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기타

기림사 창건설화

참땅 2014. 4. 7. 09:33

♣ 기림사 창건설화

 

경주 기림사 약사전 내부벽화- 다공양도

 

먼 옛날 범마라국 임정사에 오십 년간 수도하면서 천안통과 숙명통

그리고 타심통을 얻은 도인 광유성인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스님은 제자들을 모아놓고 자신의 전생이야기를 했으니

"내가 전생의 부처님의 제자로 공부를 하고 있을 때에, 파사익 왕의 세 시녀는

늘 꿀물과 우유로 부처님과 제자들을 공양 올렸다. 제자들 중에는 인물이 출중한

스님이 한 분 계셨는데, 시녀들은 부처님 다음으로 공양하다가 그만 공경이

사랑으로 변해 시기하고 질투하게 되었다. 스님은 여인들의 유혹을 제도하려

하였으나 여의치 않자 산 속으로 들어 가 버리셨다. 그러나 스님은 아름답고

상냥한 세 여인을 잊지 못해 번민하다가 결국 도를 이루지 못한 채 입적하고

말았다. 나는 그때 그 스님의 도반으로서 먼저 도를 이루는 사람이 제도키로

약속을 했었다. 내 이제 금생에 인연이 얼마 남지 않았으므로 도반인 그 스님과

세 시녀를 제도하려 하니 나와 숙세로부터 인연이 있는 이들을 누가 이곳으로

안내하겠느냐?"

그때 승열 스님이 말했다.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스승이시여!"

"오 장하구나, 너는 아라한과를 얻었으니 능히 할 수 있으리라. 그 스님은

금생의'수다라'라는 대국의 왕이고 왕후와 후궁은 전생의 시녀이니라."

"그럼 한 명의 시녀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제 곧 왕의 아들로 태어나 스스로 여기로 올 것이니라. 수다라 왕국은 아직도

불법이 전해지지 않았으므로 세 명을 한 번에 모셔오기 어려울 테니, 먼저 후궁인

월해부인을 인도토록 하여라."

승열 스님이 수다라국에 도착했을 때, 왕은 마침 500궁녀를 데리고 강가를

거닐다가 숲속에서 잠이 들었다.

산책을 즐기던 궁녀들은 좌선에 든 스님을 발견하고는 이상한 모습에 의아한

눈길을 주고받다가 가까이 다가와서 물었다.

"어디서 오신 누구신지요?"

"나는 범마라국 임정사에서 온 승려입니다."

스님은 궁녀에게 스님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며 불법이 무엇인지를 설명해주었다.

이때 잠에서 깨어 이를 목격한 왕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아 소리쳤다.

"너는 누군데 나의 궁녀를 꼬이느냐? "

왕은 승렬 스님의 목에 칼을 대고는 인생의 참 진리가 무언지 알려주겠다며

불개미 집을 헐어서 스님의 몸에 풀어놓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불개미는 스님의 몸을 물지 않고 모두 흩어져버렸다.

이것을 본 왕은 크게 놀라면서 예사로운 분이 아닌 줄 알고 스님을 궁중으로

정중히 모셨다.

승열 스님은 1년간 궁중에 살면서 왕과 왕비 그리고 후궁들을 교화하였으며

수다라 왕국의 최초의 절 범승사를 세웠다. 그리고는 며칠 후 승열 스님은 왕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 임정사로 돌아가야겠습니다."

 

경주 기림사 내부 벽화- 다공양도 세부

 

왕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스님은 떠날 차비를 하면서 월해부인을 모시러 온 뜻을

밝혔다. 왕은 보내기 아쉬웠으나 월해부인이 선뜻 나서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그 후 월해부인은 광유성인의 제자가 되어 물 긷고 차를 다리며 열심히 정진하였다. 어느 날 광유스님은 승열 비구에게 다시 수다라국에 가서 왕과 왕비를 모셔오

도록 했다. 승열 스님이 수다라국에 도착하니, 왕과 왕비는 물론 지난번에 귀의한

십여 명의 제자와 신도 및 백성들까지 영접하였다.

"월해부인은 대왕이 오셔서 함께 공부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왕이

도착하기도 전에 도를 얻고 사바의 인연을 마칠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기가 막힌 듯 슬피 탄식했다.

", 참으로 세상은 허망하군요.“

대왕이시여! 이 세상에서 참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선지식인이시여, 저를 깨우쳐 주소서!"

"그것은 일체를 소유할 수도 버릴 수도 없는 자신을 아는 일이지요."

승열스님은 자상한 설법과 함께 왕의 전생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왕은 참회하면서 왕비인 원앙부인과 함께 광유성인에게 가서 공부하기로

결심하고 왕위를 태자에게 물려 준 뒤 임정사로 향해 길을 떠났다.

만삭의 몸으로 길을 떠난 원앙부인은 중도에서 지칠 대로 지쳐 더 이상 걸을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부인 힘을 내구려. 나와 함께 도를 이루자고 하지 않았소."

"대왕이시여! 저는 전생에 숙업인 듯하옵니다. 저를 여기서 종으로 팔아

그 대가를 임정사 부처님께 올려 다음 생에 다시 공부하도록 빌어주십시오.

저의 마지막 소원입니다."

왕은 눈물을 흘리며 죽림국의 한 부자에게 만삭이 된 부인을 팔았다.

"대왕이시여! 아기를 낳으면 이름을 무엇이라고 지을까요?"

"아들이거든 안락국이라 하고 딸을 낳으면 아량이라 하여주오."

가슴이 터질 듯 아프고 슬픈 마음으로 부인과 작별한 왕은 광유성인의 제자가

되어 차 시봉을 하면서 세속 일을 잊고 정진에 몰두하였다. 그렇게 7년이 되던

어느 날, 임정사로 한 남자아이가 아버지를 찾아왔다. 그는 원앙부인이 낳은 태자

안락국이었으니 바로 전생의 한 시녀이기도 하다.

반갑게 상봉한 부자는 공부하며 함께 지냈다. 수다라 왕이 도를 얻어 열반에 들자

광유스님이 안락국에게 전생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안락국아! 너는 인연 있는 곳을 찿아 가서 중생을 교화하고 제도 하거라.

그 인연지는 여기서 이백오십 만 리 떨어진 해동국으로 그곳에는 문수보살이

부처님의 부촉을 받고 계신 곳이다. 가서는 거북이가 물 마시는 형상을 하고 있는

산을 찾거라. 동해바다의 기운을 들여 마시는 용이 사는 연못이 있고, 탑의 형상

을 갖춘 남쪽 돌산에는 '옥정'이라는 우물이 있으니 그 물을 먹으면서 수도 하거

. 북쪽에는 설산을 닮은 돌 빛이 흰 산이 있으니 그 산 굴속에 부처님을 조성하

여 모시거라."

그리하여 해동 계림국에 도착한 안락국은 명당을 찾아 조그만 암자를 세워,

이름을 칭하되 '임정사'라 하였다.

절이 창건된 지 백오십년 후 신라의 원효대사가 절을 확장하고, 이름을 부처님

당시의 최초의 절인 '기원정사'의 이름을 따서 현재의 '기림사'라 개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