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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무골 할머니

참땅 2015. 1. 28. 10:27

오무골 할머니                              - 이상준

(이 글은 이상준님이 월간 문학세계에 투고해서 신인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나무 아래 할머니가 앉아계시고, 돌봐주러 온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고 계십니다. 

 

포항시 오천읍 항사리, 속칭 안항사 마을에서 계천상류를 따라 시간 반 가량 걸으면

오리온 목장 터가는 길목에 오무골이란 계곡이 있다.

오무골 할머니는 (차도 못 다니는) 삼수갑산 같은 그 곳에서 혼자 살고 있다.

골 안에는 곡식 농사를 지을만한 반반한 논밭뙈기가 없지만 오막살이 주변에

손수 일군 자그마한 텃밭에 푸성귀와 콩, 감자 등을 심고 밭두렁에다가는 호박을

심어 그곳에서 거두어들인 것만으로 자급해서 한해, 한해 배곯지 않고 산다고 했다.

축담에는 알이 자잘한 감자를 담은 낡은 비료 포대랑 갓 딴 듯한 누르스름한 호박을

층층으로 쌓아두었으며 비쩍 말라비틀어진 옥수수도 처마 밑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할머니의 주된 양식이 호박이라는 것은 잡수시다 남은 호박죽을 보고 알았다.

쌀은 한 톨도 보이지 않고 콩만 듬성듬성 섞여있을 뿐 이었다.

일흔이 가까운 연세로 삼시세끼 그렇게 잡수시는데도 걸음걸이나 몸놀림이 가벼울 뿐

아니라 허리도 꼬부라지지 않고 볼 살이 통통해 보이기까지 하니 우리들 바깥세상

사람들이 감히 헤아릴 수 없는 내면(內面)의 어떤 힘이 작용한 게 아닐 런지.

무척 신기했다.

할머니의 오막살이집은 옛날 화전민들이 살다가 버리고 간 초가다.

등산객들이 오며가며 갈대로 듬성듬성 이엉을 덮어주었지만, 요즘에는 이엉 덮는 일을

도와줄 등산객이 없었든지 오래된 지붕 군데군데에다 반창고처럼 비닐로 다대를

대놓았다. 방바닥에는 장판대신 마대자루를 잘라서 깔았고, 입은 옷 역시 꿰맨 거로

보아 사시절 단벌로 지내는 게 분명했다. 텃밭 귀퉁이에는 똥 단지를 묻어 변소를

만들었지만 애석하게도 벽도 지붕도 없는 노천 그대로였다. 비 오고 눈 나릴 때는

어쩔 런지..

작년가을, 오리온 목장 터로 등산 가다가 우연히 그 오막살이를 발견했었다.

사람이 산다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할, 길도 없는 깊은 산 속에서 그 움막 같은 할머니의

집을 발견했을 때는 꼭 귀신에게 홀린 기분이었다. 그러나 가까이 가서 오막살이의

실체를 확인한 순간, 눈물부터 났다. 할머니의 집에서 찾아 본 문명의 찌꺼기라곤

손떼 묻은 트랜지스터라디오 한 대와, 유행 지난 벽시계가 전부였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육십년 대 까마득한 옛날로 되돌아간 기분이었다.

그 후 나는 산을 좋아하는 몇몇 사람들과 함께 쌀을 한 되씩 준비하여 한 번 더

할머니를 찾아갔다. 쌀을 본 할머니는 반색을 하면서도 남에게 폐를 끼친다는 생각이

들었든지 한사코 사양했지만 우리들은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는 곧 겨울이 왔고 그곳에 가고 싶어도 마음대로 갈 수조차 없었다.

산불 때문에 입산이 금지된 몇 개월 동안 과연 할머니는 뭘 먹고살까.

혹독한 이번 겨울 추위에 혹 얼어 돌아가시지는 않았을까. 겨우내 걱정이었다.

올봄,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오무골 할머니 집에 들렀다.

생각과는 달리 아주 건강한 모습이었다. 작년 늦가을에 입었던 바로 그 잿빛 바지와

녹색 저고리를 입고 있었지만 그때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 환하게 웃었다.

주소도 주민등록도 없는 것 같았다. 잠자다가 죽으면 그게 바로 자신의 무덤이라던

할머니였다. 그래서 잠잘 때는 항상 좌향(坐向)에 맞게 누워 잠을 청한다고 했다.

축담 옆에 쌓아 둔 잔돌들은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등산객이 방안에 죽어있는 시신을

발견하면 덮어주었으면 해서 준비해둔 거란다, 덮어줄 사람이 행여 힘들어 할까봐

아예 시간 나는 대로 잔돌들을 주어다가 그곳에 쌓아두었다고 했다.

코끝이 시려오는 걸 참느라고 애를 썼다

 

얼마 전 우연한 기회에 역시 산에 사는 후동 시인의 시집 산여동(89년 도서출판 여래)

펼쳐보다가 오무골 할머니의 대한 노래가 실려 있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책이 나온 지 십수 년째 되었으니) 내가 할머니라고 지칭해서 부르는데 반해

시인은 아지매라고 부르고 있었다. 옮겨놓는다.

 

 

산 속의 성녀(聖女)  

 

오미골 아지매

산 속에 산답니다.

첩첩산중

노루하고 산새하고 농사짓고 산답니다.

쉰 살, 귀뿌리에

서리 내려도

뺨만은 발개, 철쭉입니다.

세속 훌쩍 떠난 사연

앙가슴 묻힌 자죽, 있을법한데

노루한테 물어봐도

산새한테 물어봐도

모른답니다.

맑디맑은 개울이 눈빛에 담겨

그늘이 없어서 모른답니다.

 

* 지금은 할머니가 건강이 안 좋아 요양원에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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