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비지정문화재

선사시대 무덤을 보듬고 사는 포항시 동해면 금광리

참땅 2011. 7. 13. 11:54

선사시대 무덤을 보듬고 사는 포항시 동해면 금광리

 

 

지금은 포항시 관할로 통합되었지만 불과 몇 년 전까지도

영일군 동해면 금광리로 불리던 금광리는 말 그대로 금을 캐는 광산이

존재했던 곳입니다.

지금도 마을 뒷산에는 광산의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마을 안으로 들어서자 옛날 서원의 우물 자리를 복원하여 놓았습니다.

泉然亭- 정자가 있었던 곳인 갑다.

마을 어르신은 서원 내의 우물을 복원하고 비를 세웠다는데...

 

시멘트 포장 마을길과 묵밭에 걸쳐있는 고인돌

 

마을길가에 바짝 붙어 웅크리고 있는 넓적 고인돌

원래 길에 붙일려고 했었는데... 상부의 시멘트 자욱이 아직 붙어 있습니다. 

 

웃묵밭, 아랫묵밭의 경계를 이룬데다 낮은 집 담장에 몸을 기댄

이 고인돌은 호사스런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매일 매일 정한수를 받치는 연유가 우리 할머니의 치성처럼

흔히 말하는 가정 민속신앙 의례인줄 알았었는데,

그기 아이고 낮은 집의 용도가 곁방이 법당이랍니다.

근데 정식 불교를 신봉하는 절집이 아이고 굿당인 것 같습니다

 

이 고인돌은 현재 위치가 맞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고인돌 사면에 새겨진 바위구멍을 보고 알았습니다.

바위구멍을 곧게 내려가 새긴 것이 아니라 비스듬히 새겼다는 것입니다.

 

요즘도 매일 이렇게 정한수를 올리나요?

그게 아니고요, 저기 저...

아~ ~ 예...

 

이 집 대문 앞 바싹 붙어 있던 고인돌은

마을길을 포장하면서 시멘트로 묻어버렸답니다.

어찌보면 깨어 없애지 않고 묻어 버리는게 맞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봅니다

 

이 집의 고인돌은 또 어떻습니까?

시멘트 블록 담장의 생김도 한번 꺾이어 이어 간데다

꺾인 지점에 묘하게도 고인돌을 접 붙였습니다.

담장이 고인돌에 기댄건지, 고인돌이 담장에 몸을 기댄건지...

 

마당 한복판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큰 고인돌은 담지를 못했습니다.

대문을 들어서다 떼거리로 짖어대는 犬새끼들 때문에

발도 들여 놓지 못하고 쫓겨 났다는거 아입니까.

저 쉐이들 복날 도 매칠 남지 않았구마는...

 

들판, 야산, 복숭아밭, 자두밭에서 흔히들 볼 수 있는 이러한 고인돌이

마당 안에도, 담장과 더불어서, 동네 한복판 묵밭에 걸쳐

또는 담장의 구실도 해주는 여기 이 동네의 고인돌은 동네사람들과

희노애락을 함께하는 동네 주민의 역할도 하는가 싶습니다.   

 

이 동네 마을 앞으로 저수지가 있는데 흔히들 금광못이라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금광저수지를 개보한 '김정희'- 추사 김정희가 아닙니다-  의

공덕비가 저수지 공원 내에 있습니다.

 

앞면에 방형의 틀을 짜고 면석을 고른 다음 글씨를 새겼네요.

하지만 대충 다듬어서 인지 옆면과 뒷면은 자연석 그대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