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비지정문화재

망주석 세호에 새(鳥) 장식

참땅 2018. 4. 3. 09:39

망주석 세호에 새() 장식


부도처럼 보이는 석물을 보았다는 석헌의 얘기를 듣고 죽정리의 안태봉으로

박진범이와 셋이 길을 나섰다. 금광을 거쳐 조항산 속칭 레이다 기지를 막 지나면

범상치 않은 민묘를 만나게 되는데, 주인은 달성서씨이다.




行宣畧将□□宣薦龍驤衛

副司果達成徐公之墓

 

崇禎紀元後五己未五月(19195)



무덤의 주인이야 큰 관심을 둘거리는 아니지만 망주석의 세호 장식과

비석 좌대의 장식(세호? 거북?)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장식이다.

향우측 망주석의 세호 두 마리는 통상 망주석 柱身에 새기는 보편성을 어기고

雲角 아래 簾依에 걸쳐 장식을 하였다.

수호의미로 장식하는 세호를 이렇게 두 마리나 장식한 걸 보니 무덤의

수호의지가 대단한가 싶다.





세호는 중국에서 건너온 문화이지만 조선에서는 細虎, 즉 가늘게 조각한

호랑이 문양이라는 말이다. 물론 후대로 내려오면서 도룡뇽, 다람쥐 등의

모습으로 바뀌기는 하지만 말이다. 이 평범함을 거부하고 전혀 다른 세호

장식을 새긴 특이함을 여기 이 민묘에서 또 볼 수 있으니 이 어찌 행운이랴.

향좌측 망주석의 세호 장식이 그렇다. 簾依에 새긴 세호 반대편에 새()

붙여 놓은 것이다. 두 날개를 활짝 펴고 주인공을 애써 보려는 듯 고개를

돌린 이 새는 보통 새가 아닌 관세음보살의 靑鳥이던가 아니면 차라리

鳳凰이라 부르고 싶다.




몇몇 해 전 달전리 회재선생의 무덤 앞 봉로석에 새겨진 귀엽고 앙증맞은

세호 장식은 도난으로 이제 두 번 다시 볼 수 없으니 안타깝기 그지없지만,

여기 이 민묘에서는 비석 좌대 모서리에 밖을 향하지 않고 안으로 기어가

비석을 올라타려는 듯한 세호가 두 마리 장식되었으니 이 또한 특이하다.

비좌 아래 귀부를 만들려니 부담이 클 것 같고 안 하려니 조상님 뵐 면목이

없어 이렇게나마 새기지 않았을까 하는 그네들의 소박함이 묻어 나오는 것

같아 여간 숙연해짐을 느낍니다.



안태봉 봉수대는 몇 년 전보다는 확연히 정비가 되었고 태실의 추정을

지우려는 듯 돌무더기를 쌓아 봉수대였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신라 어느 왕자의 태실이라는 흔적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지만

조선시대 봉수대가 들어서면서 없어진 탓이라는 조그마한 여력이라도

남겨 놓았으면 하는 바램이 무너지는 가슴이 답답합니다  



嘉善大夫行龍驤衛護軍兼同

知中樞府事金海金公之墓


檀紀四二八五年壬辰三月十八日移葬(1952년)

* 625동란 중에 이장했다는 것인가? 



태봉을 넘어 죽정리 방향, 아래로 내려가니 석헌이 말하는 예의 절터(?)

나왔습니다. 전혀 절터의 흔적은 나오지 않았지만 여기에는 문인석 2

그리고 비석과 묘방석이 보였습니다. 무덤 전면에 장식하는 원래의 묘방석을

팽개치고 어줍잖은 현대식 묘방석을 쓴 이유는 뭔지, 안타깝습니다.

묵은 돌 질감이 묻어나는 묘방석이 아깝다 했더니 좌우 문인석이 희번득거립니다.

한 기는 서 있던 좌대에서 떨어져 나와 풀섶에 드러누웠고,

향우측 문인석은 의기양양하게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묘방석은 둥그스름한 반원 테두리를 만들고 그 내부에 말려들어간 줄기,

그리고 상부에는 꽃을 그리듯 둥근 해를 올렸습니다. 무덤 전면에 부착,

장식하는 구조라 뒷면에는 아무런 조식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리 좋은 묘방석을 두고 무덤을 단장한답시고 어설픈 묘방석을 끼워 넣었으니

답답한 노릇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