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비지정문화재

포항 장기지역 비지정문화재를 찾아 - 5

참땅 2012. 2. 21. 15:50

장기지역 비지정문화재를 찾아 - 그 다섯번 째 

 

마지막으로 금곡리와 마현리 지역을 찾아갑니다. 

 

 

금산서원: 포항시 남구 장기면 금곡리

금곡리 하금마을에 위치한 琴山書院은 1707년(숙종 33년)에 許進壽(1522∼1570)를

향사하는 곳으로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년)에 훼철되었다가

1897년에 강당을 건립하였고 1906년에 동제 및 문을 세웠다.

1909년에 중건하였으며, 1926년에는 묘우를 건립하였으며, 현재 경내에는 강당·

묘우 경모사·동제 등 3동의 건물이 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경모사(景慕祠), 4칸의 수덕헌(修德軒), 3칸의 동재,

'명덕문(明德門)'이라고 쓰여 있는 외삼문, 4칸의 고사(庫舍) 등이 있다.

사당인 경모사에는 허진수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수덕헌은 강당으로서 방과

마루로 되어 있는데, 방은 헌관 및 별유사, 재석실로 사용하며, 대청은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신문은 향사 때 재원의 출입문으로만 사용하고 있으며, 동재는 재원숙소로 사용하고

있다. 고사는 서원을 관리하는 고자가 사용하는 곳이다.

 

 

이 서원에서는 매년 3월 하정(下丁)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祭品)은 4변(頭)

4두(豆)이다. 재산으로는 전답 3,000여평, 임야 10정보, 대지 400평 등이 있다.

 

 

전학후묘가 아니고 좌학우묘이다.

 

허진수(許進壽): 자는 사서(士瑞), 호는 염호(廉湖), 본관은 김해(金海)이다.

퇴계 이황의 문인으로 천품이 온화하고 재기가 뛰어난 영재였으나 벼슬을 단념하고

도산서원에 들어가 학문에 전념하였다. 1574년(선조 7년) 나라에서 그의 학행을

가상히 여겨 통정대부(通政大夫)의 품계를 내렸으며, 만년에는 고향에서 정자를

짓고 후진양성에 진력하니 이때부터 그곳을 금곡(琴谷)이라 불렀다.

시호는 충목(忠穆)이다.

 

 

삼효각: 포항시 남구 장기면 금곡리

허기(許琦)와 아들 허온(許溫)의 처 효부 월성 최씨와

아들 허식(許湜)의 처 곡강 최씨의 효행을 표창한 비와 비를 보호하는 각이다.

순조 10년(1810년) 경상도내 유림과 경상감사가 예조에 장계(狀啓)를 올려

효자효부(孝子孝婦)로서 정려(旌閭)가 내려 김해 허씨 문중에서 비각을 건립하였다.

 

 

‘折衛將軍龍衛副護軍金海許琦之公旌閭碑(근위장군용위부호군김해허기지공정려비’,

‘孝烈婦曲江崔氏旌閭碑(효열부곡강최씨정려비)’,

‘孝婦月城崔氏旌閭碑(효부월성최씨절려비)’ 3기의 비석이 있다.

 

 

삼명서원: 포항시 남구 장기면 마현리

1553년(명종 8년) 지방유림의 공의로 이눌(李訥)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854년(철종 5년)에 중수하였으며, 1868년(고종 5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47개 서원을 제외한 전국의 모든 서원이 훼철될 때 수백 명의 사람이 강력히 항의하여

훼철되지 않고 지금까지 존속되었다.

 

 

이 서원에서는 매년 봄과 가을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祭品)은 4변(頭) 4두(豆)

이다. 재산으로는 전답 1,800여 평 등이 있다.

 

 

현존하는 경내의 건물로는 사당인 상의묘와 강당 그리고 서재가 있다.

 

 

사당인 상의묘에는 이눌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강당인 현교당은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 강론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이눌 비각은 남향으로 정면1칸 측면1칸이며, 돌로 조성한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비석 전면에는 ‘聖校遺墟將仕郞訓導李公事蹟碑’라고 刻字되어 있다.

비신은 폭 26㎝·높이 79㎝·두께 26㎝이다.

 

 

8각형 배흘림 기둥 사이에 난간을 설치할 수 있는 방형의 은장이

각 기둥의 아래·위 네 곳에 있다.

 

 

이눌: 1553년(명종 8년)~?, 자는 희인(希仁), 호는 약우(若愚), 본관은 영천이다.

문간공(文簡公) 이감(李敢)의 7세손이며, 죽계(竹溪) 이대임(李大任)과 더불어

임진왜란 때 장기전투와 경주전투에 참여하 많은 전과를 올렸으며, 임진왜란 이후

장사랑(將仕郞) 훈도(訓導)에 제수되었다.

 

 

이눌의 마애비가 또 하나 있으니 장기 할매바위와 용암의 전설이 얽힌

용산에 존재하고 있다. 

 

 

 

최근 원래 장기향교의 위패를 권안한 용굴과 마애비를 찾을 수 있어

다행한 일이었으나 그렇다면 용산의 이 마애비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