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외지역/경상도

을미년 가을에 떠난 울산 답사 -5

참땅 2015. 9. 9. 11:13

운흥사터

 

 

운흥사터는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을 해 2003년에 보고서를 냈다.

그에 따르면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절을 창건하였으며 그에 따른 암자가 13,

스님이 1000여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 후, 고려 말에 지공(指空)선사가 중창했으나 임진왜란에 불탔다.

다시 광해군 6년인 1614년에 대휘(大希)선사가 중창하였으며

1864년에 간행된 대동지지에도 그 이름이 보인다.

그러나 무슨 연유로 사라졌는지는 알 길이 없다.

 

紅流洞天 이 아이고 紅流洞門 같심미다...

 

雲興洞天 - 1721년 울산도호부사 홍상빈이 각자했다고 합니다. 

 

다른 절터와는 달리 수습된 유구들에게서 석탑이나 석불

그리고 철불을 찾아 볼 수 없는 것이 특이하다.

물론 작은 불상편들은 발견 되었지만 여느 다른 절집에 모신 정도의

불상이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다만 다른 곳보다 물을 담을 수 있는

석조가 많아 넷이나 된다. 또 한지를 만들 때 닥을 잘게 부술 때 사용하던

딱돌그리고 16종에 달하는 목판이 673장이나 남아 있으며 절 앞으로는

닥을 불릴 수 있는 맑은 계류가 흘렀다. 이것은 매우 주목해야 할 일이다.

산골의 사찰에서 목판을 새기고 또 그것을 찍을 수 있는 종이를

직접 만들었다는 것은 이 절의 성격을 가늠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불법을 널리 알릴 수 있었으니 폐문하고 선정에 들어 불법을 닦는

절집과는 달리 봐야 할 것이다.

 

딱돌

 

목판은 지금 통도사에 보관되어 있으며 절터에는 부도와 석조

그리고 딱돌이나 석등과 같은 석물들이 흩어져 있다.

비록 눈에 보이는 것은 화려한 것이 없을 지언 정,

눈에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조차 보려고 애쓰는 것이

절터 답사의 백미라면 운흥사는 더할 나위 없이 알맞은 곳이다.

 

 

 

片手自明 雍正十年 壬子 二月 日 造成白月 都監大玄堂務 明遠

편수 자명이 옹정 십년 임자 2월일에 보름동안 조성하고

도감 대현은 업무에 힘쓰면서 영원히 밝힘

옹정은 청대 세종의 연호로 1723~1735년 까지 제위했다.

곧 옹정 10년은 1733년경이다.

이를 조선시대로 미루어 보면 영조 즉위년이 172411월 이므로

이 수석(지)통이 영조 9년경에 제작 완성 된 것으로 되어 있다.

 

 

 

片手金汝往 戊申年 三月 日 水石桶 都監 ? ? 淸風法雲視 (?)

영조 8년인 17323월에 만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석조를 만든 년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석조의 명문에는 조성연대가 명확히 영조 9(1724)이라 적혀 있는데

수조 자체는 신라시대 것이라 추정한다는 학계의 주장이니 좀 혼돈스럽다.

 

 

원원사지 서부도를 염두에 두고 운흥사지 석조물을 바라본다면

누구라도 부도 지대석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운흥사지 석조물은 부도 지대석인 것이다.

원원사지 서부도에서는 3단의 지대석을 계단상으로 조성해 놓았지만

운흥사지 큰 부도의 지대석은 현재 상태로는 2단으로 조성되어있다.

 

 

 

장방형으로 결구된 1단의 대석 위에 홈을 새겨 2단의 면석을 결구했는데

한쪽에는 우주를 표현하였지만 한쪽은 생략되어 있고

가운데에 탱주와 보조탱주를 구회해 놓았다.

 

 

맨 위의 석재는 유실되었는데 아마도 넓은 판석을

갑석처럼 올려놓았을 가능성이 많다.

이는 통도사 대웅전 가구식 기단을 부도 기단부로

그대로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해서 전체적으로 이러한 기단부는 3단으로 조성된 지대석으로

보아도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운흥사 큰 부도의 가장 큰 특징은 화려하고 유려한 화문을

사면에 선명하게 새겨 놓은데 있다.

 

 

 

 

이러한 화문은 전면좌우에는 연꽃이 화려하게 핀 모습을 나타내었고

중앙 두면에는 보상화문을 당초화문으로 연결하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해 놓았다.

이는 통도사 대웅전 소맷돌 측면 문양을 그대로 모방한 것으로 보인다.

 

원원사지서부도

 

이 부도 지대석은 위의 원원사지 서부도와 친연관계가 있는 걸로 보아

상대석 하대석은 물론이고 탑신부와 상륜부도 화려한 장식으로

장엄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이 지대석 위에 원원사지 서부도에 표현된 기단부(하대석과 상대석)

탑신부, 상륜부를 접목시키면 이 부도의 전체 모습을 충분히

유추해 볼 수 잇을 것이다.

또한 운흥사지 큰 부도 지대석의 후행 양식은 가까이에 있는

청송사지 부도군에서도 볼 수 있다.                                        (참고 자료: 달넘새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