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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미의 한국 블러그 - 손님 접대에서 느끼는 정

참땅 2015. 5. 28. 08:44

 

[히로미의 한국 블로그]                                        동아일보 2015528일자

손님 접대에서 느끼는 정

 

  올해 초, 양력설 연휴를 이용해 포항에 갔다 왔다. 친구가 그곳에 살고 있어 방문하는 김에 관광도 하고 오기로 했다. 고속버스로는 시간이 상당히 걸리므로 KTX로 신경주까지 가서 거기에서 버스를 타고 약 1시간. 생각보다 가까웠다. 도착하자마자 호텔에 짐을 풀고는 포항에서 유명하다는 수산시장으로 향했다.

 

  여행할 때 관광명소에도 가지만, 그 지역의 시장도 꼭 들러 보려 한다. 시장에 가면 그곳에서 생활의 냄새를 맡을 수 있어 금세 그 땅에 융화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시장에는 다양한 종류의 새우와 조개, 본 적도 없는 생선 등이 풍성하게 진열돼 있었다. 원기 왕성한 아주머니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와 활기에 넘쳤다. 그중에서도 눈을 뗄 수 없었던 것이 일본에서는 수족관에서나 볼 수 있는, 사람 키를 훨씬 뛰어넘는 거대한 크기의 개복치였다. 포항에서 개복치가 잡힌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지만, 도대체 어떻게 저걸 먹는다는 말인가. 그건 그렇다 치고, 어딘가 모르게 멍해 보이는 개복치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도저히 그 맛이 밍밍할 것만 같아 식욕이 돋지는 않았다.

 

  밤에는 친구 부부와 생선을 메인으로 하는 한정식 집에 갔다. 낮에 신선한 생선을 보고 온 후라 맛있는 생선을 먹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저절로 가슴이 뛰었다. 말 그대로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의 요리가 차려졌고, 생선은 역시나 기대했던 만큼 맛있었다. 마지막에 밥까지 먹고 났을 때는 이미 더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배가 불렀으나 친구 남편이 꼭 맛보게 해주고 싶은 전골이 있다고 해서 2차로 생낙지전골 가게로 갔다.

 

  오는 날이 장날이라고, 항상 그 가게에 있다는 남자 주먹 크기의 커다란 낙지가 그날따라 없어서 친구는 불평하면서도 약간 작은 낙지를 주문했다. 끓어오르는 전골 국물에 낙지를 산 채로 넣어 먹는 것인데 핑크빛이 돌 때쯤의 낙지는 부드럽고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배어 나와 좀 전까지 배가 불러 괴로웠음에도 먹기를 멈출 수 없었다. ‘그 큰 낙지가 더 맛있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면 조금은 아쉬웠지만, 그것은 훗날의 즐거움으로 남겨 놓는 것도 좋을 듯. 일본에서는 바닷가에서 하는 가게 등에 가면 잔혹 구이라는 요리가 있어서 새우나 전복 등을 산 채로 석쇠 불에 올려 구워 먹는다. 몸을 비비 꼬면서 구워지는 전복을 보고 있자면 슬쩍 마음이 아프기도 하지만, 그것을 입에 넣고 나면 그런 생각은 잊어버릴 정도로 맛있다. 인간은 식욕을 채우기 위한 잔혹한 동물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기도 하다.

 

  시곗바늘이 11시를 가리켜 슬슬 돌아가야지 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고래회를 먹으러 가자고 한다. ‘우와더 이상은 무리!’라고 속으로 생각했으나 오늘 밤의 손님인 우리는 친구에게 모든 것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고래 전문점에서는 일본에서도 먹어본 적 없는 부위의 회가 큰 접시에 보기 좋게 담겨 나왔다. 소주를 마시면서 조금씩 집어 먹기는 했으나 그래도 많은 양을 남기고 말았다.

 

  친구 부부 덕에 맛있는 포항의 해산물을 만끽할 수 있어 감사해하는 동시에 이것이 한국식 손님 접대라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됐다. 오랜만에 만난다거나 처음으로 함께 식사할 때는 대부분 이런 환대를 받는다. 일본인끼리는 이런 모습이 연출되지 않는다. 1차로는 어딘가에서 식사를 하고 2차로 와인이나 위스키를 마시는 바에 간다. 만약 3차를 가게 된다면 비슷한 종류의 바에 가거나 노래방에 갈 것이다. 그리고 남자들이라면 마지막으로 일본식 라면으로 끝맺는다는 패턴이 많다. 한국에서 처음에 2차로 치킨과 맥주를 파는 가게로 안내받았을 때는 막 먹은 참인데 또 먹는 건가?!’ 라며 놀랐었다. 한 접시의 양도 엄청나게 많아서 한국인의 위가 얼마나 큰지 감탄했을 정도다.

 

  이러한 예를 보더라도 한국인의 인간관계가 얼마나 따뜻한지 느낄 수 있다. 상대방이 100% 이상 만족해 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대접해 준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대접에 익숙지 않았던 때는 그것이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상대방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고, 반대로 나도 같은 식으로 상대방을 대접해야 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 부담이 됐다. 한국인 입장에서는 왜 그런 것까지 생각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지만. 일본인은 인간관계가 담백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거리를 유지하는 관계가 마음이 편할지도 모른다.

 

  아직도 가보지 못한 곳이 많다. 이곳에서 사는 동안 여러 지방에 가보고 싶다. 그리고 그 지역의 시장에 가서 그곳 사람들과 접하며 그 맛을 즐기고 싶다.

 

가와니시 히로미 씨는 한국에서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일본 주부다. 한국에서 산 지도 4년째에 접어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