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인비구의 동종
사인 비구의 동종
모두 다 '동(銅)으로 만든 종(鐘)'인 동종입니다.
이 '동종'들의 공통점은 바로 한 사람이 만들었다는 것에 그 가치를 인정받아
지금 현재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 사인비구주성동종(思印比丘鑄成銅鍾)이란?
'사인(思印)'이라는 승명(僧名)을 가진 비구(比丘: 남자 스님)가,
주성(鑄成: 녹인 쇠붙이를 거푸집에 부어 물건을 만듦, 주조鑄造와 같은 뜻)한,
동종(銅鐘)이라는 뜻입니다.
사인은 18세기 조선시대 숙종 때 경기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스님이자
장인입니다.
특히, 삼국시대 때 신라의 사원 세습으로 내려오던 '승장(僧匠)'의 맥을 이은
마지막 장인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기도 합니다.
사인은 전통적인 신라 종의 제조기법을 재현하고, 거기에 더불어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만들었습니다. 이에 불교의 공예미를 드러낸 명장으로
평가받고 있지요.
사인에 의하여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동종들이 '사인 비구 주성 동종'입니다.
한 사람에 의하여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은 기록이 남아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 각 동종들이 만들어진 순서대로 특징을 살펴봅니다.
1. 보물 제11-1호, 포항 보경사서운암동종(浦項 寶鏡寺瑞雲庵銅鍾)
경상북도 포항시 보경사에 있는 포항보경사서운암동종은 사인비구가 만든
종 중에서 가장 앞선 것으로, 비록 크기는 가장 작지만 '사인비구'의 초기
제작기법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포항보경사서운암동종은 다른 사인비구주성동종과 달리, 종의 꼭대기에
용뉴 대신 종을 매달기 위한 둥근 고리가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어깨 부분에는 인물상이 새겨진 40개의 연꽃잎을 세워 두어 넓은 띠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 띠 아래로는 일반적으로 9개의 돌기가 있는 것에 반해 5개의 돌기를
가지고 있는 사각형 모양의 유곽이 4곳에 있고 또한, 종의 표면에도 일반적인
다른 종들이 보살상이나 위패(位牌) 모양을 새긴 것과 달리, 부처님의 말씀인
'진언'을 문양화 하고 있어 독특합니다.
지금은 보경사 경내 전각 안에 따로 보관되어 있으며 일반인들은 볼 수가 없습니다.
2. 보물 제11-2호, 문경 김룡사동종(聞慶 金龍寺銅鍾)
문경 김룡사동종은 지금 현재는 경상북도 김천시 직지사(直指寺)에 있습니다.
홍천 수타사동종에서 보았던 당좌와 같은 모양의 당좌가 보입니다.
사인비구가 만든 동종 중 이와 같은 당좌의 모습을 띄고 있는 것은 수타사동종과
김룡사동종 둘 뿐입니다.
이 둘은 같은 해에 만들어졌지만, 문경 김룡사동종이 먼저 만들어졌습니다.
3. 보물 제11-3호, 홍천 수타사동종(洪川壽陀寺銅鍾)
강원도 홍천군의 수타사에 있는 홍천수타사동종은 사인비구가 만든 종 가운데,
완숙미와 독창성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특히, 당좌(종이나 금고 등을 칠 때 때리는 자리를 정해 장식하여 놓은 곳)를
독특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이와 같은 모습은 김룡사동종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4. 보물 제11-4호, 안성 청룡사동종(安城靑龍寺銅鍾)
경기도 안성시의 청룡사(靑龍寺)에 있는 안성청룡사동종은 사인비구만의
독특한 제작양식에서 벗어나 신라종의 전통 양식을 따른 종입니다.
생동감 넘치듯 역동적인 용뉴와 함께, 한국종의 특징이자 소리의 울림을
도와준다는 대나무 모양의 음통에 역동적인 모습의 용이 새겨져 있으며,
또한 종의 어깨와 아래 입구 부분에는 연꽃과 덩굴을 새긴 넓은 띠를 두르고
있습니다.
어깨 띠 아래에는 사각형 모양의 대가 있고 그 사이사이에는 보살상을
세웠는데 전체적으로 사실적 표현수법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5. 보물 제11-5호, 서울 화계사동종(서울華溪寺銅鍾)
서울특별시 강북구의 화계사(華溪寺)에 있는 서울화계사동종의 가장 큰 특징은,
종을 매다는 고리 부분에 두 마리의 용을 조각하였다는 점입니다.
