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외지역/경상도

불영사 명부전 외벽 벽화- 금돼지로 변한 지장보살

참땅 2011. 8. 22. 11:47

금돼지로 변한 보계산 지장보살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 혹은 ‘소금 팔러 가니 이슬비 내린다’ 등 재수 옴

붙을 때 사용하는 말이다. 하지만 절대 재수 없는 속담이 아니다.

석대암 창건설화의 주인공 이순석과 지장보살의 사연이 담겨있으니 말이다.


불교영험설화집에 따르면 신라시대 보개산 기슭(석대암 자리)에 큰 배나무가

있었다. 어느 날 까마귀가 배나무에 앉아 울고 있었다.

나무 밑에는 독사 한마리가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까마귀가 날아가는

바람에 배나무가 독사 머리 위로 뚝 떨어졌다. 날벼락을 맞은 독사는 화가 머리끝까지

나서 독 오른 머리를 쭉 내밀더니 사력을 다해 독을 뿜었다.

까마귀는 그 독을 맞아 죽었고, 독사도 힘이 빠져 숨을 거뒀다.

그야말로 오해가 부른 참극이었다. 그때부터가 문제였다.


까마귀와 뱀은 죽어서도 원한을 풀지 않았다. 뱀은 죽어서 멧돼지가 됐고,

까마귀는 암꿩으로 환생했다.

어느 날 멧돼지가 된 뱀이 먹이를 찾다가 암꿩이 된 까마귀를 보고는 큰 돌을

힘껏 굴렸다. 암꿩은 비명횡사했으며, 멧돼지는 속이 다 후련했다.

마침 어느 사냥꾼이 지나다가 죽은 꿩을 발견하고는 단숨에 집으로 가져가 부인과

함께 (죽은 꿩을) 요리해 먹었다. 사냥꾼은 그 후 옥동자를 순산했다.


까마귀-꿩의 업보를 타고 태어난 옥동자는 훗날 훌륭한 사냥꾼이 되었다.

그러면서 전생에 자신을 죽인 멧돼지(뱀)만 사냥하러 다녔다. 어느 날 보개산으로

사냥을 간 사냥꾼은 금빛 찬란한 돼지를 발견했다. 사냥꾼은 힘껏 활시위를 당겼다.

왼쪽 어깨에 화살이 박힌 멧돼지는 환희봉을 향해 치달았다. 사냥꾼은 피를 흘리며

달아나는 금멧돼지를 쫓아갔다. 그런데 멧돼지는 간데없고, 지장보살 석상만이 우물

몸을 담근 채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오비이락’ 속담의 전말이다.

바로 지장보살이 까마귀와 뱀이 인과를 반복하는 것을 막기 위해 스스로 멧돼지로

화현해서 화살을 맞은 것이다. 지장보살의 희생으로 쓸데없이 죽고 죽이는 악연의

관계가 끝난 것이다. 이런 깊은 사연이 있는데, 오비이락이라는 좋지 않은 뜻으로만

희화화되고 있으니 거북할 따름이다.


♣ 사냥꾼 이순석과 지장보살의 영험

강원도 철원군 보개 산에 있는 석대암(石臺庵)은 생지장(生地藏)의 도량이라 하여

기도인이 그칠 새가 없었다.

그런데 이 지장보살을 생지장 즉 산지장이라고 부르게 된 것은 그 연유가 있었다.

보개산은 금강산의 보배뚜껑이라 하여 보개산이라고 불렀으며 석대암 됫봉을 환희봉

또는 대소라치 라고 부르는데 큰 봉우리, 큰 고개라는 뜻이다.

그 대소라치 너머 수백호나 되는 집에 화전민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화전만 가지고 살 수가 없었으므로 짐승을 잡아 팔기도 하고 먹기도

하였다. 그러나 금강산의 뚜껑이라는 이 성산에 불보살이 피 흘리는 것을 보고만

계실리가 만무하였다.

 

 

대소라치 넘어선 어느 동리에 사냥꾼의 우두머리인 이순석이란 사람이 살았다.

하루는 친구 한 사람과 같이 활과 창을 메고 대소라치 고개를 넘어가서 짐승을

찾고 있었다.

