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원사 - 짧은 여정
그랬다.
특별히 계획 한 것이 없기에 오히려 홀가분하게 방바닥에 등 붙이고 뒹굴고
싶었다. 격주로 1박2일 여정이 앞으로 2번 더 답사가 잡혀 있어 집사람 장정필에게
미안한감을 표현해주고 싶었는데, 그런데 그게 아닌 것 같다.
집에서 뒹구는 게 당췌 보기 싫다고 한다. - 나는 그기 아인데...
하여 토종계란 대여섯 개 삶고 김치 준비하여 집을 나섰다. 딱히 생각나는 곳이
있다하여도 네비가 오동작하는 통에 믿을 수 없어 나서기가 두렵고 네비 없이
갈 수 있는 그리 멀지 않은 동선을 택한다는 게 고작 울산박물관.
장정필에게 의향을 물으니 아무데라도 괜찮다고 한다. 근데 울산박물관에 특별히
머 볼게 있나 싶어 경주 김환대님에게 전화를 하니 불교유물은 특별한 게 없다고
한다. 태화사지 부도 외에는 소형불상 1기 정도...
갑자기 의욕이 확 떨어진다. 퍼뜩 차를 돌려 경주 남산 열암곡으로 방향을 잡았다.
장정필이 거 말고 다른데, 또 차를 돌려 백운암석면(마애)불로 향했다.
허걱 이건 또 먼일... 백운암 초입에 차량통행 금지란다.
경주 노근리 당목
별스럽게 당목과 함께 대나무를 곁대어 금줄을 쳤다.
나무와 함께 자리를 잡은 둥그스럼한 바위에 바위구멍이 소복하다.
다시 외동으로 길을 잡아 모처럼 원원사지로 가보자는데 합의를 했다.
예전과는 길이 많이 변했지만 기억을 더듬기에는 충분했다. 먼지 폴폴 날리던
비포장도로가 시멘트포장으로 바뀐데 다 전에 없던 저수지도 생겼고 곳곳에 펼쳐진
전원주택/부지 임대 현수막도 바람결에 펄럭이고 있었다.
원원사 동서탑과 석등
햇살 좋은 터에 다솜히 내려앉은 석탑과 석등은 유난히 정겨움을 표하며 그렇게
묵묵히 서 있었다. 따가운 햇살을 온 몸으로 껴안으며 기필코 法을 지키리라는
굳은 신념의 서방광목천왕과는 달리 퉁방울 눈, 주먹코, 히쭉 웃는 입 사이로
숭숭 드러난 이빨 서너 개 마구니는 천왕에게 붙잡혀 별 수 없이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발아래에서 신세한탄이라도 하는 가 싶다.
동탑 서방광목천왕
광목천왕 다리 사이로 삐쭉 얼굴을 내민 마구니
석탑지에서 좌측 방향을 잡으면 용왕각이 나오고, 잘 다듬어진 그길로 계속 가면
범자가 새겨진 부도가 나온다. 순전히 옛 기억으로 더듬다가는 큰 코 다치기 십상.
이렇게 멀리 가진 않았으리라는 소롯이 그 기억 하나만으로 왼쪽, 또 왼쪽 두 번의
헛걸음 후에야, 오로지 길로만 따라가면 부도가 나타나는 진리를 경험하게 되었다.
온 몸이 땀범벅이 되고 턱까지 치미는 숨가쁨에 잠시 호흡을 조절해본다.
하지만 밀려오는 후회스러움에 바보 같다는 생각에 또 두근두근.
드문드문 햇살마저 귀하디 귀하다.
다시 한번 더 뒤돌아보게 하는 범자문 부도
그리 흔하게 볼 수 없는 범자가 새겨진 부도이기에 더 애착이 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그리 쉽게 볼 수 있다면 이 부도가 가진 특별함이 덜하지 싶기도 하다.
범자 옴을 중심으로 향 우측에는 반(파드)이 새겨져 있지만 좌측에는 모르겠다.
기단부 앞뒤 면석에는 거의 같은 형식으로 보상화 범자 순으로 그려 넣었는데
보상화문은 테두리 없이 면석에 바로 넣었지만 범자는 둥근 테두리를 조성하고
그 테두리 안에 범자를 새겨 넣었다. 아무래도 신성함을 강조한 듯 하다.
