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종을 치는 것은 지옥에 있는 중생들을 위해서며 아침 저녁으로 칩니다.
이 종이 울리면 부처님께 예불을 올리는 시간으로 지옥고를 잠시라도 쉬게 하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아침에는 28번(二十八宿- 서건사칠당토: 마하가섭부터육조혜능까지 28대조사
저녁에는 33번(三十三天 -수미산 위에 있는 天界= 중앙에 帝釋天(제석천)이 있고,
사방에 八天씩 모두 합하여 삼십삼천(33天)이 있다.
사물을 다루는데는 아침과 저녁이 각각 다르다.
아침에는 운판 ⇨ 목어 ⇨ 홍고(북) ⇨ 범종을 28번 올리며,
저녁에는 범종을 33번 울리고 ⇨ 홍고(북) ⇨ 목어 ⇨ 운판을 친다.
범종의 구조
1. 용뉴
용뉴란 용의 모양을 하고 있는 범종의 가장 윗부분이다. 용뉴의 변천 과정을 살펴보면
우선 신라 중대(신라의 민족 통일 이후)에는 한 마리 포뢰용이 종면에 몸을 굳게 밀착,
종을 물어 올리듯이 종 머리에 입을 붙이고, 두발로 앞뒤를 굳게 버티고 있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에밀레종으로 알려 진 성덕대왕 신종을 보면, 한마리의 포뢰용이
종면의 천판에 굳게 밀착하여 종머리에 입을 붙이고, 꼬리가 천판에 붙어 있으며,
튼튼한 두발을 앞뒤로 굳게 버티어 범종을 물어 올리려는 형상으로 미혹(迷惑)에
빠져 있는 중생을 부처의 세계로 끌어올리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되어진다.
신라 하대 ∼ 고려시대에는 다소 빈약해진 몸매, 등을 높이 세우고, 오른 다리는 옆으
로 뻗어 기역자로 구부리고, 왼다리는 위로 꺽어 올려서 여의주를 희롱하고 있는 모습
을 하고 있어, 전체적으로 힘이 없는 느낌을 준다. 맥이 풀린 듯 음관에 몸통을 기대거
나, 음관에 몸통을 ? 형태로 하여 만들어 진 것도 있다. 용머리는 들리고 턱의 앞쪽 끝
만이 살짝 종 머리에 닳을듯 말듯한 자세를 하고 있기도 한다.
조선 초기∼선조대에는 두 마리의 포뢰용으로 얼굴을 밖으로 돌린 채, 같이 붙어 엉킨
몸뚱이를 솟구쳐 고리 형성하고, 전체적인 느낌이 둔하고 무딘 생김새로 철저하게
라마교 범종 형태를 수용한 듯 보여진다. AD1346년에 제작된 연복사종은 고려왕실이
원의 종장에게 부탁하여 제작했다는 기록이 있다. 광해군 이후에는 한마리의 포뢰용을
표현한 범종과 함께 쌍룡의 종은 전체 크기가 1m 내외로 작아진다. 토속적인 느낌이
강하며, 모체에 비해 엄청나게 큰 얼굴, 마음껏 나온 긴 콧수염, 성글게 난 뻐드렁니를
드러내기도 한다.
2. 음관
음통 또는 용통이라고도 한다. 음관의 기원으로『삼국유사』만파식적 설화를 주목하
기도 한다. 형태는 대나무 마디 모양을 하고 있으며 기능은 종을 쳤을 때 잡소리 없이
한 가닥 맑은 소리를 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즉, 뒤울림이 명주실같이 끓어지지 않고
이어지게 하는 신비로움이 스며있다. 신라∼고려 때까지는 음관이 하나 였으나 조선
초기 이후에는 음관이 없어져 주체를 잃어버린 중국의 종을 모방한 인상을 준다.
3. 천판
천판은 용뉴, 음관과 접촉되어 있는 종머리 부분으로, 신라 시대의 범종에서는 가장
자리 안쪽으로 연꽃잎이 볼록 새겨진 것이 특징이다. 고려시대의 범종에서는 가장자리
연꽃잎이 서있는 모습을 보이고 조선 시대의 범종에서는 천판의 중앙이 전체적으로
솟아올라 있고 가장자리 연꽃잎의 테두리가 사라진다.