「여보게 순석이, 오늘도 또 허탕인가 보이. 요사이는 웬일인지 통 잡히지를 않는단

   말이야.」

「재수가 있으면 잡는 것이고 없으면 못 잡는 거지. 꼭 잡기만을 기대할 수야 있나?」

「그야 그렇지만 그래도 하루 한두 마리 꼴은 잡아야 처자식을 굵기지 않고 살아갈

   것이 아닌가?」

「쉬! 저것 보게. 저게 호랑이인가 ? 돼지인가? 송아지만한 것이 걸어가고 있네, 금빛

   이 찬란한 것을 보면 호랑이도 같고, 머리와 꼬리를 보면 돼지도 같으니, 도무지

   알 수가 없네 그려.」

순석의 말이었다. 바위 밑에서 풀로 가리고 엎드려 보고 있던 순석이 친구는,

「돼지야. 금돼지란 말이야. 놓치지 말고 쏘게.」하였다.

순석이는 몸을 감추고 활을 재서 한대 힘차게 쏘았다.

 

 

화살을 맞은 돼지는 피를 흘리며 환희봉을 향하여 도망치고 있었다.

두 사람은 헐레벌떡하며 몰아가 보았으나 금돼지는 온데 간데가 없고 한 지장보살

석상이 우물 속에 들어 있는데 머리는 물 밖에 나와 있었고 몸은 물속에 잠겨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보살석상 왼편 어께에는 그들이 쏜 화살이 박혀 있었다.

두 사람은 깜짝 놀라 그 화살을 빼고 모셔내려고 하였으나, 조그마한 석상이 무게가

천근처럼 무거워서 도무지 들어낼 수가 없었다.

「돌부처님이시여! 대성인께서 이미 저희들이 우매함을 불쌍히 여기사, 제도하여

   주시려고 이러한 신통을 나타내신 것으로 믿겠나이다. 명일 다시 와서 뵈옵겠사오니

   이 샘가에 나와 계셔 주시옵소서. 그리 하오면 저희들도 당장에 출가 하여 지성껏

   모시고 수도 생활을 하겠나이다.」

두 사람은 이렇게 빈 후에 집으로 돌아갔다.

그 이튿날에 다시 와서 본즉 석상이 과연 그 옆 돌 반석에 그대로 않아계신 것이 아닌가? 이것을 본 그들은 곧 스스로 삭발을 하고 그의 무리들 300여명을 동원하여 절을 세워

그 상을 모셨으니 이것이 곧 석대암이다.

 

 

이 지장보살상은 높이가 3자이며 왼쪽 손으로는 구슬을 높이 받들고 있으며,

빛깔은 청, 흑색의 어깨 밑에는 구멍이 뚫려 있다.

이것이 곧 순석의 화살에 맞은 자리였다 어느 때에 이 지장을 모신 법당에서

부전(불공하는 스님) 스님이 잘못하여, 불을 켜는 옥등잔을 땅에 떨어뜨려서

절반이 쫙 갈라지고 말았다.

부전스님이 송구하여 부엌에서 근심을 하고 있자니까,

「여봐라, 부전대사야. 내가 옥 등잔을 붙여 놓았으니 걱정 말고 불이나 켜라.」

하는 소리가 연연하게 들렀다.

깜짝 놀라 들어가 본 즉 옥 등잔이 감쪽같이 붙여져 있었다.

까맣게 붙인 자국은 있었으나 기름이새는 법이 없었다.

또 어느 때에 밤중에 도둑놈이 들어와서 불기, 향로, 촛대 기타 전곡을 훔쳐 가지고

달아났다는 것이 밤새도록 걸어갔는데도 기껏 절 앞에 있는 미나리꽝에서 뺑뺑

돌고 있었던 일이 있었다.

그러하여 절에서는 알아서 도둑놈을 잡아 장물을 몽땅 찾고 오히려 수고했다고

돈냥이나 주어서 보낸 일이 있었다.

그런데 이 지장보살은 도금불사를 해도 오래 가지 못하고 항상 벗겨져 언제든지

청록색으로 보존되고 있는 것이다.


* 현재 이 지장보살상은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상노1리 72번지에 위치한 심원사에

  모셔져 있단다.                                                 -  다음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