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상북도는 경주 왕룡사원 '목조아미타불좌상'을 국보로, 경주 동천동 '도시유적'을 사적으로
각각 지정토록 문화재청에 신청키로 했습니다.
경주 왕룡사원 목조아미타불좌상은 높이 77센티미터 크기의 조선시대 불상 양식으로,
불상 조성 기록과 불경 등이 잘 보존돼 조선 초기 불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습니다"
- 2008년 4월 23일 포항MBC 보도내용
법당 현판에 '왕장군 용왕전'이라는 특이한 이름을 내걸고 주로 무속인들의 출입이 잦은
왕룡사원에서 1400년대 목조아미타불상이 있다는 것은 일대 충격이었습니다.
목조문무인상이 이미 민속자료로 등재 되어있는데 새삼스럽게 지금에서야
국보급 아미타불상이 나타났다는 것은, 그것도 문화재 관한한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유명인사들이 넘쳐나는 경주에서도 아무도 모른다는데 말입니다.
의아한 심정으로 김환대님과 경주 국당리 왕룡사원을 찾았습니다.
새로이 신축한 법당은 아직 단청을 하지 않아서인지 멀리서도 나무냄새가 진동을 하는 듯합니다.
법당안에서 사람 소리가 두런두런 나며 신발로 보아 여닐곱명은 족히 되어보이기에
상황을 봐가며 들어가기로 하고 일단 왕장군용왕전에 들렀습니다.
여기 원장(주지)님은 경순왕과 김유신 장군이라고 하지만 인과 관계가 분명한 『일월향지』의 다음 기록은
제법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경순왕이 고려 태조 왕건에게 나라를 바치고 고려의 도읍지 송도로 이거한 후 신라의 유민들이
경순왕의 납국합병을 반대하고 신라의 독립을 도모하고자 경주에서 가까운 북형산성에 농성하여
고려와 일전을 불사하며 수천 명이 운집하였다.
왕건으로선 삼한을 통합한 여세로 공격하면 북형산성의 신라군쯤이야 추풍낙엽으로
만들 수도 있었으나 농성군을 무마하여 회유함으로써 자진 해산하게 하였다.
세월이 흘러 경순왕이 송도에서 서거한 후 신라의 유민들은 그를 추모하여 북형산 성터에
사당을 건립하고 그의 아들 김충 태자와 함께 모시고 형산성황사(兄山城隍祀)라 하였다.
당초에는 경순왕의 유덕을 추모하는 사당으로 춘추향제를 올려 그 넋을 위로하였는데,
고려 말부터 기복신앙처로 전락하였다. 본래 사당은 토막식 건물로 조선말엽까지 있었으나
연일의 모 문중에서 그 터에 분묘를 설치하면서 철거하자 성터 바로 밑에 있는 왕룡사에서
약 100년 전에 경내로 옮겨 복원한 것이라 한다.
왕장군용왕사의 목조문무인상(김부와 김충으로 추정)
즉 왕룡사 김부대왕 부자 목상은 원래 경순왕이 죽은 뒤 신라의 유민들이 북형산성 터에 그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형산성황사란 사당에 봉안한 것인데, 조선말 어지러운 상황을 틈타 어느 문중에서 이를 철거하고 분묘를 설치하자
성터 밑에 위치한 왕룡사에서 경내로 옮겨 지금에 이른 것이라 합니다.
그런데 위의 기록에서 보듯 사당은 고려말에 이미 기복신앙처로 전락해 있었답니다.
다시 말해 무속신앙으로 변질돼 있었다는 얘기인 것입니다.
어저면 북형산 성터에는 김부대왕을 모시는 사당과 사찰이 높낮이를 달리하며 함께 공존하지 않았을까?
최근 포항의 민속학 향토사학자님에게 들은 이야기 한 토막.
옛날 어느 한 사대부가 이 곳에 올라 잡귀 섬기는 풍습을 뿌리뽑겠다며 목상을 뽑아 벼랑에 버렸답니다.
그 사대부는 산을 내려가다가 급사했으며, 그 후 오랜 세월이 흘러 심한 가뭄에 형산강 바닥이 드러났을 때
이 목상이 형산강 강바닥에서 발견되었는데, 전혀 썩지 않았다 합니다.
신상을 해친 사람이 변을 당한다든지 오랫동안 강바닥에 묻혀 있던 신상이 전혀 손상을 입지 않았다는
이 이야기는 김부대왕신의 영험담이 아닐까요?
마냥 하릴없이 기회만 엿볼 수 없어 법당문을 열고서 들어가니 보살님과 처사님들은
사월초파일 행사 준비로 바쁜 일손을 분주하게 움직이고 계셨습니다.
높직한 단 위를 올려다보니 좌대가 네개나 있고 중앙에 두 분의 부처님이 앉아 계시고
좌, 우 좌대는 비어 있길래 나이 드신 보살님께 여쭤보니 목조아미타불상은 지금
금고 안에 계신다고 합니다.
에~ 부처님이 금고 안에...
법당 양 벽면에다 진열대를 만들고 거기에다 새로이 조성한 파르라니 깎은 머리의
지장보살님을 빼곡히 채울 양 사다리 위에 올라 선 처사님도 한마디 하신다.
'스님 계실때 오마 볼 수 있는데... 미리 전화하고 오이소'
불러주는 전화번호를 휴대폰에 저장하려는데
'사월초파일날 오모 불 수 있는데...' 하신다.
실측조사하여 국보 신청까지 한 상태이니 함부로 공개 할 수도 없으려니...
생각하면서도 의아심이 드는건 어쩔 수 없네요.
참, 생각할수록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무는 그 하루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경주 > 불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주 남산의 마애불(삼릉~용장편) (0) | 2012.04.30 |
---|---|
경주 왕룡사원 목조아미타불좌상- 겨우 사진 (0) | 2011.09.05 |
왕룡사원 목조문무인상 (0) | 2009.09.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