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어 이야기
목어의 역사는 목박木撲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목박은 다듬지 않은 일종의
두꺼운 나무판을 말하는 것으로, 처음에는 주로 아침 죽 먹을 시각, 점심 먹을 시각
등 시간을 알리는 용도로 쓰였다고 합니다. 반방飯梆, 죽고粥鼓 등의 별칭이 식사
때를 알리는 용도로 목박이 쓰였던 사실을 잘 말해주고 있답니다. 후에 목박이
몰고기 모양으로 만들어지게 되면서 물고기 ‘어漁’자를 붙여 어판魚板, 어고魚鼓,
어방漁梆, 명어鳴漁라고 하였답니다. 1933년 [동아일보] 기사를 보면 당시에는
‘목형木型붕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목어가 언제부터 물고기 모양을 갖추게 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답니다.
그러나 이익의 저서 [성호사설] 제10권 <인사문>의 “불교가 한나라 명제 때
중국에 들어 왔는데 『청오靑烏』에 ‘목어’라는 말이 있고...“ 라는 대목을 볼 때,
한나라 때에 처음 목어가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된답니다. 여기서 『청오』는
풍수나 지리를 공부하여 집터나 묏자리를 잡아주는 감여가堪輿家를 하던
청오라는 사람의 저서로, 터를 정하는 데 필요한 사항을 정리한 책입니다.
목어가 물고기 형상으로 만들어진 연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답니다.
1. 당唐 대의 저명한 불교개혁가 백장 회해스님이 지은 『백장청규百丈淸規』에
나오는 물고기 속성과 관련된 경책설이 있습니다.
“목어에 관해서 전해오기를, 물고기는 항상 주야로 눈을 뜨고 있어 나무를 깎아
물고기 형상을 만들어 두드려 혼미한 마음을 경계한다고 한다“
(木魚 相傳云 漁晝夜醒 刻木象形擊之 所以警昏情也)
항상 눈을 뜨고 잇는 물고기의 속성을 불면면학不眠勉學하는 수행 자세에 비유한
내용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2. 공부하는 승려들이 교훈으로 삼을 만한 고승들의 글을 모아 엮은 『치문경훈緇門警
訓』의 목어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한 비구가 사찰을 가지고 있었는
데, 시주를 탐내어 아무 데나 막 써버린 죄로 죽은 후에 마가다국의 큰 물고기가
되었답니다. 물고기가 되어서도 다른 작은 물고기를 탐내고 같은 무리들을 많이
죽여서 그 업보로 지옥에 떨어져 무량의 고통을 받게 되었답니다. 이에 절에서는 나무로
만든 물고기 형상을 만들어 쳐서 모든 비구의 흐트러진 마음을 경계하도록 했다는 이야
기가 전해 오고 있답니다.
3. 우리가 잘 아는 현장玄奘스님의 지귀곡指歸曲을 통해 전해지는 유래담도 있답니
다. 현장스님이 인도로부터 귀국하던 도중 한 장자의 집에 머물게 되었답니다.
집주인에게는 새 아내와 전처 소생의 세 살 난 아이가 있었는데, 어느 날 그가
사냥하러 간 틈을 타 아내가 평소 미워하던 전처 아들을 바다에 던져 버렸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장자가 매우 슬퍼하며 아이를 위한 천도재를 올리려던 참에
현장법사를 만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장자가 기쁘게 맞이하여 좋은 음식을 차려놓고 들기를 청하자, 현장스님이 먹지
않고 말하기를 “내가 산 넘고 물 건너 먼 길을 여행하느라 몸이 지친 관계로
물고기를 먹고 싶은데, 반드시 큰 물고기라면 좋겠소“ 라고 하니 옆에 있던
여러 사람들이 크게 놀라워했답니다. 장자는 즉시 사람을 보내어 큰 물고기를
잡아오도록 했는데, 현장스님이 잡아 온 물고기의 배를 가르자 그 속에 아이가
들어 있는 아니겠습니까. 아이를 꺼내 주면서 현장스님이 “이 아이가 전생에
불살계不殺戒를 가진 까닭으로 물고기에 먹혔으나 지금까지 죽지 않았소“
이에 장자가 크게 기뻐하여 ”어찌하면 이 물고기의 은혜를 갚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으니, 현장스님이 ”나무로 물고기 모양을 만들어 절에 걸어두고 재를 올릴
때마다 두드리면 그 은혜를 갚을 수 잇을 것이오“ 라고 답했답니다.
