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사리구시와 싸리나무 이야기
어떤 연유인지는 잘 알 수 없으나 전국의 수많은 사찰에는
건물의 기둥을 비롯하여 구시(구유)와 목불(木佛)에 이르기까지
큰 나무유물이 싸리나무로 만들어 졌다는 속설이 전해오고 있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승보종찰 송광사의 성보문화재인 쌍향수,
능견난사(能見難思)와 함께 싸리나무로 만들어 졌다는
크고 작은 2개의 비사리구시는 중생들의 눈길을 끈다.
설명을 보면 <1724년 전라도 남원 송동면 세진골에 있던 싸리나무가
태풍으로 쓰러진 것을 가공하여 만든 것으로 조선영조이후 국재를 모실 때
손님을 위해 밥을 저장했던 통이라 함(약 7가마 분량의 밥 저장)>이라고 쓰여져 있다.
큰 구시는 얼핏 보아도 지름이 거의 2 m나 되고 나이도 150살이 넘는 거대한 나무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싸리나무는 콩과, 싸리속이라는 무리에 들어가는
나무로서 아무리 크게 자라도 높이 2-3m, 굵기 2-3cm에 불과한 작은 나무일 따름이다.
그렇다면 수 백 년 혹은 수 천 년 전에는 싸리나무가 아름드리로 자란 것은 아닌가
의심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오늘 날 우리가 알고 있는 식물학적인 상식으로는 전혀 가능하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다. 또 전해지고 있는 사서(史書)나 농서의 기록에도
옛날 싸리나무가 아름드리로 자랐다는 기록은 없다.
잠깐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삼국사기 고구려 미천왕 31년(330)조에는
<후조의 석륵에게 사신을 보내 싸리나무 화살을 주었다.>하여 화살로 사용하였다.
열전 온달조에 평강공주가 온달의 집으로 바로 찾아갔다가
온달의 어머니로부터 퇴짜를 맞고 <공주는 혼자 돌아와 사립문 밖에서 자고 이튿날 아침에 다시 들어가서 모자에게 온달에게 시집을 오겠다는 자세한 사정 이야기를 하였다>하여 싸리 울타리로 쓰였다.
조선왕조실록에도 태조 원년(1392) 총서에 <태조는 활을 쏠 때 큰 깍지와 우는 살을 사용하기 좋아하였는데 싸리나무로써 살대를 만들었다>고 하고,
연산 원년(1495) 2월1일 조에는 한치형 등이 아뢰기를
<발인할 때에, 도성에서 전곶(箭串)까지는 사재감에서 싸리 횃불을 장만하여 각사의 노비 5백 명에게 들리고, 전관부터 능소까지는 경기·충청·강원도에서 싸리 횃불을 준비하고 군인을 차출하여 들리게 하여야 할 것이다>하여
횃불의 재료로 궁중에서 널리 이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문헌에서 본 것처럼 싸리나무는 삼국시대나 조선왕조 때도
우리가 알고 있는 지금의 싸리나무와 쓰임새나 크기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
따라서 옛날 싸리나무라 하더라도 기둥이나 구시를 만들만큼
크게 자랐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다면 송광사 비사리구시를 비롯하여 싸리나무로 알려진 나무는
오늘날의 무슨 나무인가?
이 의문을 풀어보기 위하여 현미경으로 세포모양을 조사해 보았다.
그 결과 싸리나무가 아니라 실제로는 흔히 괴목(槐木)이라 불리는 느티나무이었다.
느티나무는 조상들이 가장 즐겨 사용하던 나무로서 아름다운 무늬와
단단하고 잘 썩지 않으면서 가공이 쉬운 최상의 재질을 가진 나무이다.
천마총의 목관, 화엄사 및 통도사 대웅전, 해인사 수다라장과 법보전의 기둥을 비롯하여 조선시대의 가구까지 수많은 목질유물이 느티나무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다.
실제로는 느티나무가 왜 싸리나무로 알려지게 되었을까?
확실한 연유는 알 수 없으나 추정으로 느티나무의 재질이
사리함 등 불구(佛具)의 재료로 매우 적합하여
절에서도 흔히 사용한 것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즉 처음에 사리함을 만드는데 사용하였던 느티나무를
사리(舍利)나무로 부르다가 발음이 비슷한 싸리나무가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따라서 송광사 비사리구시 설명서에서
<...싸리나무가 태풍으로 쓰러진 것...>를 만든 나무는
<...느티나무가 태풍에 쓰러진 것...>으로 고쳐 쓰는 것이
식물학적으로는 맞는 이야기이다.
* 비사리란? 나무의 껍질을 벗긴 싸리나무 (다음에서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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