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면 서촌리 고인돌 탐사와 고라니의 사투
노곡마을에서 만난 엄청 큰 개- 덕인선생이 놀라워 하며 좋아 하지만,
그러나 나는 무서워 가까이 가질 못햇다.
기온이 내려가며 추울 것이라는 일기예보를 접하고 구룡포주상절리 청소를
잘 할 수 있을까하고 내심 은근히 걱정을 했었는데, 다행히 구룡포의 날씨는
겨울답지 않게 햇살이 좋아 따뜻한 편이었다. 바람찬 해풍도 불지 않아
청소하기에 좋은 날씨라 회원들 모두가 활기찬 모습이었다.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은 청소를 깔끔하게 마치고 이른 점심으로 모리국수를
먹기로 하였지만 금방 뜨끈한 오뎅국을 먹은지라 다 먹을 수 있을까하였는데
다행히도 별로 남기지도 않고 먹을 수 있었다.
회원들과 헤어지고 원래의 계획대로 덕인선생님과 장기 서촌리로 향하였다.
‘아름다운 포항, 유서깊은 마을’에 서촌리 고인돌은 3기로서 그중 마을 입구
도로변에 묻힌 고인돌에 바위구멍이 있다는 구절을 보고 며칠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지라 구룡포주상절리 청소를 마치고 탐사를 가게 된 것이다.
동악산에서 동으로 뻗은 산등성이에 장기읍성이 있고 이 성내의 동편은 동부라하여
읍내리 지역에 속하고, 서편은 서부라 하여 서촌리에 속해 있다.
동악산 북쪽 망해산 남동쪽으로 내려오는 푸지산 기슭에 노곡이 있고 노곡과 서부
사이에 명촌이 있다. 산으로 둘러싸여 농토가 적으며 서부, 명촌, 노곡의 세 마을이
서촌리를 이루는데, 행정구역상 서부와 명촌은 1리, 노곡은 2리이다.
오늘 탐사할 곳은 서촌2리 노곡이다.
마을 주변에 갈대밭이 많았다하여 노곡(蘆谷)이라고도 하지만, 해가 돋으면 가장
먼저 비추는 곳이라 하여 기일(起日)이라고도 한다.
1. 당수나무
노곡리로 진입하여 50여m 지점 회관 앞 공터 주차장 바로 건너에 200 여년의
나이를 묵은 당수나무가 있으며 종류는 느티나무이다.
매년 12월 초순에 길일을 잡아 동제를 지내고 있으며 할배, 할매 2위를 모시는데,
동제 시 허드렛밥 네 그릇을 당수나무 주위에 뿌리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당수나무 앞 제단에는 시멘트로 조성된 방형의 긴 사각형 제단이 놓여 있었으며
그리 오래되어 보이지 않은 금줄이 당수나무에 걸쳐져 있었다.
바로 옆 지척에 정자도 세워져 있어, 여름철 개울가 정자에서 여름을 나기에도
좋아 보였다.
2. 1호 고인돌
마을 안길로 계속 주변을 살피며 들어가 보지만 고인돌이 아니라 같은 것도 보이질
않았다. 책의 참고대로 우선 윗기일못을 찾기로 하고 마을 끝을 지나 농로로 접어들었
다. 다행히 시멘트로 포장은 되어 있었으나 농로가 워낙 협소하여 조심조심
운전하려니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그러다 허물어진 집터를 막 지나칠
무렵 눈 앞 논바닥에 시커먼 물체가 나타나는데 바로 고인돌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뛰어 올라 살펴보니 책의 설명대로 ‘서촌 1호 고인돌’이었다.
길이는 약 3m, 폭은 약 2m 정도이며 높이는 논바닥에 묻혀 있어 측정이 곤란하지
만 드러난 부분을 볼 때 약 1m 정도 되어 보였다. 동쪽 면은 바위를 절단 한 듯
보이기도 하며 바위구멍은 보이질 않았다.
2호 고인돌은 동남방향으로 200m 지점 밭 위에 있다고 하는데, 동남방향은 산이라
뭔가 잘못 되었다고 판단하여 계속 윗기일못으로 방향을 잡았다.
그러나 좁은 농로 길은 점점 협소해지며 계곡 깊숙이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계속 가야하나 차를 돌려야 하나 하고 머뭇거리는데 갑자기 뒤에서 갤로퍼가 바짝
따라 붙었다. 겨우 한편으로 길을 터주니 갤로퍼는 거침없이 질주를 한다.
계속 가도 되겠다는 판단을 하고 나아가니 저 앞쪽에 못 둑이 보이는데 앞서 가던
갤로퍼 차량이 가다말다 머뭇거리는 게 보였다. 길이 없나 하며 불안한 마음으로
조심스레 못 둑 위에 올라서니 허~걱 이게 뭔 일...
