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화

옥련사 - 어변성룡

참땅 2013. 6. 5. 08:48

옥련사 - 어변성룡 

 

 

미루다 미룬 의성답사를 사월초파일 연휴 중 하루를 할애하기로

마음을 먹고 있는데 때마침 풍경님의 연락으로 동행을 하게 되었다.

연휴기간이라 느긋하게 우선 의성 최초의 가람으로 추정하고 있는

의성 북부지역 안평면의 옥련사를 첫 기점으로 잡았다.

어제가 사월초파일이라 대개의 가람들이 한가할 것으로 생각되어

길을 나섰으나 정작 그렇게 여유로운 만용을 부리기에도 썩 내키지는 않지만

그러나 어쩌랴 이미 마음은 옥련사 앞 마당에 서 있음을... 

 

 

일월산 낙맥의 봉두산 남편에 위치한 옥련사는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옥련사란 이름은 가람 앞에 앉은 옥련지 연꽃이 구슬같이 아름답게 피어난 데서

옥련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 좁지 않은 극락전 마당에는 길숨한 석탑이 휘어질 듯 위태롭게

버티고 있는데, 전 주지인 백월선사가 이건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의 상태로는 도무지 몇 층으로 봐야할지 감이 떠오르질 않는다.

1층 옥개석과 23층 옥개석이 다르고 또한 4층 옥개석에 얹혀진 석재는

전혀 석탑의 부재가 아니니 말이다.

탱주에 사람 이름 같기도 한 글자가 새겨져 있다.

 

 

 

古佛殿 - 옛부처님을 모시는 전각

기가 막히다. 어려운 한자도 아니고 난해한 글도 아니다.

고불 신도들은 미륵이라 부르고, 학자들은 비로자나불이라 부른단다.

그래서 고불전이라 하였다는 비구니스님은 처음엔 커피,

두 번째는 감자떡과 음료수, 그리고 가람을 나설 때는 비타500을 주신다.

나무아미타불 스님 고맙습니다.

팔각지대석 위에 복엽의 연꽃을 두껍게 새기고 꽃닢을 아래로 향한 복련 하대석,

꽃닢을 겹겹이 위로 향한 앙련의 상대석에는 하부 꽃닢마다 보상화까지 넣었다.

 

 

그 위에서 무언가 갈망하는 불상의 두 눈은 패어져 있고,

수인은 두 손을 합장한 듯한 비로자나불의 지권인이지만,

두 손을 작게 묘사하여 흡사 애기 손 같다.

가슴께에 희미한 자가 보인다고 하자 옆에 계시던 비구니스님이

자세히 보면 옷주름선도 보인다고 하는데, 암만 봐도 내 눈에는 보이질 않는다.

얼마 전 급하게 고불전을 짓느라 전각이 쫌 그렇다는 스님의 말씀에

아담하니 소박하고 처마아래를 예쁘게 꾸민 듯 신경 쓴 흔적이 보여

보기 좋다고 하였더니 그런거는 밸꺼 아니라고 하신다.

등 뒤를 삼각형으로 마감한 불상은 처음부터 광배를 하지 않은 듯 보이고,

분명치 않은 육계나발, 머리카락을 옆으로 자른 중학생 소녀 같은 단발머리형,

양쪽으로 움푹 파인 두 눈과 흔적만 남은 코

그리고 벌린 듯 만 듯한 입도 일자형으로 파여 있다.

 

 

스님과 감자떡으로 한담을 나누고 극락전으로 들어갔다.

아미타구품인의 수인을 취한 목조 아미타여래는 조선 후기 불상이란다.

중간계주와 정상계주를 갖추고 고개를 약간 앞으로 숙이고

근엄하고 단정하게 앉아 계시는데 보존상태가 좋아

불과 얼마 전에 조성한 듯 보인다.

37년 전 쯤에 불상 개금 시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 복장유물이 나와

당시 모교수가 인수하여 현재 동국대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극락전 전각 내부 불화를 살펴보다 좌우측 들보에 그려진 어룡(?)

보고는 실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직은 잉어 형상이지만 눈앞의 아가미수염으로 여의주를 취하는 순간

룡으로 화하여 승천할 기세인 두 마리의 어룡 그림은

새로이 단청을 하려고 유명한 단청전문가를 불러 견적을 뽑게 했는데,

극락전 천정과 들보그림을 처음 보는 그림이라 하여 덧칠하기 어렵다며

훗날로 보류하였다는 기막힌 전설 같은 이야기도 전해진다.

듣도 보도 못한 어룡그림은 들보가 휘어진 그대로 꿈틀대는

룡을 형상한 듯 나무자체를 다듬지 않고 자연목 그 상태로 올렸다.

 

 

한 마리는 황금색으로 우아한 장식을 취한 여성스러움의 조신한 잉어요,

또 한 마리는 게걸스러운 이빨을 드러내고 속겉이 시커먼 장어 같은 잉어다.

시커먼 잉어는 왼쪽 눈을 쑥 뽑아 꼬리께로 옮겨 뒤를 보는 재주도 지녔다.

아직 룡다움의 형상을 조금도 가지지 못한 채 오직 여의주에 오매불망인

이 잉어들은 어느 세월에 魚變成龍할거나...

 

 

지금은 조그마한 터이지만 원래의 가람터는 동서남북 암자를 위시하여

많은 건축물이 있었으나 어느 때 없어지고 팔려나가고 하여

그 터와 누각, 요사채 등을 많이 잃어버렸단다.

 

스님의 배려와 관심을 뒤로하고 운람사로 향하는 내내

썩 마음이 편치 않음은 비단 옥련사의 현실이 안타까워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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