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달성 비슬산 용연사 벽화
용연사 극락전 내부에는 주불 아미타불 좌우 협시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좌정하고 계십니다.
주불의 수인이 항마촉지인이라 석가모니불로도 충분히
호칭될 수 있으나 좌협시로 관세음보살이 분명히 계시기에
서방교주 아미타불로 기꺼이 모셨다고 추정하고 싶습니다.
대세지보살은 왼손으로 연꽃가지를 받쳐 들고, 오른손으로는 연꽃가지를
가볍게 엄지와 중지로 살포시 들고 계시며,
그와는 반대로 관세음보살은 오른손으로 연꽃가지를 받쳐 들고
왼손으로는 연꽃가지를 가볍게 엄지와 중지‧약지로 살포시 들고 계십니다.
위로 향한 연가지에는 연잎 한 개, 연봉 1개, 연꽃이 한 개로 피었는데
연꽃 위에는 관세음보살의 상징인 손잡이와 꼭지가 달린 자그마하니
예쁘장한 정병이 한 개 얹혀 있습니다.
벽화
용연사 극락전 외벽의 벽화는 총 38점으로 남‧북측 포벽에 18점,
동‧서 측면에 20점이 전한다. 극락전 남‧북 측면에는 주칸마다 3개씩
9개의 포벽이 구성되어 있으며, 포벽에는 매란국죽梅蘭菊竹의 사군자를
일률적으로 구성하고 화훼의 특성에 따라 꽃에 화려한 채색으로 단청하였다.
동‧서 측면에는 문이 있는 협칸을 제외한 중앙 측벽을 중심으로
3단의 화면을 구성하였는데, 초석과 맞닿은 하단을 제외한 상‧중단에
연화화생도, 혜가단비도, 불전도, 원효 등 고승들의 치적과 화훼를 배치하였는데
대개가 20세기에 그려진 벽화들이다.
극락전 내부에는 총 75점에 달하는 많은 벽화가 조성되어 있으며,
18세기 작품으로 보이는 고벽화 68점을 비롯하여 근래 심운당 경암이
복원 모사한 7점의 벽화가 천장의 반자 및 단청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내부 벽화는 동측면의 경우 창방에 증명설주도, 비호도 등의 3점이 있고,
남측면에는 내목도리 윗벽의 상‧하단에 육년고행도, 성등정각도 등의
[석씨원류응화사적] 도상과 포벽의 여래도, 서수도 등을 묘사한
33점이 배치되어 있다.
서측면에는 벽체 및 창방에 백의관음도와 팔금강도 등 10점이 그려져 있고,
북측면의 경우 내목도리 윗벽의 상‧하단과 포벽‧창방에 권청회궁도 등의
[석씨원류응화사적] 도상과 고사인물도‧서유기도 등 20점이 있으며,
이 외 후불벽의 군선도 1점과 천개반자의 운룡도 1점이 도상의 배치와
구성에 따라 벽체를 단장하고 있다.
♣ 백의관음도
내부 서측면 심목으로 구분된 3개의 벽면에 그려진 것으로 매우 장대한 느낌을
준다. 화면 중앙의 바위에 팔을 기대고 비스듬히 반가좌 자세로 앉아 있는
관음보살과, 파도가 일렁이는 아래쪽 바다에는 보주가 든 그릇을 받쳐 든 용왕과
표주박을 탄 채 합장한 선재동자가 표현되었다.
관음보살의 머리 위쪽에는 새 한 마리가 하늘을 날고 있으며,
팔꿈치를 기댄 바위에는 버들가지가 꽂힌 정병이 놓여 있다.
화면의 3/2에 해당하는 부분을 관음보살이 머무르는 보타락가산을 묘사하였고,
하단의 1/3은 바다로 표현하였다. 보타락가산은 수묵으로 기암괴석과 간간히
서 있는 나무들을 거칠지만 시원스럽게 묘사하였으며, 봉우리 사이에는
구름이 걸려있어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사갈라용왕
선재동자(남순동자)
정병과 앙류
청조인데 흰색이네요...
