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천은사 극락보전에는 수달이 산다...
수달은 동면에 들어가지 않는 탓에 얼음 속으로 잠수해서 먹이사냥에 나선다.
우리야 차디찬 수온을 생각만 해도 아찔하지만 수달은 추위방지용 특수 모피로
무장해서 끄떡없다. 수달의 모피는 길고 거친 외부 털과 짧고 부드럽고 조밀한
내부 털의 이중구조로 되어 있어, 잠수할 때에도 외부 털이 안쪽의 털이 젖지 않게
막아주고, 조밀한 털 사이의 공기도 외부로 빠져나가지 않도록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고 한다.
배가 땅바닥에 닿을 정도로 다리가 짧은 탓에 땅 위에서는 영 움직임이 굼뜨고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물갈퀴를 가지고 있어 물속에서는 능수능란한 사냥꾼
본능을 발휘한다.
수달은 먹이사슬의 최상위에 자리하며 잉어, 붕어 등의 물고기와 게, 개구리 등을
잡아먹으며 왕성한 식욕을 자랑하지만, 소화율은 고작 40퍼센트 밖에 안 되어 수달
의 배설물을 보면 그날 식사메뉴가 어땠는지 알 수 있을 정도라 한다.
장난끼 많은 수달의 물고기 잡는 모습은 옛사람들의 눈요기 거리이기도 했나 보다.
우리조상들은 24절기의 특징을 자연의 변화에 빗대어 표현했다.
그런데 이 절기들 중 우수를 두고 흔히 동장군이 물러나기 시작해 대동강 얼음도
풀려나가는 시기라고 한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동식물의 행동양상이 달라지는 바로 우수를 풀어내는 대목이
있다. 수달이 물고기를 잡아다 늘어놓고, 기러기가 북으로 날아가고, 초목에 싹이
트기 시작하는 시기라는 것이다.
아무리 이중의 털로 중무장을 했다고는 하나, 먹이가 적고 추운 팍팍한 겨울나기 끝에 봄기운이 돌고 얼음이 풀리기 시작하니, 살얼음 사이로 자세를 고르다 한 순
간 잠수해서 낚아 챈 물고기를 바위에 늘어놓고 앉은 수달의 모습에서 우수의 조짐들을 집어낸 옛사람들의 입담이 너무도 해학적이기만 하다.
물고기를 늘어놓고 발 모아 조아리는 듯 한 수달의 모습이 꼭 제사 지내는 것 같이
보여 옛사람들은 수달을 달제어(獺祭魚)라고 불렀다. 하지만 잡은 물고기가 살았는가 살펴보는 것이라고도 하며, 장난을 좋아해서 전리품을 보면서 즐기는 행동이라
고도 하니, ‘효’는 그저 인간들의 생각이 투영된 것 일뿐이다.
오히려 수달은 모성이 강하기로 알려져 있다.
사는 곳은 달라도 동서양 수달의 타고난 천성은 비슷한지, 이러한 수달의 모성은
삼유국사 5권에 혜통스님의 일화에 잘 드러나 있다.
출가하기 전 시냇가에서 수달 한 마리를 잡은 스님은 그것을 잡아먹은 후 뼈를
뜰 옆에 던져두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나가보니 그 뼈는 간 데 없고 피만
방울 방울 한 길로 이어져 있었다. 이상히 여겨 그 길을 따라가 보니 앙상한 수달
뼈가 새끼수달을 안고 있는 굴을 발견했다고 한다. 충격을 받은 스님은 그 길로
출가하여 수행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한다.
모성과는 다른 버전이지만 수달에 대한 옛이야기는 지리산 천은사에서도 만날 수
있다. 천은사는 임진왜란 이후 재건과정에서 샘 곁에서 구렁이를 잡아 죽인 후
계속되는 화마에 시달리게 된다.
마침 명필 원교 이광사가 지나다가 딱한 사정을 듣고 ‘지리산 천은사’라는 현판을
물 흐르듯 써내려 가 스님에게 걸도록 하였더니 더 이상 화재가 없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 이야기를 뒷받침하기라도 하듯 더 이상 화재가 없기를 바라는 애타는
마음은 극락보전 안의 조각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아미타불단 양 옆을 떠받치는 기둥에는 각각 화기를 막는 해태와 물에 사는 수달
조각이 양각되어 사찰을 지켜주고 있는 것이다.
지리산 천은사 극락보전의 수달상
지리산 천은사 극락보전 기둥의 해태상
여러가지 아름다운 덕목을 수달에게 부여한 인간이지만, 모피를 탐하여 많은
숫자의 수달이 그 손에 희생당했다. 전 세계적으로 수달 모피는 질이 좋아 비싼
값에 거래되었다고 하는데, 조선왕조실록에는 수달의 모피가 고려인삼과 함께
중국과의 최대 교역품이라고 전하고 있다.
(구레역사문화연구회, 옛님의 숨결을 찾아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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