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사 청파각과 능허교의 용두- 공하
명나라 때 호승지가 쓴 진주선眞珠船에 나오는 아홉 마리의 용이 되지 못한
돌연변이 용의 자식들로서 독창적인 성격을 갖고 있는 용생구자龍生九子는
중국 전설에 등장하는 동물로, 龍이 낳았다는 아홉 자식을 가리킨다.
구룡연이니 구룡폭포니 하는 이름이 모두 여기서 유래 한다
이 아홉룡은 각각 그 모습과 성격이 다르며 그 성격에 맞는 장소에서 각자
활약하나 용은 되지 못했다고 하는데, 이것을 ‘용생구자불성룡龍生九子不成龍’
이라고 한다. 이는 형제들이 성격이 다른 것을 가리킬 때 쓰이는 말이기도 하다.
그럼 龍은 언제 새끼를 낳을까? 음력으로 5월 13일 즉 죽취일竹醉日에 새끼를 낳는다고 한다. 이날 대나무를 심거나 옮긴다고 하는데, 이 날은 대나무가 취해 있어서 잘라내도 아픈 줄 모르고 어미 곁을 떠나도 슬픈 줄을 모른다고 한다. 이날 대나무를 심으면 무성해진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죽순의 다른 이름을 용손龍孫이라 부른다 하여 이런 전설이 생겼다고 한다. 죽취일을 잔치로 즐기던 것을 1920년 일제가 강제로 금지했다고 한다. 그런데 일제에 의해 폐지되었던 이 죽취일 행사를 죽취일 ‘축제’라 부르는 일제 잔재는 어찌 해야 좋을까? 우리나라에는 ‘축제’라는 게 없었는데 말이다.
청파각 용두 - 공하(내려가는 길이 마땅치 않아 세부사진을 찍지 못하였다)
한편 승천하지 못한 아홉룡을 보면
첫째 비희라는 용은 무거운 것을 지기 좋아하여 비석을 등에 진 귀부가 이것이다.
둘째 이문은 높은 곳에서 먼 데를 바라보기를 좋아하여 전각의 지붕 위나 비석의
머리부분 이수에 새겨진다.
셋째 포뢰는 소리 지르기를 좋아하여 종 위에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포뢰는 고래를 무서워해서 고래를 만나면 번번이 놀라 크게 울므로 포뢰를
종위에 조각하고 고래 모양으로 만든 당목을 치면 종소리가 크게 울린다.
넷째 폐안은 호랑이를 닮았으며, 위력이 있어 옥문에 세운다.
다섯째 도철은 마시고 먹는 것을 좋아하여 솥이나 제기에 새긴다.
여섯째 공복은 물을 좋아하는 성질을 가져 다리의 기둥 또는 아래에 새긴다.
공하라고 부르기도 한다
일곱째 애자는 죽이기를 좋아하여 칼의 콧등이나 칼자루에 새긴다. 입으로 삼키기를
좋아하며, 관우가 사용한 언월도의 용이 바로 이것이다.
여덟째 산예는 사자와 닮았고, 연기와 불을 좋아하여 향로에 새긴다. 또한 앉기를
좋아하는데, 불좌의 사자가 바로 이것이며 금예라 부르기도 한다.
아홉째 초도는 소라를 닮았다. 닫기를 좋아하여 문고리에 새긴다.
