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화

해남 대흥사 침계루 외벽화

참땅 2014. 6. 2. 12:46

해남 대흥사 침계루 외벽화

 

대흥사 침계루

 

저 호랑이는 무슨 죄를 지었길래, 나무에 매달려 있을까.

나무에 매달려 있으면 힘들텐데... 얼굴엔 장난기가 가득하다.

대흥사 침계루 외벽에 그려진 호랑이와 가재그림, 사찰분위기와는 전혀...

 

정말로 웃기는 호랑이다.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데도 얼굴엔 장난기가 가득하다.

노송에 네 다리가 묶인 채 거꾸로 매달려 있는 호랑이,

방정맞기까지 한 호랑이 그림이 그것도 위엄서린 사찰에 그려져 있으니

더 희한하다.

대흥사 대웅보전 앞 침계루 벽에 그려진 호랑이.

대체 무슨 죄를 지었길래 종일 일년내내 아니 평생 대롱대롱 매달려 있을까.

대흥사 산신각에 있는 호랑이는 위엄이 넘치는데

이 호랑이에게선 위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어디 그뿐인가. 배시시 웃고 있는 모습이 응큼하기까지 하다.

 

옛날하고도 아주 먼 옛날 아마도 호랑이가 담배피던 시절이었나 보다.

대흥사에 큰 스님과 호랑이가 살고 있었다.

호랑이의 역할은 부처님의 세계를 수호하는 일.

부처님이 계시는 사찰에 나쁜 악귀가 침범하지 못하도록 지키는 일이었고

절을 찾아오는 중생들을 보호하는 일이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일, 따분하다.

그런데다 고기 한 점 맛보지 못하고 채식만을 해야하니

절 생활이 고달프기까지 하다.

지천에 널려 있는 산짐승들.

저것들을 쳐다만 보고 있어야 하니 환장도 이런 환장이 없다.

입맛만 다시며 바라보고 있는 호랑이 앞을

작디작은 산짐승들은 보란 듯이 지나간다.

침이 고이는 본능을 억제하기 힘든 호랑이,

지나가는 산짐승을 냅다하고 입에 물고 말았다.

 

이 맛을 꿀맛에 비하라.

딱 한번뿐이라고 다짐했건만 이미 맛봐버린 고기인지라

몰래 먹는 횟수는 늘어만 간다.

바늘도둑 소도둑 된다고 물론 호랑이가 담배피던 시절에는

이러한 속담이 없었겠지만 처음엔 작은 짐승 잡아먹다

대범하게 큰 짐승도 서슴없이 먹는다.

어느 날 입맛 다시는 호랑이를 큰 스님이 보고 말았다.

무엄하기도 하지.

부처님 도량에서 산 짐승을 먹다니 스님의 분노가 보통이 아니다.

그래도 스님은 자비를 베풀며 앞으로 채식만 할 것을 명하고 또 명한다.

호랑이는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채식만 할 것이라고 굳게 또 굳게 약속한다.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가 지나고 산고기 생각에 잠 못 이루는 밤은 늘어만 간다.

그러던 어느 날 너무도 기가 막힌 생각이 떠올랐다.

계곡 바위에 조용히 앉아 꼬리를 살짝 물속에 넣는다.

물속에 꼬리를 넣으면 즉시 꼬리를 물고 따라 나오는 가재.

산 짐승에 비할까마는 이 맛도 제법 쏠쏠하다.

산짐승도 아닌데 무슨 죄가 되겠는가 라며

계곡물 속에 꼬리를 넣은 일이 매일 반복된다.

매일 바위에 앉아 있는 호랑이,

수행방법도 여러 가지 있다지만 큰 스님이 봐도 해괴하다.

 

 

호랑이의 태도를 유심히 관찰한 큰 스님,

드디어 호랑이의 해괴한 가재 잡이는 들통이 나고 말았다.

화가 단단히 난 큰 스님은 계율을 범한 호랑이를

칡넝쿨로 묶어 큰 소나무에 매달아 버렸다.

큰 스님은 화가 났는데 나무에 매달린 호랑이 얼굴엔 장난기가 가득하다.

가재 좀 잡아먹는 것 가지고 해도 너무한다는 웃음인지,

기발한 가재잡이를 생각해낸 자신에 대한 대견함에서 오는 웃음인지,

호랑이의 표정이 재밌기 그지없다.

큰스님도 참, 토끼한테 삼겹살을 먹으라시지!

대흥사 침계루 벽에는 나무에 매달린 호랑이와 나란히 가재 그림이 그려져 있다.

 

대흥사에는 호랑이 그림이 또 있다.

산신각에 도인과 함께 있는 호랑이 그림이다.

민간신앙에서는 호랑이를 산에 사는 영물로 여겼기에

산신은 언제나 호랑이를 거느리는 것으로 표현한다.

우리나라에 전래된 불교는 기존에 있던 토속신앙인 산신신앙을

불교 속으로 수용했고 그 결과 호랑이 그림이 사찰에서 등장한다.

그러나 각 사찰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호랑이는 위엄이 넘치는데

대흥사 호랑이는 너무도 해학적이다.  (박영직기자의 해남문화 엿보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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