4. 상대와 하대
상대와 하대는 종의 어깨와 종구에 둘러진 무늬 띠를 말한다. 이러한 상대와 하대는
북의 테두리 장식과 같은 의미로, 종의 아래와 위가 잘 터지지 않도록 단단하게 하기
위한 테두리로 두 쪽을 두툼하게 마감하여 굵은 울림소리가 나도록 한다. 상대와 하대
의 변천과정을 살펴보면 신라에서는 당초무늬와 보상화무늬를 주로 새겼으며
고려시대에는 번개무늬, 국화무늬를 새겼다. 조선 시대에는 상대에 덮인 연꽃무늬를
새겼으며 하대자체가 몸통 위쪽으로 솟아 물결무늬 모양을 하였으며 상대와 하대 사이
에 세 줄의 도들줄 띠를 새겼다.
5. 연곽과 연뢰
연곽은 상대 밑쪽의 네 곳에 붙어 있는 네모난 태 부분이며, 연뢰는 유곽 속에 각각
9개씩 있는 도들꼭지로 특히, 연뢰의 솟은 부분 주위에 꽃판을 새긴다. 연곽과 연뢰는
중국종에 없는 '한국종'의 또 하나의 특징으로, 일본종은 틀히 잡힌 생김새를 이루지
못하고, 연뢰의 수가 일정하지 않다. 신라 고려시대의 연곽은 상대 밑쪽에 붙어서
종 몸체의 1/3크기의 네모난 띠 모양으로 당초문, 보상화문, 국화문을 새겼다.
조선 시대에는 상대에서 떨어져 나온 마름모꼴 모양으로 당초문을 새겼다.
한편 연뢰는 신라 시대에는 연꽃받침 위로 꽃봉오리가 매우 볼록하게 돌출되었으며
연꽃판 모양을 하였다. 고려∼조선시대에는 단추형 모양을 하였다.
* 연꽃봉오리 형태로 돌툴된 장식을 연뢰라고 하고, 그 장식을 싸고 있는 방형곽을
연곽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종은 방형곽 안에 반드시 9개씩의 돌출 장식이 배치되며
그 형태도 작은 돌기형이다. 따라서 일본 종의 유두라는 명칭과 달리 우리나라 종은
연뢰로 불러야 하며 이 연뢰가 배치된 곽도 연곽 또는 연실로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
6. 종신
종의 몸체로 통일신라 종은 대체로 윗부분이 좁고 아래로 가면 불룩해지다가 다시
종구 쪽이 좁아지는 독과 같은 형태를 취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종구 쪽이 좁아지는
경향이 점차 사라져 직선화도니 경우가 많으며 조선시대는 고려 말 중국 종의 영향을
통해 종신이 점차 바깥으로 벌어지거나 원추형, 삼각형과 같은 다양한 모습으로 변모
된다.
7. 견대
천판 외연을 돌아가며 연판무늬 띠가 둘러진 장식대이다.
8. 종신부조상
종신의 당좌와 당좌 사이 앞뒤 면 동일하게 주악천인상과 공양자상, 비천상, 불·보살상
등을 장식한다. 통일신라 종은 주로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상을, 고려시대의 종은 비천
상, 불·보살좌상을 장식하며 조선시대의 종은 보살입상을 배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범종의 중앙에 새겨진 비천상과 불보상상 역시 그 시대마다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의 신라종에서는 비천상이 발견되는바, 좁고 길다란 천의를 너울거리며,
연꽃 방석 위에무릎을 꿇거나 꼬리가 긴 꽃구름을 타고 푸른 하늘에 떠서 악기를 다루
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고려시대에는 꼬리구름 위에 놓인 연꽃자리에 앉은 부처
나 보살살 모양을 새기며 조선 시대에는 거의 대부분 연꽃 위에 꼿꼿이 선 채로 합장한
보살(관세음보살, 지장보살)이 유곽 사이까지 올라가서 4곳에 배치된다.
9. 당좌
당좌는 종을 치는 당목이 닿는 부분이다. 당좌의 위치는 좋은 소리를 얻는 위치에 자리
로 종구의 밑에서 1/3정도(대부분의 신라종이 이에 해당)에 위치하며, 고려시대 종은
하대 쪽에 치우쳐 있는 경우가 많다.
당좌의 위치와 무늬를 시대별로 구분해 보면 신라 시대에는 종의 양쪽에 위치하였으며
연화문을 새겼다. 고려 시대에는 사방, 즉 4곳에 새겼으며, 조선시대에는 당좌가 업이
명문만을 새겼다.
10. 종구
종의 터진 입구 부분을 말한다. 일본 종에 비해 우리나라 종은 두께가 얇게 주조된것을
볼 수 있으며 통일신라 종의 종구는 안쪽을 만져보면 안으로 오므라들게 처리되었다.
종의 공명이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배려한 의도적인 구성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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