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담귀성瞿曇貴姓
<팔상도> 도솔래의상 중 왼편 상단부에 주로 '구담귀성'이 그려진다.
- 석씨원류응화사적
석가보釋迦譜에 이르셨다.
겁초劫初의 평등왕平等王으로부터 대모초大茅草의 왕자인 의마왕懿摩王에
이르렀을 때, 왕은 임금의 자리를 아우에게 양보하고 구담瞿曇이라는
성을 가진 바라문婆羅門을 따라 배웠다. 바라문은 그를 받아들이면서 말했다.
“마땅히 왕의 옷을 버리고 나의 옷차림과 같이 하십시오”
그리하여 구담이란 성을 받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니 형상과 의복이
예전과 다르기에 아무도 그가 왕이었음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리하여 감자원甘蔗園을 정사精舍로 삼고 살았다.
통도사 <팔상도> 제일도솔래의상 중 구담귀성
발가벗겨 너무에 묶인소구담을 향해 대구담이 급히 날오는 장면
활을 소는 장면
당시 한 도둑이 이곳을 지나갔는데 뒤쫓아 온 포도군이 도둑의 발자국을
찾아 따라 오다가 소구담小瞿曇 왕을 잡아갔다. 나무로 몸을 꿰뚫어 그를
과녁으로 삼아 활을 쏘게 하니 피가 땅에 흘러 내렸다.
대구담大瞿曇선인이 천안으로 이를 보고 신족통神足通으로 날아와서 물었다.
“우리 문도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이와 같이 참혹하게 하는가?”
왼편 남자, 오른편 여자 - 그릇에 피를 담고 기도를 하는 대구담
그리고는 흙 속에서 피를 취하여 진흙으로 둥글게 뭉쳐서 지니고 정사로
돌아 와 왼쪽 피는 왼편 그릇에 담고 오른쪽 피는 오른편 그릇에 담았다.
구담선인은 이어 주문을 외우며 기원하였다.
“만약 지성이 통한다면 원컨대 천신은 피가 변하여 사람이 되는 방법을
아실 것이오.“
그 후 열 달이 되자 왼쪽 그릇에 담은 피는 곧 남자가 되었고,
오른편 그릇에 담은 피는 곧 여자가 되었다. 이로 인하여 이름을
‘구담‘이라 하였고, 혹 ‘감자’라 부르기도 하였다.
그 후 사자협왕 사자협왕 때에 이르러 태자를 넷 두었다.
첫째 태자는 이름이
정반淨飯이었고, 두 번째 태자는 白飯이며, 세 번째 태자는 斛飯,
네 번째 태자는 甘露飯이라 이름 지었다.
인도의 족성族姓에는 네 계급이 있다.
찰제리족刹帝利族은 왕의 종족이며,
바라문족婆羅門族은 청정한 수행을 닦는 종족이고,
폐사족吠奢族은 장사꾼의 종족이며,
수다라족戍陀羅族은 백정의 종족이다.
앞의 두 종족은 귀한 종성이고, 뒤의 두 종족은 천한 종성이었다.
이는 시대에 따라 숭상되었으며, 부처님은 그 가운데서 석가釋迦 집안에
태어나셨다.
부처님은 강하고 굳센 왕가의 종족으로 태어나서 위엄을 떨치게 되었다.
정반왕의 먼 조상이 나라를 버리고 수행하여 구담이라는 성씨를 받았기 때문에
대대로 이 집안은 존귀한 종족이 된 것이다. - 석씨원류응화사적: 법보원
석씨원류응화사적釋氏原流應化事蹟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팔상도에 구담귀성 장면이 나오지만 정작 팔상록에는 이러한 내용이 없어
우에댄기고 했는데 석씨원류응화사적에 출현하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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