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지역 비지정 문화재모니터링3
기계지역 비지정 문화재모니터링3
기북에서 올랐던 험한 길을 잡지 않고 계전-기계방향으로 길을 잡는데
저만치에 고스러운 돌이 보이기에 보니 돌확 같은 게 깨져 있습니다.
가져가고 싶은데 가져 가봤자 놔 둘데가 없어 그냥 내버려 둡니다.
효자 손선호비각으로 가다가 뜻밖에도 길가에 우뚝 선 고인돌을 만났습니다.
심인당 축대 시작점 길 바로 옆에 서 있는 고인돌은 제법 늠름합니다.
여기서 좀 더 내려가니 경작지 논과 과수원 안에 3기가 있습니다.
비지정 문화재를 찾아 나섰다 고인돌을 이렇게 만나니 수확이 좋습니다.
2기의 고인돌은 지척에 있어 바로 눈에 띄지만 1기는 저 짝에 과수원과
논 둑 사이에 걸쳐 외로이 서 있습니다.
마침 초등학교 3~4학년쯤 되는 학생 둘이 괭이와 잠자리채를 들고 가기에
‘너거 머하노?’ 했더니 깨구리 잡으러 간다네요.
허, 참내 여 아~들은 쪼맨할 때부터 깨구리 자~묵나...
손선호비각은 계전리 새터마을 삼락정 앞 그랑 건너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둥지에서 이제 막 날개를 펴고 비상하려는 듯한 비각은 참으로 아담하고
정갈하여 입구 좌우 철쭉이 필 때쯤이면 정말 아름다울 것 같습니다.
비석 정면에는 ‘孝子月城孫公紀蹟碑’라는 글이 세로로 음각되어 있으며,
비석의 전체 크기는 폭 78㎝, 높이 187㎝ 정도, 팔작지붕에 겹처마입니다.
추운 겨울에 부모님을 위하여 물고기를 잡아 효행한 손선호를 기리는 비입니다.
월성 손씨의 정자로 새터마을 서편에 위치하며, 뒤쪽으로는 작은 저수지가 있으며,
건물은 정면4칸 측면2칸에 남동향으로, 팔작지붕에 홑처마이며 가구는 3량가인데
문이 잠겨 있어 내부를 볼 수가 없으매 아쉬움만 더 할뿐입니다.
계속 기계방향으로 길을 잡아 가니 정자동마을 길 바로 옆으로 학계정이 보입니다.
일전에 왔을 때는 문이 잠겨 있어 들어가 보질 못했는데 오늘은 문이 개방되어
있어 마음 놓고 내부로 들어 가보기로 했습니다.
정면3칸 측면2칸 남향 팔작지붕에 홑처마이며, 가구는 3량가이고,
중앙과 향좌측은 방으로 그리고 향우측은 마루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정면에는 鶴溪亭(학계정), 향좌측 방의 앞에는 必慕齋(필모재), 대청에는 열화헌,
현판이 걸려 있고 향우측 대청에는 현판이 2개 걸려 있습니다.
이곳은 경주 최씨의 정자로 최국현이 유학을 강론하던 장소라고 합니다.
건물 바로 앞 팔각석재는 아마 기둥초석이거나 활주초석 같은데 지금은 정료대로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뒤편 기둥 초석에서 아주 요상한 석재를 만났습니다.
도무지 용도를 알 수 없는 요상한 석재인데, 초석의 용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제 방향을 집으로 돌려 기계 내단리로 향하였습니다.
기계 초입에 위치한 내단리 고인돌은 지나갈 적마다 보지만 아직 가까이에서
본 적이 없기에 오늘은 우야던동 사진으로 담고자 마음을 먹었습니다.
주유소 옆 묘역에 이짝 저짝으로 산재한 고인돌은 4기가 모여 있고
1기는 길 옆 과수원 안에 뚝 떨어져 외로이 서 있는데 팻말이 없습니다.
길옆에 차량을 세우고 경고등을 켜 놓은 채 금방 사진 찍고 올려는데
갑자기 왜 그리 차량은 많이 다니는지 여~엉 무안스럽게 합니다.
자료에는 이 보다 훨씬 더 많은 고인돌이 있다지만 길가에 세워 놓은
차량이 신경에 거슬려 다음에 더 보기로 하고 오늘은 접기로 하였습니다.
오전 11시가 넘어서 시작한 기계지역 비지정 문화재 모니터링은 날도 춥고
더구나 혼자라는 서글픔 같은 게 밀려와 오후 3시쯤에 마쳤습니다.
그러나 의외의 수확이 있어 마음 한편 뿌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