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부시도록 좋은날은 좋은 님과 함께 도의 경지를 통달한다는 고달사터에 가고 싶었다.
폐사터의 온전한 기운을 느낄 수 있으려면 주위의 잡념에서 벗어 날 수 있는 혼자가 되어
한껏 상상 속으로 머물러야 하건만 그러나 어쩌랴,
이내 삭신은 지금 여기에서 속세의 부대낌속에 젖어버려 현세의 즐거운 고통을 이미 맛보아 버린 것을...
물리칠 수도 되돌릴 수도 없음에 오히려 다행이라는 믿음으로 자신 스스로 체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전설속의 ‘고달’을 그리워하고 있으랴 만은 부모처자식이 굶어 죽는 줄도 모르고
한낱 바윗덩이를 오늘에 우러러보는 화려한 예술품으로 조각한 님의 혼에 삼가 경의를 바치고 싶다.
그 화려함과 장중한 예술품은 반드시 그에 따른 누구의 희생을 강요한다.
떠밀려 희생된 님은 믿음과 의지로 원대한 일을 해야 한다는 자각을 했을까?
부모처자식 먹여 살려야 하는 일에 내 몸 바쳐야 하는 이 땅의 가장으로서
어쩔 수 없이 망치와 정으로 돌덩이를 매만져하는 자신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신륵사에서 고달사터로 가는 길은 한참동안이나 조그만 강과 함께 달리기를 하고 있다.
아침 일찍 나서 잠이 부족한데다 햇볕이 내리쬐어 내 조그만 눈조차 부시어 온다.
주차장 안쪽으로 느티나무 바로 옆에다 주차를 하고 내려서니 시야가 확 트인다.
한창 발굴 중이다.
비온 뒤라 그런지 내딛는 발밑의 감촉이 딱딱하지 않고, 푸석이는 먼지가 드날리지 않아 좋건만
고인 물웅덩이를 피하느라, 덮어 놓은 천막 밑이 허공인지 발을 허방다리 딛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최근에 발굴된 수조는 천막으로 덮여져 있어 조금 젖히고 열어 보니
네 귀퉁이마다 곡면으로 다듬어져 있으며 안쪽에는 봉긋 살을 붙이고
바깥쪽에는 위에서 아래로 길게 모서리 홈으로 장식을 하였다.
크기는 불국사 마당의 수조와 어금버금한 것 같다.
높직한 토축 위에 떡하니 버티고 있는 방형의 석불대좌는 그 크기도 크려니와 보존상태가
거의 완벽하였다.
대개 폐사터의 석조물은 보존상태가 깨끗하지 못하여 나름 그만의 정감을 느낄 수 있는데...
이 대좌는 거의 완벽하여 절집 내부에서 보호 한 것처럼 깨끗하다.
여기에 모셔졌던 철불은 지금 어디로 헤매고 있을라나 - 대좌는 그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우와! 더 이상의 감탄이 불필요하다.
보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수식어가 불필요한데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이수 상부에 보주를 꽂았던 구멍이 있고 양쪽에는 무엇을 끼웠던 듯 사각의 홈이 파여져 있다.
지금의 이 상태라도 엄청난 규모인데 또 여기에 무엇을 장식하였을까?
'혜목산 고달선원 국사 원종대사지비' 라고 쓰인 이수의 전액 밑에
조각된 도깨비는 부라린 눈으로 히쭉 웃으며 이빨을 드러낸 채 발톱을 세우고 있다.
‘니들 여까지 뭐덜라꼬 왔냐?’ 한다.
이수 상부에 확연히 드러나는 또 다른 장식을 하였던 흔적.
도대체 얼마나 많은 공력을 들였던 것일까?
워낙 장대한 원조대사 부도비의 귀부에 짓눌려 바닥돌까지 통돌인 이 귀부는
잔뜩 주눅이 들어 몸체가 바닥에 바짝 움츠려 있다.
이제 그만 어깨 펴고 고개를 들었으면 좋으련만 이미 머리는 깨져 달아나 버리고 없다.
새로 생긴 절집의 최근 조성된 부처님 앞에 흡사 배례석인양 석등 중대석이
나머지 부재들과 헤어진 채 있다.
불룩 배가 나온 고복형의 중대석에는 여러 개의 옆줄 띠를 새기고 8개의 꽃으로 장식을 하였다.
한창 발굴 중인 고달사터에서 나머지 부재들도 찾아 원래의 모습으로 제자리를 찾았으면 좋으련만...
절집 뒤편 언덕에 너와로 만든 산신각이 있고 산신각 표지판은 여느 찻집 안내판 같이 예쁘다.
또 이 절집 좌측 계곡 바로 옆에다 ‘다향루’라는 차 마시는 너와로 만든 정자도 있다.
토축 아래를 뚫어 굴로 만든 창고도 있고,
곳곳에 쌓아 놓은 돌탑을 보는 재미도 제법 솔솔하게 한다.
부도로 가는 길에는 온통 빠알갛게 영글은 산수유 열매가 천지배까리다.
마을 바로 옆에 산수유가 이렇게 지천으로 널려 있다면 버얼써 없어 졌겠으나
욕심 없는 절집에선 내 묵을 양만큼만 따고 나머지는 그냥 내버려 뒀나보다.
산새들의 노랫가락에 맞춰 오르막 길을 조금 오르니 고달사터 부도가 나온다.
입이 딱 벌어졌다.
와! 우에 일로(이렇노)?
헤불쭉이 웃는 귀부,
여의주를 다투는 용,
악귀를 밟고 생령좌위에 당당하게 서있는 사천왕상,
고운 천의를 나부끼며 하늘을 날고 있는 비천상,
그러나 무엇보다도 내 눈을 사로잡은 것은 문비 안에 새겨진 자물통 위의 자그마한 두개의 용머리였다.
주로 자물통에는 도깨비 조각이었는데 여기서는 용으로 조각을 한점이 이채롭다.
신륵사에도 곳곳에 용이 노닐더니 여기서도 구직구직이 용을 새겨 놓았다.
이리저리 한참이나 보았는데도 자꾸자꾸 보고 잡고, 자꾸자꾸 만져도 보고 잡다.
너무 심한 걸 봐 뺐나...
원종대사 부도는 성에 안찬다.
다른 곳에 있었다면 꽤 괜찮은 대접을 받았을 부도인데 말이다.
귀부는 머리를 길게 빼어 서쪽 - 고달사터 부도를 향하고 있다.
그 모습을 보고 ‘어쩌면 좌우로 거느린 용과 바람을 피우고 있는지도...’
- 이건 광해대왕님의 깊은(?) 안목.
중대석 뒤편에 거북등은 또 색다른 맛배기로 다가온다.
내려오는 길섶 도랑, 다리 옆에는 빨랫터가 있는데 거기에도 몇 점의 석물이 보인다.
들머리에 펼쳐진 느티나무는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너른 가지로 오가는 사람들에게
쉼터를 제공해주고 있다.
잠시 앉아 쉴 틈을 주지 않는 광해대왕은 또 길을 재촉한다 - 시간에 쫓겨, 쫓겨...
이제 흥법사터로 힘찬 시동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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