려 북방에 홍건적
의 난이 일어나자 이성계로 장수를 삼아 물리치게 했다. 그런데 적장 아지발로라는 장군
의 용병술이 뛰어나 감히 당하지를 못하다가 이지란과 계책을 써서 이를 죽였다.
다음으로 적병을 섬멸하려 했으나 워낙 수가 많아 걱정하고 있을 때 난데없는 괴물이
나타나 적의 무기를 모두 삼켜 버렸다. 이 괴물이 곧 동서양을 두루 다니며 모든 쇠를
삼켜 커질 대로 커진 불가살이였다.
이렇게 불가살이가 나타나는 곳마다 쇠붙이가 모두 없어지는 변고가 생겼는데,
이로 인해 이성계는 홍건적을 쉽게 물리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남방에 나타난 왜적들도
모두 무찌를 수 있었다. 이후 이성계는 개성에 들어가 신돈의 후손인 우왕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라 조선의 태조가 되었다.
최초의 불가살이 소설
②조선조 후기에 성립된 <불가살이전>에 보면, 조선 초, 고려를 무너뜨리고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는 숭유억불정책으로 전국의 승려를 모두 잡아들이라고 명령했으며
동네마다 승려를 고발하는 백성들을 선정해 놓았다. 그들은 승려를 고해바치면 많은
상금을 타게 되어 있었다.
이때 승려 한 명이 자기 여동생의 집으로 도망쳐와 숨겨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불행하
게도 여자의 남편, 즉 그 승려의 처남이 바로 승려 고발자로 선정된 사람이었다.
여자는 일단 찾아온 오라비를 벽장에 숨겨놓은 뒤에 쾌재를 불렀다. 오라비를 관가에
고해바치고 상금을 타려는 욕심에서였다. 며칠 후 출타했던 남편이 돌아오자 여자는
남편에게 중을 하나 잡아 벽장에 숨겨놓았다고 말했다. 남편이 벽장을 열어보니 잡아놓
았다는 승려는 바로 자신의 처남이 아닌가?
자기가 아무리 승려를 고발해야할 임무를 띠고 있기는 했지만 자기의 아내가 남도 아닌
오라비를 관가에 고발하려 하는 행위에 대해 그 남편은 혐오감을 느꼈다.
남편은 고민을 거듭한 끝에 자기의 아내를 유인하여 우물에 빠트려 버리고 처남에게
다른 곳으로 피신할 것을 권했다.
한편, 벽장에 몸을 숨기고 있던 처남은 너무나 심심한 나머지 밥알로 동물을 만들어
놓았었다. 그 짐승이 처음에는 손바닥에 잡힐 만큼 작았는데, 벽장을 꾸물꾸물 기어
다니면서 바늘 같은 조그만 쇳조각들을 하나하나 주워 먹으며 자라기 시작했다.
처남이 자신의 누이를 죽이면서까지 자기를 고발하지 않고 피신을 권하자 그 승려는
처남의 집을 떠나면서 나라에 위험한 변고가 생기거든 펼쳐 보라면서 몇 번을 접어 만든
쪽지를 처남의 손에 쥐어 주었다.
쇠붙이을 먹으며 자라던 벽장의 괴물은 이제 부엌으로 들어가더니 숟가락과 젓가락,
놋그릇, 심지어는 가마솥까지 집안의 쇠란 쇠는 모조리 먹어치우면서 덩치가 점점 커져
갔고, 나중에는 집채만 하게 커져서 집을 뛰쳐나와 왼 장안을 온통 휘젓고 다녔다.
조정에서는 군사를 내어 이 괴물을 물리치게 했지만, 오히려 입으로는 불을 내 뿜으면서
군사들이 휘두르는 칼과 창까지 모두 먹어치우면서 더욱 더 날뛰는 등 전혀 효과가 없었
다. 사람들은 이 괴물을 도저히 죽일 수 없는 짐승이라고 하여 불가사리라 불렀다.
이러한 국가 중대 위기에도 묘책이 없어 발을 구르던 조정에서는 전국 방방곡곡에 불가
사리를 퇴치하는 사람에게 막대한 포상을 내리겠다는 방을 붙였다. 벽장에 숨어있던
처남 승려를 구해준 그의 매부는 짚이는 것이 있어 그때 처남이 쥐어준 그 쪽지를 열어
보았다. 그 쪽지에는 그 괴물의 이름인 [불가살(不可殺)]이라는 세 글자가 적혀 있었으
므로 그는 이를 신기하게 여겨 궁리하던 끝에 불(不)을 [불(火)]로 해석하여 불가살이에
게 불붙인 화살을 쏘았다.
그러자 불가사리의 몸이 불덩이가 되더니 마침내 몸이 산산조각으로 터져 죽었다는 것
이다.
③ 송도 말년에 불가사리라는 괴상한 짐승이 나타나서 쇠붙이라는 쇠붙이는 모두 다 집어먹어서 세상을 소란케 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 불가사리란 것이 어떻게 생겨났
는가 하면 송도 말년, 그러니까 고려 말 년께쯤이지. 그때 신돈이라는 중이 있었는데 이
신돈이가 자기 상을 보니까 아들을 아흔아홉을 둘 팔자더라.