이를 쌍룡뉴(雙龍鈕)라고 합니다.
사인비구가 만든 종들 가운데 이와 같은 모습을 한 첫 번째 작품이라는 점에서,
사인비구가 종을 주조하는 데에 있어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서울화계사동종은 종의 어깨 부분과 입구 부분에 넓은 띠를 두르고 있으며,
몸통에는 사각형의 유곽과 위패 모양을 균형 있게 배치하여 안정감을 주고
있으며, 사실성과 화사함이 돋보이는 수작일 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화사하게
꾸며져 있어 아름답기도 하거니와, 중요한 학술적 가치도 갖고 있습니다.
승려가 공명첩(空名帖: 관직을 임명하는 문서이되, 받는 자의 이름을 기재하지
않은 채 발급하는 백지문서)을 가지게 되었다는 당시의 사회상을 알려주는 명문이
남아 있어, 중요한 사료의 할도 하고 있습니다. 보존상태도 아주 양호하다고 합니다.
6. 보물 제11-6호, 양산 통도사동종(梁山通度寺銅鍾)
경상남도 양산시의 통도사는 법보 해인사, 승보 송광사와 함께 '불보(佛寶)'로,
삼보사찰(三寶寺刹)의 하나입니다. 이곳에도 역시 사인비구의 손길이 미쳤습니다.
특히, 양산통도사동종은 유일하게 종의 표면에 팔괘 문양을 새긴 것이 특징입니다.
종이 크기 때문에 형태미가 뛰어나고, 하대(下帶: 범종의 표면 밑부분에 띠처럼
돌린 무늬)에는 회화성이 넘쳐납니다.
또한, 일반적으로 종 몸통에 있는 사각형의 유곽 안에는 9개의 돌기를 새기지만,
양산통도사동종은 중앙에 단 한 개의 돌기만 새겨 둔 것으로 사인비구의
독창성이 돋보이는 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7. 보물 제11-7호, 의왕 청계사동종(義王淸溪寺銅鍾)
경기도 의왕시의 청계사에 있는 의왕청계사동종은 높이는 115㎝, 입지름은 71㎝,
그리고 무게가 700근이나 나가는 큰 종입니다.
이 종 역시 화계사동종, 강화동종과 마찬가지로 쌍룡뉴가 있으며,
종의 허리에는 중국에서 영향을 받은 듯한 두 줄의 굵은 가로선이 둘러져 있어,
사인비구가 '중국종'의 양식을 받아들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두 줄의 가로선은 강화동종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8. 보물 제11-8호, 강화동종(江華銅鍾)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있는 강화역사관으로 가면 이 강화동종을 볼 수 있습니다.
강화동종은 다른 사인비구주성동종 중 가장 먼저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1963년에 보물 제11호였던 것이, 1999년에 나머지 7구의 일괄 조사 후
2000년에 모두 보물로 지정되면서 보물 제11-8호, '강화동종'으로
다시 분류된 것입니다.
원래는 가장 먼저 발견되었던 종이었는데, 만들어진 순서에 맞춰 번호가
지정되다 보니 재미있게도 가장 막내가 되었습니다.
강화동종은 조선시대 숙종 37년(1711), 강화유수 윤지완(尹趾完)이 주조한 것을
그 후에 부임한 민진원(閔鎭遠)이 정족산성에서 현재와 같은 형태로 다시 주조한
동종이라고 기록에 남아있어, 이 때 주조를 책임지고 담당한 사람이 사인비구인
것이지 싶습니다.
높이는 198㎝, 입지름은 138㎝로 조선시대 후기의 동종으로는 큰 편에 속합니다.
이 종 역시 쌍룡뉴를 갖추고 있으며, 용통(甬筒: 종의 음향을 조절하는 음관.
음통과 같은 말)이 없는 것이 독특합니다.
특히, 이 종은 전통적인 '고려종'의 양식이 퇴화하고, 조선종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는 대표적인 예입니다.
또한, 조선시대 고종 3년(1866)에 있었던 병인양요(丙寅洋擾) 당시,
프랑스군이 약탈하려고 했던 종이라 하니 그 소중함이 더욱 느껴지기도 합니다.
* 보너스로 보경사 서운암동종 사진 한장 더 올립니다.