화면 아래에는 하얀 포말을 토해내는 거친 파도가 표현되었는데,
선재동자가 타고 있는 작은 표주박 같은 배가 위태로워 보인다.
다른 사찰에 그려진 백의관음보살도와는 달리 세부 묘사에서 세밀함이
다소 떨어지기는 하지만 구성은 아주 좋은 작품이라 여겨진다.
1. 석씨원류응화사적 중 석가모니 행적
석가모니의 일대기와 석가모니 이후 서역 중국에서 불법이 전파된 사실을 담은
내용을 그린 것이다. 용연사 극락전에 그려진 이 그림들은 현재 43점이며,
이 가운데 석존의 행적을 표현한 것이 28점이다.
① 위왕설법爲王說法
[보적경]에 전하는 내용으로 석가모니가 부왕을 위해 설법한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나무 아래 오른쪽 다리를 펴고 앉은 석가모니와 무릎을 꿇고
합장한 자세의 정반왕을 묘사하였으며, 흰색의 방제란에 검은 글씨로
‘爲王說法’이라는 방제를 적었다.
② 도발타녀度跋陀女
[본행경]에 전하는 대가섭의 부인 ‘발타라’라는 여인이 출가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정좌한 석가모니 앞에 발타라여인이 합장한 채 석가를 우러러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표현하였으며, 사이에는 흰색의 방제란에 검을 글씨로 ‘度跋陀女’라는
방제를 적었다. [석씨원류응화사적] 판화에서는 3곳의 이야기가 시간적 순서로
그려져 있는 데 비해 이 그림은 한 장면만 취해 간략화 하였음을 볼 수 있다.
③ 도제석종度諸釋種
5백 명의 석가족 아들들을 출가시켰다는 [관불삼매경]에 전하는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그림을 보면 정좌한 석가모니와 더불어 그 앞에 동자 한 명이 합장한 채
석가를 우러러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 표현되었다.
석가모니의 뒤쪽에는 흰색의 방제란에 검은 글씨로 ‘度諸釋種’이라는 방제를
적었으며, 이 그림 역시 [석씨원류응화사적] 판화를 아주 간략하게 표현하여
주제를 드러낸 것임을 알 수 있다.
④ 불구니건佛求尼健
[잡보장경]에 전하는 내용으로 석가모니가 사위국에 있을 때 5백 명의 외도들을
교화한 이야기를 그린 것이다. 그림을 보면 풀로 만든 자리위에 정좌한 석가모니의
주위에 붉은 불덩이가 이글거리고 있으며, 그 앞에 풀로 몸의 일부를 가린 인물이
합장하고 있는 모습을 묘사하였다. 흰색 방제란에 검은 글씨로 ‘佛求尼健’이라는
방제를 적었다.
⑤ 불화노지佛化盧志
석가모니가 수바라성의 노지라는 장자를 교화한 이야기를 그린 것으로,
[경률이상]에 전하는 내용이다. 석가모니를 향해 절벽 아래에서 창을 찌르는 2명의
인물과 무릎을 꿇고 있는 노지장자, 그리고 병장기들이 꽃으로 변한 모습이 묘사되
어 있다. 화면의 왼쪽 흰색의 방제란에 검은 글씨로 ‘佛化盧志’라는 방제를 적었다.
⑥ 불현쌍족佛現雙足
방제가 기록되어 있지 않아 정확한 화제를 알 수 없다.
그러나 관을 부여잡고 비통해하는 제자들의 모습과 더불어 관에서 두 발을 내민
표현으로 볼 때 [석씨원류화사적]의 ‘불현쌍족도’를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그림은 마가제국에서 뒤늦게 도착한 가섭존자가 석가모니가 입멸했다는 말을
듣고 통곡하자 석가모니가 관에서 두 발을 내어보였다는 [처태경]에 전하는
이야기를 그린 내용이다.
이러한 도상은 팔상도의 ‘쌍림열반상’에서도 묘사되어 있는 장면이다.