고라니 한 마리가 물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얇게 깔린 얼음을 헤치며 뭍으로
나오기 위해 발버둥치는 모습이 여간 안타까운 게 아니었다. 애쓰런 모습에 119를
불러야 하나 하고 망설이는데 덕인선생님이 거의 나온 것 같다며 조금만 더 지켜
보자하며 서로를 위안하고 있는 우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고라니가 얼음을 깨며 나아간 흔적이 'ㄱ'자형으로 보이고 있다.
다행히 물은 깊지 않은지 목 위로는 물이 차지 않았고, 몇 걸음 헐떡헐떡 하고는
그 자리에서 다시 숨 고르기를 한 후 다시 얼음을 깨며 겨우 몇 발자국 내딛고,
수 십 차례 내딛고 쉬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마땅하게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며 애초로이 쳐다보기만 해야 하는 내가 차라리 밉기도 하였다.
그래 마음으로나마 용기를 내라고 응원을 보내자 하며 지켜보고 있으려니 서서히
둑 가장자리로 나오더니 몸을 한번 푸르륵 털고는 건너 산 쪽으로 내닫고 있었다.
크지 않은 몸집으로 보아 중간새끼 정도인 고라니는 얼마나 놀랐을까, 그리고 얼마나
추웠을까 안타까웠지만 여간 다행인 것은 자기 힘으로 난관을 극복하고 이겨냈
다는 것에 정말 삶의 고귀함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 것 같았다.
그 고라니는 앞으로 잘 살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나 또한 기분이 좋아졌다.
3. 2호 고인돌
귀한 시간을 준 고라니 얘기로 되돌아 나오는 길은 유쾌하였지만 고인돌을 포기해야
하나 하고 아쉬움을 토로 하는데 마을 앞 저편에 시커무리한 바위가 보였다.
고인돌이다.
밭 가장자리로 돌아 가보니 4~5개의 지석을 갖춘 제법 큰 고인돌이었다.
길이는 3m가 넘어 보였고, 폭은 약 2.5m, 높이는 1.5m 정도 되었다.
상부에는 바위구멍이 여러 개 보여 덕인선생님이 구멍에 쌓인 흙을 걷어내자
총 17개의 바위구멍이 있었으며 제법 큰 바위구멍은 지름 10cm, 깊이 8cm 정도
되었다. 1호 고인돌에서 동남방향이 아니라 거의 남방향이며, 자세한 것은 실측을
해봐야겠지만 거리도 약 400m 정도로 해야 맞을 것 같았다.
덕인선생님에게 다른 고인돌의 위치를 동네사람들에게 물어보러 보내고 고인돌의
상부 바위구멍에 특별함을 살폈으나 그다지 특별함은 찾을 수 없었다.
큰 바위구멍은 지름 10cm, 깊이 8cm 정도 되었다.
4. 제당
2호 고인돌에서 지척에 시멘트 구조가 보여 다가가니 동제당이었다.
사각으로 시멘트 담장을 두르고 방형의 제단을 조성한 제단에는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당수나무가 이 나무인가, 저 나무인가 보았지만 눈에 확 띄는 나무는 없었
다. 그저 그런 나무가 주위에 산재 해 있었다.
5. 3호 고인돌
노곡에는 7개의 큰 바윗돌이 있어 칠성바우라 하였는데, 그동안 길 만들며,
집 건축하며 이래저래 다 없어져 버리고 최근까지 3개가 있다가 얼마 전 한 집에서
집 지으며 그 돌을 깨버렸는데, 그 뒤로 그 집에 우환이 계속 겹쳤다는 전설 같은
얘기를 동네사람들은 누구나 알고 있고 또 그렇게 믿고 있었다.
문제의 그 고인돌은 바로 서촌리 입구 마을 도로 옆 바닥에 묻혀 있었다.
우리가 이 길을 지나가면서도 못 봤던 것이다.
시멘트 바닥에 온 몸통을 숨기고 거의 머리만 빼꼼이 낸 채 자기는 여기 이렇게
엄연히 있노라고 말을 하는 듯하여 속이 상하기도 하였다.
얼마나 답답할까 하고 생각하니 무덤을 함부로 훼손하는 터부의 죄를 이 집은 고스란
히 받았을 것으로 여겨졌다.
머리 위로 드러난 바위구멍은 5~6개이며 약간 떨어져 4개가 서로 모여 군을 이룬
것을 합하여 총 10개 정도의 바위구멍이 보였다.
지척에는 기름 먹은 검은 판자로 벽을 만든 오래된 방앗간도 있어 흥미로웠다.
우리는 이길을 지나갔어도 보질 못했으니...
장기면 서촌리의 고인돌 3기와 바위구멍 그리고 뜻하지 않게 만난 고라니.
겨울에 떠난 짧고도 기나 긴 오늘의 여정은 오후를 넘긴 4시경에야 마쳤다.
- 덕인(김은실)선생님과 함께 한 고인돌 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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