아들 아흔아홉을 두자면 마누라를 많이 둔다 해도 평생 동안에 다 둘 수는 없고 해서
어떻게 할까 하고 여러 가지로 궁리를 하다가 아들을 낳기 위해 절에 불공드리러 오는
여자와 상관해서 아들 아흔아홉을 두기로 했다. 그래서 신돈이는 새로 절을 짓고 동자
부처를 모셔놓고 법당 마루 밑에는 방 하나를 잘 꾸며놓았다. 신돈이는 그 방 안에 있고
법당에서 정성껏 불공을 드리는 여자가 앉아 있는 법당 마루가 아래로 풍 꺼져 내려가서
신돈이가 들어앉은 방으로 여자가 들어가게 그렇게 꾸며놓았다.
신돈이는 그렇게 절을 지어놓고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가 이 절에 와서 불공을 드리면
아들을 낳는다고 소문을 퍼트렸다. 이 소문을 듣고 아이 못 낳는 여자가 많이 몰려와서 불공을 드렸다. 불공드리러 온 여자는 아래로 내려앉아서 신돈이와 관계를 하게 되고, 그리고 임신을 해서 아들을 낳았다. 이런 줄을 모르고 절에 가서 불공드리면 아이를
꼭꼭 낳게 되니 소문이 더 나서 많은 여자들이 몰려왔다.
이렇게 해서 신돈이는 아들 아흔여덟을 두었는데 아흔아홉째에는 어떤 높은 벼슬아치의
부인이 와서 불공을 드리게 됐다. 그런데 그 부인이 신돈이한테 겁탈을 당한 뒤 신돈이 한 짓이 괘씸해서 이 사실을 나라에 고발했다. 나라에서는 이 신돈이가 한 짓이 너무나
고약하고 선량한 많은 여자를 음행했다 해서 옥에다 가두었다.
일본과 중국 설화에 등장하는 바쿠, 즉 꿈을 먹는 요괴로써 남미에 서식하는 맥.
천한 무지랭이들의 꿈이었던 신돈이 제거되자 그들 민초들의 꿈이 산산조각났고,
혁명을 상징하는 쇠를 먹는 요괴가 등장하니, 개혁 또한 물건너 가버렸으니...
신돈이는 옥에 갇힌 후 오랫동안 세수도 못하고 씻지 못하고 지내니까 온몸에 때가 더덕
더덕 늘어 붙었다. 여름날이 되어 날은 덥고 땀은 나고 해서 몸이 끈적거려 끕끕해서 견
딜 수가 없어서 신돈이가 손으로 때를 밀어내는데 그 때가 어찌나 많이 밀려나오는지 앞에 수북하게 쌓여서 그때 심심풀이로 조물락 조물락 뭉쳐서 조그마한 돼지 같은 것을 만
들었다. 머리도 만들어 붙이고 입도 만들어 붙이고 눈도 만들어 붙이고 발도 만들어 붙
이고 해서 세워놓았다. 그랬더니 이놈이 설설 기어나가더니 마당을 돌아다니면서 땅에
떨어진 못 조각을 집어먹고 쇠자박지(자박지: 주로 설거지용으로 사용하고 ‘자싯그릇’으
로 아가리가 넓으며 얕은 질그릇 또는 조각, 종기 등을 말한다.)도 집어먹고 하더니 좀
커졌다. 그러더니 더 활기 있게 제 맘대로 사방으로 돌아다니면서 쇠자박을 주워 먹고서
는 점점 더 커졌다. 이렇게 며칠 동안 돌아다니면서 쇠자박을 주워 먹더니 인제는 돼지
만큼 커져서 이 집 저 집 돌아다니면서 문돌조구를 빼서 먹고 문고리도 떼어먹고 부엌에
들어가서 식칼이며 솥이며 주발이며 숟갈이며 마구 집어먹었다. 쇠붙이를 먹으면 먹을
수록 이놈은 점점 더 커져서 송아지만큼 커졌다.
사람들은 그만 놀라서 몰아내려고 하는데 이놈은 힘이 여간 세지 않아서 꿈적도 안 했
다. 낫이며 호미며 괭이며 쟁기 같은 것도 마구 집어삼켰다. 사람들은 그대로 두었다가
는 큰일 나겠다 싶어 이것을 죽여 없애려고 베어 죽이려 하니 칼만 부러지고, 활로 쏘아
죽이려 하니 화살이 튕겨 나오고 죽지 않았다. 불에다 집어넣어서 녹여 죽이겠다고 숯을
수백 가마니 쌓아서 불을 피우고 그 안에 이놈을 집어넣고 풀질을 해서 벌겋게 달궈놨다. 그런데도 이놈은 녹아 없어지지 않고 쇠불덩이가 되어가기고 여지저기 돌아다니는
데 가는 데마다 불이 나서 송도에 불난리가 났다.
사람들은 이것을 불가사리라고 불렀는데 이것이 한참 돌아다니다가 어디론가 가버려서
송도는 더 이상 불타지 않았다고 한다. (책: 신돈, 미천하니 거리낄 것이 없네 中)
창덕궁의 불가사리(파워스팟 풍수 카페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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