⑦ 쌍림입멸雙林入滅
화제가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사라쌍수 아래에서 침상에 길게 누워 열반에 든
석가모니와 이를 애통해하는 제자, 천신의 모습으로 볼 때 [석씨원류응화사적]의
‘쌍림입멸도’를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그림 역시 팔상도의 ‘쌍림열반상’에
묘사되는 장면이며 [열반경]에 전하는 이야기이다.
Ⅱ. 석씨원류응화사적 중 전법제자 행적
극락전에 그려진 [석씨원류응화사적]벽화 가운데 불법전파의 내용을 담은 15점의 그림 중 잘 보이는 그림을 살펴보자.
행사전법行思傳法
당나라 때 승려 행사가 육조대사 혜능의 법을 잇고 가르침에 교화에 나섰다는
[전등록]에 전하는 내용을 그린 것이다. 휘장이 드리워진 건물 안에서 육조대사가
좌탁 위에 앉아 있고, 행사는 건물 밖에서 엎드려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화면의 왼쪽에는 우뚝 솟은 산에서 길게 떨어지는 폭포줄기와 계곡 사이에
가로지른 다리가 보이며, 폭포줄기와 나란히 흰색의 방제란에 검은 글씨로
‘행사전법’이라는 방제를 적었다. 화면의 아래쪽에는 폭포에서 떨어진 물이
흘러 만든 계곡에 흰 포말이 넘실거리는 모습을 묘사하였다.
이러한 배경 묘사는 [석씨원류응화사적]에서 보여주는 정원과 같은
사찰의 분위기와는 달리 다소 과장되게 표현한 듯하다.
♣ 팔금강도
내부 서측면 백의관음보살도 아래 있는 것으로 3개의 벽면에
2위, 3위씩 배치하였다.
역시 상반신을 드러낸 채 목 뒤로 불꽃이 묘사된 천의자락을 휘날리며 검을 든 금강과
권법의 자세를 취한 금강, 옷을 제대로 갖추어 입고 창을 든 금강 3위,
상반신을 드러낸 채 목 뒤로 불꽃이 묘사된 천의자락을 휘날리며 검을 든
금강 3위,
투구를 쓰고 활과 화살을 가진 금강과 칼을 든 금강 2위,
이목구비 묘사에 있어 터럭의 세밀한 표현이 특징적이며 개별적인 작품으로
보았을 때도 아주 잘된 그림이나, 어느 시기엔가 덧칠을 하였는지 부분적으로
채색의 흔적이 엿보인다.
♣ 고사인물도
나한도를 포함한 고사인물을 그린 인물도는 5점으로 이 가운데 불교적인
소재의 인물도가 2점이고, 3점은 도교적인 인물을 그린 것이다.
이 중 내부 후불 뒷벽 군선도는 후불벽 뒷면에 활과 검, 창 등의 무기를 지닌
5명의 인물들을 그린 것이다.
그림을 보면 머리에 두건을 쓴 채 길고 흰 수염을 휘날리는 인물은 크게 묘사하였고,
전립을 쓴 인물들은 서있지만 상대적으로 작게 묘사 되었다.
인물들의 얼굴과 겉으로 드러난 손이나 두건의 일부를 보면 개채된 흔적이 보이며,
특히 제일 왼쪽의 인물 뒤로 표현한 활과 화살통 및 두 번째 인물이 지닌 창은 원래의
그림에는 없었던 것을 새로 그린 것으로 보인다. 배경은 없으며, 부분적으로 개채와
가필이 되었지만 잘 그린 작품이라 할 수 있다.
♣ 비호도
내부 동측면 창방에 그려진 비호도는 박쥐와 같은 날개가 달린 호랑이를
표현한 것이다. 호랑이의 모습은 눈망울이 툭 튀어 나오고 뾰족한 이빨을
드러냈으며, 등에는 가는 흰 선으로 부드러운 터럭을 묘사한 가운데
검은색 등줄을 나타내었다.
그러나 뒷다리를 쫙 벌린 모습으로 표현하여 마치 박제화 시킨 듯한 모습이다.
(참고; 한국의 사찰벽화 대구‧경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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