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미년 유월 둘째주 잔상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가 전국을 휩쓸고 한창 기승을 부리고 있는 이때
드디어 불행하게도 포항까지 확산되었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어딜 가나
그 이야기뿐. 쫌 재미난 얘기, 좀 흥미로운 소식은 도무지 응대가 없다.
예정대로라면 성주/고령 방면으로 1박 2일 옛님 답사가 진행되어야겠지만 MERS
여파로 무기연기 되었다는 소식은 한여름 더위만큼이나 의욕상실이다.
하여 안내 봉사활동으로 씁쓰레한 맘을 달래보고자 보경사로 향하였다.
6월 정기회의 시 지난 사월초파일 시행 못한 공양미 시주도 함께 하고자 하였기에
집사람 장정필과 오랜만에 길을 나섰다.
산천초목은 한층 더 짙푸르고 깊게 그 빛깔을 나날이 달리하고 있지만 언제 어느 날
뜬끔없이 우리에게 그 속살을 여지없이 드러낼 날을 생각해보니 지 까짓게,
하면서도 우리네 인생 길어봐야 백년지사, 松羅의 지천인 소나무만 해도 최소
수 십 년에서 수 백 년은 묵었으리라는 걸 헤아려보면 우리 인간은 하찮은 미물에
불과하리라. 웬 진상... 한층 더 치열하게 부대끼며 살아보자는 얘기이다.
이 산하, 이 자연, 이 지구에는 얼마나 숱한 생물이 존재하였으며 또 그렇게 살다가
또 그렇게 滅하였을까?
적어도 이 지구상에서 내가 아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은
무심히 달관하는 人生을 살지 않았으면 하는 작은 바램을 가져보는 아침이다.
보경사 적광전 수미단 앞쪽에 가져온 공양미를 올리고 삼배를 한 후 일어서니
박재환 전회장이 마당을 들어선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박전회장과 어줍잖은 커피가게에서 커피를 마시며 잠시 담소를 나누고 일어섰다.
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제발 커피자판기(?)보다 못한 지금의 가건물 커피집을
옆쪽으로 이동하여 사찰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절이라는 동선에서 눈쌀을 찌푸리게
하는 어줍잖은 건축물은 하루빨리 없애주었으면 좋겠다.
입구 들목에서부터 시작된 주차료 문제, 사찰로 가는 길에는 언제나 시끌벅적인
사하촌, 매표소에서 또 불거지는 문화재관람료, 잠시 시원한 나무그늘에서 머리를
식히는 듯 하더니 무심코 흘러가는 등산길 동선은 자칫 보경사를 지나치다 에고,
방향을 뒤틀어야 경내로 진입할 수 있게끔 만들어진 이 동선을 재고해봤으면 한다.
이 날 강원도 원주에서 포항 사는 친구 만나러 왔다가 보경사가 보고 싶어 들렀다는
임00라는 건축사와 진지한 토론을 거의 2시간 넘게 가졌었다.
멀리 가야함에도 불구하고 보경사와 접한 생각을 가감없이 토해내준 임건축사에게
만나게 되어 진심으로 반가웠다는 얘기를 전해주고 싶다.
범종루 앞 감나무 밑에는 설 떨어진 새끼 감들로 천지빼까리다.
보살님 이건 매일 닦나요?
아입니다. 한 달에 한번 하니더.
근데, 렌지에 더까 가 닦는교?
아이시더, 촛농 녹쿨라꼬 안 하는교.
아~, 맞네. 간단 한건 데. 그걸 왜 몰랐지.
사진 찍아도 되능교?
하이고 내 얼굴 나오모 안 되니데이~
얼굴 안 나오고 손 만 찍으께요.
이 이상한 광경에 지나가는 등산객이 또 거든다.
놋그릇 저래 뜨겁게 해가 닦는 갑다.
아이라니더, 촛물 녹힐라꼬 칸다니더.
이건 내 간섭이다.
보살님 혼자서 이걸 다 하능교?
하이고 혼자 이걸 언제 다 하능교, 쪼매 있으모 보살님들 오니더.
하지만 오래도록 다른 보살님들은 오지 않았고,
한참토록 보살님 혼자서 일을 하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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