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장계 깊숙이 은거한 매월당 김시습의 흔적을 더듬다.
지난주에 실패한 경험을 바탕으로 2차 결행시도,
용장계에서 은적골로 갈라지는 언저리에서 약350m 깊숙이 침투하여
지류가 두 갈래로 갈라지는 곳에서 왼편 급격히 경사지는 산 오르막을
또 다시 약250m 정도 올라야 한다는 사전정보 입수와 함께 전날에 통화한
회화나무의 설명을 참고로 막상 두 지류가 갈라지는 지점에 도착하니
3m 전방에 또 두 개의 지류가 갈라진다.
잠시 방황, 지난주에 올랐던 산등성을 다시한번 타기로 결정하고 신발 끈을
단단히 조여 맨다.
계곡 언저리 민묘 앞에 석등 지대석으로 추정되는 석재
약100여m 오르니 민묘가 보이고 조금 더 오르니 대나무 밭이 나타나며
또 민묘가 나타난다.
여긴가.... 주위를 아무리 둘러보아도 탑재의 흔적은 보이질 않는다.
혹시나 싶어 건너 산 능선을 살펴보니 산허리에 대나무 밭이 보인다.
잠시 동행인과 숨고르기 한판 후 건너 산 능선을 둘러보기로 했다.
짧은 계곡 대나무 숲 오롯한 사잇길로 들어가니 제법 너른 민묘가 보인다.
얼마 전 사람이 다녀 간 듯 대나무를 벤 흔적이 뚜렷하며 민묘 앞에
석등 지대석인 듯한 석재가 눈에 띈다.
여기도 아니다.
전은적암터의 탑재들
민묘 주위를 샅샅이 살펴보니 낙엽더미로 덮혀 버려 길인듯 아닌듯한
흔적이 희미한 사잇길이 보였다.
대나무 숲 사잇길을 헤집고 푹푹 빠지는 낙엽더미를 밟으며
급경사 오르막을 10여분 정도 오르니 갑자기 너른 평지가 눈앞에 펼쳐지며
환해지는 기운을 느낌과 동시에 왼편에 석재가 보여 눈길을 돌림과 동시에
탑재가 뚜렷이 보였다.
‘여기다’ 나도 모르게 함성이 터져 나왔다.
후~하!!!
1층 탑신석- 방형의 사리공이 있다.
절로 흐르는 미소는 한참이 지나도 가실 줄을 모르고 멀리 계곡 사이로
나타나는 산들, 마을들, 논 평야가 한눈에 잡힌다.
이런 재미로 답사 댕기는거 아이가...
위에서 내려다본 1층 옥개석- 탑신괴임이 한개이다.
은적골 은적암터(은적곡 제4사지)는 조선시대 단종 때 생육신 가운데
한 명인 매월당 김시습이 숨어 살았다고 한다.
이곳에 있는 석탑재들로 보아 통일신라시대부터 법통이 계속 유지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15C에는 존속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단다.
이후 조선시대의 <화계집>에는 은적암이 허물어져 30년이 지난 후,
당시 천룡사 승려가 발원하여 암자를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조선후기까지 법통이 유지되었음을 알 수 있으나 언제 폐사되었는지는 알 수 없단다.
급경사 오르막, 내리막- 가는 길은 언제나 수월치가 않다
현재 절터에는 기단갑석, 1층 탐신석과 1층 옥개석 그리고 주춧돌이 있으며
석등지대석으로 추정되는 석재가 건너 계곡 언저리 민묘 앞에 있다.
이곳에서 옮겨간 것으로 전해지는 옥개석이 현재 관음사 경내에 있다.
경주 정씨 시조묘가 있는 감문왕 백운재도 함께 둘러본다
한면에 두기씩 안상이 새겨진 배레석이 묘지의 상석 역활을 하고 있다.
안상 세부
이렇게 묘지 앞에 탑재 면석도 있고...
왕릉에서나 있을법한 난간석도 버젓이 묘지 앞에 세워져있다.
탑의 면석이 무려 3기나 있다. 어느 절터에서 옮겨 왔는지도 모른단다.
4/5~6일 사이에는 마라톤대회다, 뭐다해서 경주에는 엄청 복잡했다.
꽃놀이 춘상객들로 혼잡한 경주의 거리는온통 차량들로 북새통이지만
눈꽃처럼 흩날리는 벚꽃의 새하얀 꽃닢들은 가히 장관이 따로 없다.
며칠내로 경주 벚꽃은 그 화려함을 다하리라...
허나 경주 남산의 진달래는 쬐끔은 이르지만 아마 이번주에는 절정에 이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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