보상화 5紋 범자 3字 순으로 새겨진 앞뒤 면석과는 달리 좌우 면석에는 옴자를
중앙에 위치하고 좌우로 보상화 2문을 그려 넣었다. 즉 좌측에 보상화 2紋 우측에 보상화 2紋을 그리고 중앙에 테두리 없이 옴자를 크게 새긴 것이다.
봉연암 가는 길 짜투락 논에 석조가 반쯤 묻혀있다.
봉연암 - 태극기가 인상적이다.
왼 종일을 햇살 없이 지낼 것 같은 범자 부도를 뒤로 하고 동편 부도로 향했다.
석탑지에서 우편으로 길을 잡으면, 아니었다. 그 길은 칡덩굴과 잡초수풀로 도저히
인간이라면 갈 수 없는 길이 되고야 말았다. 아랫녁으로 보니 논둑길이 보이기에
무작정 길을 잡았다. 근데 과수원이 나오고 길은 끊어져 있었다.
땡볕에서 일하는 주인에게 사과의 말씀 올리니 나가는 길을 잡아 주셨다.
봉연암이라는 조그만 암자가 있어 지금은 그 길로 다닌다는 말을 듣고서야 옛길이
거의 죽은 길이라는 것을 알았다. 물론 겨울철에는 옛길로 갈 수 있으리라.
우여곡절 끝에 다다른 동부도 3기는 부도 앉음새가 달라져 있었다.
듬성듬성 잡초가 자라있어 관리가 부실하다는 것 보다는 묵은 맛이 있었는데
지금은 깔끔하니 정리가 되었고 한기한기마다 예배할 수 있는 제단도 마련되어
있어 한결 옛 맛은 덜 하였다.
임시 가건물 봉연암에서 이 부도를 관리하는가 싶어 힐끗 건너보았으나
전혀 인기척을 느낄 수 없어 도망치듯 자리를 빠져 나왔다.
원원사를 몇몇 번 와 봤으나 봉연암 계곡은 도무지가 처음이다.
제법 큰바위가 둠벙둠벙 자란 계곡 사이로 흐르는 맑디맑은 감로수가 흐르고
한 길도 넘는 계곡 옆에는 바짝 붙어 나무가 서 있고 군데군데마다 충분히 쉴 수
있는 적지 않은 공간도 있어 그야말로 한여름 최적의 피서 공간인 듯 싶은데,
왜 몰랐을까 생각해보니 나만 몰랐는가 싶다.
거의 원원사 입구에 오니 약수터가 나오고 체육시설이 마련되어 있었다.
약수터에서 목을 축이니 제법 시원하니 한결 몸이 가뿐해졌다.
왜 계곡에 사람이 없는 가 했더니 계곡 입구에 차량통행 금지 쇠사슬이 굳게
자물통에 잠겨 있었다.
다시 원원사에 들어서니 장정필이 보이지 않아 둘러보니 대웅전 옆 정자에서
노보살님과 담소 중이었다. 노보살님이 ‘통도사, 해인사 물은 말라도 여 물은
한여름 가뭄에도 안 말라, 주지시님하고 시님들이 여서 씻고 하니더‘ 라는
대웅전 옆 계곡물로 시원하게 한 판 세수를 하고 하니 내도 중 맛을 본 듯하다.
어라...
천왕각 현판이 보인다.
용왕각은 저 위에 있는데 싶어 문을 열어보니 天王閣, 범천과 제석천을 모시는
전각이다. 산신각, 용왕각은 보았어도 범천과 제석천을 모시는 천왕각은 거의 보질
못한 것 같다. 의성 어디쯤 사찰에 제석천 탱화를 본 기억은 어렴풋이 나는데
거기도 천왕각 이었던 건 아닌 것 같다. 노보살님 덕에 원원사에 천왕각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오늘 하루, 아니 반나절의 짧은 여행은 여기서 끝을 맺는다.
관세음보살 화불의 아미타수인은 중품중생이 아니고 상품상생으로 보인다.
내일은 하루 종일 방에서 뒹굴어야지 - 오늘 못 다한 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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