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법사 부도탑
경북문화재자료 제97호
높이 2M 정도로 부서진 채 일부만 남아 있던 것을 복원하였다.
1층 몸돌 각면에 사각형의 문비를 새기고 파내어 불상을 안치하는
감실을 만들고 그 안에 좌불상을 돋을새김 하였다.
지붕돌은 4단 층급받침이다.
원광법사는 속성이 박씨 또는 설씨로 80세 혹은 99세를 살았다고 한다.
589년에 중국의 진나라로 유학을 하여 전도와 교화로 이름을 떨쳤기에
중국의 당속고승전에 전기가 실릴 정도로 유명하였다.
11년간의 유학 후 600년에 귀국하니 일반 백성뿐만 아니라 진평왕도
면대해서 공경하고 성인처럼 높이 받들었다 한다.
귀국 후 주로 가실사(청도 운문사 근처의 절)에서 기거하다가 귀산, 추항에게
화랑 세속오계를 가르치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는데 주역을 담당한 화랑들에게
그들의 정신적, 도덕적 기반을 마련해 주었고 생활지침을 제공했던 것이다.
그리고 608년 왕의 요청에 의해 수나라에 걸사표를 지을 정도로 불교사상뿐만
아니라 문장에도 능하였다. 말년에는 왕이 손수 의복과 약물을 마련해 주었고
637년 신라 진평왕 52년에 황룡사에서 임종하자 왕이 장례도구를 내리어 임금의
장례와 같이 하였으며 명활산에 장사지내고 삼기산 아래 금곡사에 부도를 세웠다고
하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전한다. 금곡사는 임진왜란때 소실되었고 부도의 일부가
파괴되었던 것을 최근에 복원하엿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