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비지정문화재

흥해 선돌과 용천리 칠성바우

참땅 2013. 2. 12. 17:23

설명절 이튿날 흥해 선돌과 용천리 칠성바우

 

 

왜 이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몇 해 전부터 우리 집사람 시각으로

동서가 없다는 핑계로 한 겨울 석 달 동안 큰일을 혼자서 여섯 번 치러내야 하는

입장에서 오로지 힘들다는 그 구실로 명절 오후쯤에는 짐 챙겨들고 처갓집으로

가는 자연스러운 행위가 이제는 관례화 되어 버렸다.

그러한 구실이 이제는 나에게도 당연시되면서 명절 오후가 되면 의례히 그렇듯

짐 싸들고 뜨뜻미지근하게 구룡포를 나선다.

어차피 초이렛날 할머님 기제사로 또 와야 하기에 별스런 미련도 제쳐 놓은

지경이고 보니 그닥 어머님께 죄스런 입장도 별로 없는 상태이다.

처갓집에 가면 또 하나의 이벤트가 항시 대기 중이다.

 

 

집사람 사촌 오빠가 처갓집 바로 뒤 집에 살고 있는데 일 년에 두 번,

매냥 들어 온 양주를 꼬불쳐 놓고 흐뭇하게 날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낭만적인가...

이번에는 고 박통이 드셨다는 시바스리갈이었다.

맨날 막걸리, 쇠주만 마시다가 때깔 좋은 양주에 속이 호강하는 기분이다.

 

 

 

명절 휴일이 짧다는 핑계는 일일이 친척분들에게 인사를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즉 예의 바르지 못한 것에 대한 죄의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느지막한 아침부터 청소하자며 깨우는 집사람에게 가 볼 데가 있다는 핑계로

일단 집을 나섰는데 그렇다고 딱히 혼자 가 볼 곳도 마땅치가 않다.

흥해로 길을 잡았다.

흥안2리의 선돌을 찾아보기로 하고 흥안 연당뜸마을로 향했다.

흥안2리 마을 서편 밭 위에 위치한 이 선돌은 지금보다 큰 규모였는데,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에 의해 파괴된 것을 마을 주민들이 다시 그 자리에

세웠다고 한다. 부정형의 긴 판석형 바위를 세운 것으로, 현재 높이 160cm,

80cm, 두께 40cm 정도이며 선돌의 주변에는 60cm 정도의 돌을 고여 놓았다고

하지만 고여 놓은 돌의 형태는 찾을 수 없고 잡풀씨레기와 농사용 쓰레기에

둘러 싸여 근근히 버티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듯하다.

일제시대 마을주민들의 의지가 깃들인 이 선돌이 현재에 와서 푸대접 받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을주민들의 조금 더 세심한 배려가 아쉽다는 느낌이다.

 

 

이 선돌에서 약 10m 거리 논바닥 위에 엎드린 고인돌이 한 기 있다.

별다른 특징 없이 반쯤 묻힌 이 고인돌은 19016040의 타원형 판석이다.

각 종 농사용 쓰레기와 철근 나부랭이를 이고 있는 고인돌이 처연하게 다가온다.

 

 

 

금장리 선돌은 둥글고 긴 판석형의 바위를 세워놓은 형태로 선돌배기 마을 안에

있으며 크기는 19015070정도이다. 마을 안에 있다 보니 바싹 앞으로

차량을 주차 해 놓아 사진 찍기가 영 수월치 않다.

선돌에서 약 300m 정도의 거리 내에 고인돌 군집이 있다는데 주위 몇 몇 곳을

둘러봐도 통 눈에 띄지를 않아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하였다.

 

 

 

 

다시 흥해읍내로 들어가려다 우연히 용천리고인돌 푯말을 보고 용천리로 가니

마을 옆 논 너머 크지 않은 송림 안에 민묘가 있고 그 옆에 고인돌 두 기가

있었다. 한 기는 반파되어 3등분으로 쪼개졌는데 상부에 희미하게 그러나 분명히

바위구멍 5~6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저 논바닥 어디쯤엔가 두 기의 고인돌이 묻혀 있으리라, 그래야 칠성바우.

 

돌아오려는데 마을의 할아버지 한 분이 다가와서는

머 하능교?’

, 예 고인돌 조사하고 있심미다

그거하모 머하노~, 저 짜 교회 앞에 고인돌도 저거 맘대로 옮개뿌는데...’

, 그건 저...’

거 바우하고 여 바우는 아들 나 달라꼬 빌던 동네 칠성바운데...’

칠성바우요?’

교회 저거가 먼데 동네 칠성바우를 마을 허락도 없이 맘대로 옮개뿌고...

~시도 글타 그거 하나 단속 몬해가 교회한테 휘둘리나

할아버지는 나한테 따지듯이 덤비시다가 옛 얘기도 서슴지 않고 해주신다.

 

 

용천리에는 고인돌이 전부 일곱 기가 있어 칠성바우라 하였단다.

즉 지금 하늘소망교회 앞의 고인돌과 솔밭의 바위구멍이 있는 고인돌에

아들 못 낳는 여인네들이 기도를 하면 아들을 점지 해주어 이 마을과

근처 마을에서 빌러 오는 사람들이 꽤 많았단다. 그때만 하더라도 한때 마을에서

동제를 지내기도 하였는데 그런데 언제부턴가 마을 논 위의 바위가 묻히다시피

하더니만 솔밭의 바우도 깨지고, 몇 해 전에는 교회 앞의 바우도 옮겨지고만

후부터는 마을의 우환이 끊이질 않아 포항시를 상대로 교회 앞의 바우를 원 위치로

옮겨 줄 것을 2년 전부터 요청하고 있는 상태인데 아직도 시행되지 않고 있다며

우리(용천리)가 함 움직이모 포항시장도 배기기 힘들꺼이다하신다.

하이고 할아버지의 강단에 , 예 예만 연신 내뱉고는 자리를 떴다.

할아버지 말씀따나 동네에서 모시던 바우를 어느 날 뜬끔없이 들어 온 교회가

주차장 나들목이 좁다며 한 켠으로 치워버린 교회가 그리도 밉살스러울게다.

할아버지 지도 할아버지의 주장과 강단에 충분히 공감이 갑니다.

그래서 문제의 바우를 한번 더 보고 가렵니다.

 

교회 입구 차량 나들목이 원래 고인돌 자리이다.

 

 

 

 

일제시대에는 미신으로 치부하며 우리네의 터잡이 신앙처를 없애더니

이제는 신흥종교 세력들이 고유의 민속들을 터부시하고 있으니 그네들은 불교가

이 땅의 고유 신앙과 저들의 신앙을 습합했던 기억들을 잊은 건가,

모른 체하는 건가. 아쉽기만 한 하루가 또 저물어 가고 있다.

낼부터 출근해야 한다는 생각에 뒷목이 뻐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