수구막이, 수살막이 송광사 들머리 길을 따라 조계천을 거슬러 오르면 맑고 서늘한 청량각을 만난다. 절집에서 자주 접하는 청량이란 말은 화재가 잦은 절집에서 화재예방에 유리하도록 습도가 높고 서늘 썰렁하도록 하여 화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자는 뜻 일게다. 청량각에는 윗도리에 화재예방 문패를, 아랫도리에는 풍수예방 물건을 담고 있다. 즉 문패 속에는 119 풍수, 무지개다리 천정에는 112 풍수가 있다는 것이다. 112 풍수의 주인공 홍예 천장 용두는 여섯 번째 용으로 공하라고 하는데 청량각의 공하는 조계천의 물길을 다스리기 위함이나 구체적으로 무엇을 다스릴까? 공하를 자세히 보면 툭 불거져 나온 두 개의 눈은 송광사 방향을 보고 있다. 이는 내부 쪽을 보고 있다는 것인데 즉 송광사 내부를 단속하는 조성물로서 풍수에서는 수구막이라고 한다. 송광사에서 머물러야하는 생기가 물줄기를 타고서 흘러나갈 수 있으므로 이를 막아 주는 역할을 공하가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향물줄기로 인한 외부흉살의 침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우화각 능허교 아래를 살펴보면 여기서도 용두석상을 조성해 놓았다. 이 공하는 수구막이 역할을 하는 청량각의 공하와는 반대로, 흘러가는 물줄기를 보고 있는데 이는 외부를 감시하는 수살막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청량각의 수구막이. 능허교의 수살막이는 송광사의 불리한 북향물줄기 풍수 때문에 수구막이와 수살막이가 함께 조성된 사찰이라는 것을 여기서 알 수 있을 것이다. 엽전 세 닢 능허교 아래 수살막이 공하에는 조선 숙종 33년(1707년)경 돌다리를 세울 때 재미있는 얘기 하나가 전해져 오고 있다. 이 용머리의 여의주에는 철사 줄에 동전이 세 닢이 지금도 꿰어져 있는데 그 동전에 얽힌 이야기이다. 옛날 이 능허교를 처음 만들 때 거기에 맞춰 예산을 세우고 화주를 하였는데 다리불사를 마치고 나니 동전 세 닢이 남았더란다. 이미 다리 만드는 일은 끝났고 그 남은 돈을 다른데 쓰자니 율장의 호용죄互用罪에 해당될 것이고, 이래저래 고심하던 끝에 대중스님들은 돌다리 아래 손이 닿지 않는 다리 아래쪽 공하 용머리의 여의주 끝에다 철사를 꿰어 거기에다 남은 돈 세 닢을 매달아 두었다고 한다. 훗날 돌다리를 보수하거나 새로 건립할 때 보태 쓰도록 한 것이다. 그 불사를 위해 마련한 돈은 그 몫으로 써야한다는 철저한 옛 스님네들의 정신을 거기에다 꿰어둔 것이다. 이처럼 시주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송광사 스님들의 마음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36년 전인 1977년, 송광사 범종불사를 할 때였다. 취봉 노스님이 당시로는 거금인 150만원을 불사금으로 내 놓았다. 이 돈에는 뜻하지 않은 사연이 담겨있었다. 송광사는 6·25전쟁당시 큰 화재로 대부분의 전각과 종고루가 소실되었다. 전쟁이 끝나자 중창불사를 하면서 종 불사를 함께 하였는데, 당시 송광사 주지였던 취봉 스님은 종 불사를 위해 화주한 돈으로 범종을 주조하고, 남은 시주금을 딴 곳에 전용하지 않고 남겨 두었다. 그러다가 종이 깨져 다시 종 불사를 하게 되자 불사금으로 내 놓은 것이다. 구산 스님과 함께 송광사 복구를 위해 혼신을 다했던 취봉 스님은 오랜 주지생활에도 사방승물과 개인사물을 엄격히 구분하여 공사를 분명히 했다. 어느 때보다도 사중살림이 어려웠던 시절에 범종불사를 마치고 남은 돈과 20년간의 이자를 챙겨놓았던 것이다. 용이 엽전 세 냥을 물고 있는 능허교 위에는 ‘날개가 생겨 날아올라 신선이 된다(羽化登仙)’는 우화각(羽化閣)이란 누각이다. 한 푼의 오차 없이, 한 생각의 빚진 마음 없이 인과에 분명한 이라야 능허교를 건너 우화등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능허교를 바라보고 있다 보면 돈에도 생명이 있어서 필요한 곳에 사용하면 옆구리에서 날개가 나와 부처님 세계로 날아간다는 법음이 들리는 듯하다. (참조: 산나고 탑나고 절나고- 장영훈, 다음카페- 요사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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