그렇게 하여 물고기의 은혜를 갚기 위해 목어를 만들었다는 줄거리입니다.
그런데 아들이 살아나기는 했으나 물고기가 아들을 잡아먹은 것은 사실인데,
과연 이것을 두고 물고기 은덕 운운할 수 있는지 의문이기도 합니다.
4. 그런가 하면 이 유래설의 내용과는 반대로 물고기를 응징하기 위해 목어를 만들었다
는 이야기도 있답니다. 한나라 때 자광慈光대사와 두 명의 승려가 황제의 명으로
인도에 가게 되었답니다. 천신만고 끝에 경전을 얻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돌아올 때, 돌연 거대한 풍랑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때 흉악하게 생긴 큰 물고기가
나타나 뱃머리에 놓아 둔 경전을 물고 바다로 들어가 버렸답니다. 이를 본 두 승려가
급히 바다로 뛰어들어 격투 끝에 대어大漁를 잡아서 배 위에 끌어 올려놓았습니다.
그러자 바람이 고요해지고 밝은 빛이 찬란하게 빛났습니다. 대사 일행은 끈으로
대어를 묶은 뒤 절로 가지고 돌아 와 매일 물고기를 치면서 삼킨 경전을 내 놓으라고
꾸짖으며 아미타불을 염송하였답니다. 그렇게 계속 두드리니 얼마 되지 않아
대어 머리가 산산조각 나버렸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물고기 모양을 만들어 놓고
날마다 쳤는데, 이것이 목어를 두드리며 경전을 염송하는 불가의 풍습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5. 이와는 조금 다른 우리가 흔히 잘 아는 유래담도 있습니다.
옛날 한 승려가 스승의 가르침을 어기고 나쁜 행동을 일삼다가 죽었답니다.
그는 곧바로 물고기 과보果報를 받았는데, 등에 나무가 한 그루 나서 풍랑이 칠 때마다
흔들려 피를 흘리는 고통을 당하곤 했답니다. 어느 날 스승이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다 제자가 물고기로 화현해 고통 받는 모습을 보게 되자, 곧 수륙재水陸齋를
베풀어 물고기를 해탈케 해 주었답니다. 물고기는 지난날의 잘못을 크게 뉘우치고
자신의 등에 난 나무로 물고기 형상을 만들어 수행자로 하여금 경각심을 일으키는데
써 달라고 부탁했답니다. 이때 만들어진 것이 목어의 시초라는 이야기입니다.
6. 그런데 전혀 다른 측면에서 목어를 바라 본 목어 유래담도 있답니다.
조선 후기 학자 이규경李奎景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석전총설釋典
總說> ‘목어와 건치’ 항목을 보면 “지금 사찰에 달아 놓은 목어에 대해 석씨가
이르기를 ‘염부제閻浮提는 곡 거오巨鰲의 등에 실린 곳으로, 거오가 그 가려움증이
일어나 몸을 움직이게 되면 산이 따라 흔들리기 때문에 그 거오의 형상을 본 떠 달아
놓고 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고 서술되어 있습니다.
‘거오’란 오신산五神山 전설에 나오는 큰 자라를 가르킨답니다. 발해 동쪽에 대여,
원교, 방호, 영주, 봉래라는 다섯 신산이 있는데, 이 산들이 조수潮水에 밀려 표류
하지 않도록 천제天帝가 명하여 금빛자라(金鰲) 열다섯 마리로 하여금 이 산들을
머리에 이고 있게 했다는 전설 속의 그 자라가 바로 목어의 본보기라고 합니다.
목어의 유래담은 그 종류도 많고 내용도 다양합니다.
항상 눈을 뜨고 있는 몰고기의 속성과 관련된 해석, 나쁜 승려와 물고기에 얽힌
인연 설화, 현장스님의 신통력 ‧ 통찰력과 연결된 일화, 경전을 삼킨 물고기 설화,
탐심 때문에 지옥에 떨어진 물고기 설화, 심지어 신선 사상의 상징인 큰 자라까지
목어의 유래담 대열에 가담하고 있습니다. (참고: 불전사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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